양구의 거리는 다만 애처로웠다
양구의 거리는 다만 애처로웠다
  • 이상환
  • 승인 2018.04.02 22:23
  • 호수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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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물가에 춘천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아
접경지역 상인의
자정의지 보이지 않아

밀물의 풍경
지난달 24일 토요일,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1시간 남짓을 달려 춘천터미널에 도착했다. 많은 인파들이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안으로 휩쓸려오고 있었다. 밀물의 시간이었다.

“화천은 물가가 비싸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춘천으로 왔다”며 화천에서 복무하는 이 일병은 말했다. 그는 “우리 부대는 춘천까지 출타가 인정되지만 타 부대는 화천 밖으로 나가면 무단이탈로 징계 받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들 중 상당수는 위수지역을 몰래 넘어가는 ‘점프(Jump)’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춘천의 도심인 명동에서도 이곳까지 표류해온 타 지역 부대의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후 소양강을 물줄기를 거슬러 춘천에서 양구로 향했다. 

강원도의 한(恨)
양구는 분단국가의 한을 간직한 한반도 비애의 북단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군사시설보호구역 중 절반이 넘는 51% 정도의 지역이 강원도에 속해있다. 또한,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5개 접경 지역의 재정 자립도는 14.2%로 전국 평균 53.7%에 비해 크게 낮았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의 만남에서 이를 두고, “접경 지역 주민들은 휴전 이후 70여 년간 각종 군사규제에 따른 지역개발 제한과 재산권 침해, 빈번한 훈련 및 북한의 잦은 도발 위험에도 군과 함께 지역을 지키고 큰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쓰린 그들의 이야기에도 양구의 군인들은 냉소적이었다. 상인들이 취해온 폭리에 대한 쓴웃음이었다. 양구의 거리에서 만난 백 병장은 “외박 중에 10만 원은 쓰는 거 같다며 접경 지역인 건 알지만, 양구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양구군 주민들과 군청은 가격 인하를 통한 자정의 움직임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 식당 사장은 “군인들한테 비싸게 받는 곳이 많긴 했었다”며 일부 비싼 물가에 대해 겸연쩍은 미소로 수긍했다. 위수지역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올해 7월까지는 만들겠다고 밝혔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
그래도 양구보단 나으리

오후, 양구의 거리는 외박·외출을 나온 군인 무리와 장병들을 찾아온 가족과 연인, 친구의 행렬로 붐비었다. 터미널 근처에는 도시에서 볼 수 없던 군장점들이 밀집해 있었다. 한 장병은 “군장점 가격의 거품이 좀 심한 것 같다. 인터넷에선 반값인데 여기서 사면 두 배를 주고 사야 한다”며 불평했다. 전역 선물로 후임병사들이 맞추어 주는 전역모자에 대해 “후임병들 이름 몇 개 오버로크 하면 4만 원 정도에 이런저런 장식까지 하면 8만 원 가까이 나간다”며 작별 선물 마련하기도 벅찬 곳이라고 한탄했다.

거리에는 프랜차이즈점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장병들이 외박 나와서 많이 찾는 고깃집은 1만1000원에서 1만2000원 수준으로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군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한 PC방에 들어서니 평일 1200원, 주말 1800원이라 적힌 요금표가 눈에 띄었다. 군인들이 외출·외박을 나오는 주말에 맞추어 요금이 달라졌다. 그나마도 주말은 잔여 시간 적립되지 않아, 시간이 남은 채로 복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장병들은 말했다. 이에 대해 PC방 사장은 “바가지라고 생각 안 한다. 다른 지역이 싼 건, 공급업체가 많다 보니 가격 경쟁이 붙어서 그런 거고. 여기 PC방 공급이 적다”고 전했다.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주민들은 PC방, 당구장 가격에 대해, “위수지역 문제로 각 가게 사장들과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가격을 내리겠다고 했다”며 의아해 했다. 양구군청은 “PC방이나 당구장, 펜션은 어떤 상인 단체에도 속해있지 않다 보니 가격 조정이 쉽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날 전역한 이 병장에게서 몇 년 전 양구 고등학생 군인 폭행 사건에 대해 들었다. “그때도 가격을 내렸는데, 얼마 못 가서 다시 올렸다고 들었다”며 자정의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리를 아무리 돌아도 양구 거리 곳곳에 붙어있다던 ‘위수지역 폐지 반대’ 플래카드는 찾을 수 없었다. 거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플래카드는 이미 다 내렸다. 위수지역 폐지 안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곳은 위수지역 문제를 과거형으로 읽는 듯했다. “이번이라고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던 이 병장의 언어는 꼭 이 사회의 모습을 닮아 서글펐다.

썰물의 풍경
붉은빛이 도는 여섯시 양구의 거리는 애처로웠다. 인파들 속에 섞인 장병들은 복귀를 위해 택시가 대기하고 있는 터미널로 운집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가족, 연인과 이별하고 친구와 이별하며 복귀하는 택시에 하나 둘 몸을 실어 떠났다. 운집했던 장병들은 어느새 다 빠져나갔다. 썰물의 시간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먼 섬으로 떠나는 것 같았다. 나와 남겨진 이들은 그 섬으로 갈 수 없었고, 단지 시간의 이쪽 연안에 머물러야 했다. 택시 창문 넘어 보이던 그들의 모습은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다만 처연했다. “터미널에서 부대까지 서울이면 3000원이면 갈 거리지만, 여기서는 8000원은 나온다”던 어느 장병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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