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민주 기자 (ssbx@skkuw.com)

법의학, 과학적 증거로 합리적 법 운용에 기여
부검 대상, 예술작품으로도 확대돼

법과 의학의 만남, 권리 수호의 시작
범죄와 관련된 죽음을 조사해 그 진실을 밝혀내는 의학적 조사의 중심에 ‘법의학’이 있다. 법의학이란 의학과 법에 관련된 분야를 담당하는 의학의 특수 분야를 말한다. 법의학은 의학을 중심으로 하는 간학문적 접근으로 자연사나 사고사 등의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모든 죽음에 대한 사인, 장애, 손상 및 질병을 조사해 그 진실을 규명한다.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치료의학이 생명존중의 의학이라면,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권리 존중의 의학인 것이다. 따라서 법의학은 법정에서 공정성을 추구하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법의학은 △사법 △입법 △행정 세 방면에서 모두 응용되는데 사법상의 응용이 가장 많이 이뤄진다. 부검을 하거나 법의학적 증거물을 검사해 사인, 상해의 명백한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범인을 색출하거나, 죄의 유무 판정 및 형량 결정에 도움을 준다. 법의학은 민사사건에도 적용된다. △사망 △이혼 △출생 △혼인에 관련된 판단을 할 때 강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법의학은 합리적인 법 운용에 기여한다.

진실을 통해 사회를 밝히다
법의학의 분야는 방대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 유성호 교수는 “법의학은 그 자체로 응용 학문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배상과 관련된 보험에 법의학이 적용되는 배상의학처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기도 한다. 유 교수는 다양한 법의학 분야 중 가장 대표적인 분야로 △법의병리학 △법의유전학 △임상법의학을 꼽았다.

드라마 '리턴' 중 법의병리학이 적용된 장면
드라마 '리턴' 중 법의병리학이 적용된 장면
ⓒSBS 드라마 '리턴' 제공

법의병리학은 병사 이외의 모든 죽음에 대한 검안이나 부검을 통해 사인, 사후 경과시간, 치사 방법 등을 규명한다. 지난달 22일 종영한 SBS 드라마 ‘리턴’은 로쿠로늄이라는 약물로 인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뤘다. 부검의는 피해자가 로쿠로늄이라는 약물로 인해 질식사했음을 밝혀낸다. 근 이완제인 로쿠로늄으로 인해 갈비뼈 사이 근육의 수축에 장애가 생기면 폐가 부풀어 오르지 못해 질식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부검의가 시신의 혈액을 채취한 후 혈액의 농도를 재는데, 그때 우리 몸에서 흔히 발견되지 않는 로쿠로늄의 성분이 검출될 경우 그 약물이 사망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며 법의병리학을 통해 사인을 밝혀내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법의유전학은 혈액, 타액, 모발, 골격 등의 인체 분비물이나 조직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고 범인을 색출한다. 범죄뿐만 아니라 친생자를 감별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 때문에 법의유전학은 과학수사학 또는 감식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리턴’에서는 형사가 용의자의 집 욕실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그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실제 피해자의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법의유전학은 머리카락의 모근 세포에서 핵을 체취하고 그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이용해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유 교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머리카락을 이용해 범인을 잡는 설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머리카락이 자연 탈락되는 과정에서 모근까지 뽑히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모근까지 뽑힌다면 충분히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임상법의학은 의료사고시의 질병 및 손상과 사인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기여한다. 또 의료 행위 자체에서 과실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고(故) 신해철 씨의 죽음에 관해 오랜 기간 논란이 됐던 의료행위 상의 과실 유무를 밝혀내는 것 역시 임상법의학의 영역이다.

이외에도 법의학은 역사적으로 논란이 된 죽음들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해왔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엄혹한 시대 현실에도 그에 맞서 박종철의 시신을 부검하는 등 양심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법의학자들 덕분에 그 진상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지난 2014년 미국 퍼거슨 시에서 10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역시 법의학이 진상 규명에 기여했다. 이는 당시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적확한 판단을 위한 법의학자의 노력은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됐으며, 법의학이 의문사로 판명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사회적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고 전했다.

드라마 '리턴' 중 법의유전학이 적용된 장면
드라마 '리턴' 중 법의유전학이 적용된 장면
ⓒSBS 드라마 '리턴' 제공

법의학, 가뭄에도 열매를 맺다 
세계적으로 법의학 연구가 더 정밀해지는 추세다. 현대사회에는 정확한 사인이 금전적 보상과 배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이 질병의 유전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거에는 넓은 맥락에서 사인을 연구했다면, 최근에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평등이 점차 강조되면서 범죄로 인식조차 되지 못했던 일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과학수사 기술도 발전했고, 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진실을 밝히는 법의학의 필요성도 확대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국 41개 의대를 통틀어 법의학 전공자는 단 3명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적으로 의대에서 법의학을 가르치는 교수인력은 18명에 불과할 정도로 교원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유 교수는 “법의학 전공생들의 경우 다른 의대 졸업생들에 비해 진로의 폭이 좁고 상대적 박봉이라는 점에서 처우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라며 직업적 사명감에 의존해 법의학자들을 양성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인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법의학 연구 수준은 세계적이다. 그중에서도 법의유전학에서는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을 만큼 뛰어나다. 특히 현장에 있는 정액이나 혈액으로 연령대나 국적을 가려내는 연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부검의 대상을 사람이 아닌 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 1호 법의학자 문국진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척한 분야로, 시신을 부검하듯 예술작품이나 예술가들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는 ‘법의탐적론’이다. 법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과거 예술가들의 사인을 분석하거나 예술계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안들을 규명한다. 유 교수는 “사망원인은 법의학자가 기본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이며, 예술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에 대해 직접 부검할 순 없지만 그림이나 관련 문헌들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인류의 유산을 풍부하게 만들며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