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수진 기자 (sallysjpark@skkuw.com)

“건축가는 건축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죠.” 햇볕이 따스했던
지난 수요일, 논현동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을 통해 사람들 간의 관계가 화목해지길 바란다는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를 만났다. 그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과 그가 생각하는 서울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 도심 속 공원 활용성 떨어져
실내 건축,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건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건축가란 직업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저는 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문과를 가면 고시 공부를 해야 할까 봐 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과를 갔는데, 수학은 또 답이 정해져 있어서 싫었어요. 이과 중에서 수학과 암기가 요구되는 공대 및 의대를 제외하니까 남은 것이 건축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제가 학창 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 미술, 물리, 지리 그리고 지구과학이었는데 그게 딱 건축과 맞았죠.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건축을 하기로 했죠.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건축가에게 중요한 덕목은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A와 B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통상 A 또는 B의 입장만 고려한 해결책을 제시해요. 저는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C라는 제3의 창의적인 방안을 찾으면 이 갈등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 반드시 A와 B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건축가는 그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이에 더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해요. 좋은 디자인을 구상하면 예산이 초과하고, 예산에 맞추다 보면 디자인이 안 좋아지고, 또 디자인과 예산을 맞추면 법규에 안 맞는 등 건축을 할 때 신경 쓸 요인들이 너무 많아요. 이 모든 이해관계와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힘들어요. 건축가는 그것들을 잘 조율할 수 있어야죠.

건축물을 설계할 때 사람들 간 ‘관계’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이에 관해 설명해 달라.
사람들 간의 갈등을 싫어하는 제 개인적인 기질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풀리지 않는 고부 갈등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중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죠. 일례로 제가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면 두 분이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셨고 그 순간만큼은 분위기가 화목해졌어요. 그때 제3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죠. 그래서 건축을 할 때도 사람들 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흔히 건축가의 역할이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그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달라요. 실제로 건축가는 건축물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죠. 공간 구조는 생각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요. 집 안에 있는 창문이 좋은 예시죠. 방문은 문을 통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어 개인 공간에 침입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창문을 통한 관계는 다른 사람과 소통도 되면서 자신의 영역은 지켜지는 관계에요. 창문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볼 뿐 서로의 공간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사생활이 존중되죠. 동시에 창문을 여닫으면서 관계를 선택적으로 맺을 수 있어요. 창문은 실내 건축에서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화합도 할 수 있는 좋은 요소죠.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건축물이란 어떤 건축물을 뜻하는 건가.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해요. SNS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적어요. 온라인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어 결국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하게 돼요.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생각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시 내에 더욱 필요해요. 고대 그리스에는 아고라 광장과 원형극장이 이러한 역할을 했어요.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서 화합하는 분위기에서 연극도 관람하고, 연설도 경청하는 등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눴죠.

또한, 권력의 위계가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 건축도 중요해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과 높은 곳에 자리한 사람은 권력 구조상 위에 군림하게 돼요. 신전 꼭대기에 있던 제사장이 권력을 가졌고, 궁전 상전에 앉아 있던 황제가 권력을 가졌듯이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사람은 권력의 중심에 있게 되죠. 하지만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경우, 이러한 권력의 위계질서를 완전히 깼어요. 원형극장은 무대가 밑에 있어 시선의 집중을 받는 사람이 대중보다 밑에 있으니 권력의 분배가 공평해졌죠. 동시에 그 무대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어요. 누구나 하루는 관객이었다가 하루는 무대 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무대 주인공이 계속해서 바뀌었던 거죠.

서울이라는 도시를 건축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서울은 도로망 구조가 단순해 도심 속 도보의 이용도가 떨어져요. 특히 강남은 도로망 구조가 띄엄띄엄해 걸어가면서 주변 장면들이 자주 바뀌지 않아 걷기 힘든 거리에요. 반면 뉴욕은 60m마다 새로운 거리가 등장해 도로망 구조가 촘촘한 편이에요. 또한, 건물 저층에는 상가들이 즐비해 있어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 계속 바뀌죠. 보행자 입장에서는 들어갈 수 있는 상가가 끊임없이 선택권처럼 주어지기 때문에 걷기에 더 적합한 거리죠. 그래서 뉴욕 거리에서는 더 많은 보행자를 목격할 수 있어요.

또한, 서울의 공원들은 도심 속에 드물게 배치돼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뉴욕은 공원들이 조밀히 배치돼 있는 반면, 서울은 공원들이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주변에 보이지 않고 드문 곳에 있죠. 큰 공원이 멀리 자리 잡고 있는 것보다 작은 공원이 도시 곳곳에 있는 것이 더 좋아요. 공원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많이 이용하는데 서울은 공원까지 걸어서 평균 1시간 걸려요. 3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10만 평 설악산 국립공원보다 내 집 앞 5평 마당이 더 좋죠.

뿐만 아니라 서울은 사적인 외부 공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요. 사적인 외부 공간이란 마당과 같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뜻해요. 과거의 사람들은 자연과 근접해 살았지만, 근대화 이후 실내 중심의 도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죠. 자연을 사적으로 접하는 공간이 있어야 자연을 온전하고 편하게 만날 수 있어요. 주택과 같은 공간에 살 때는 마당에서 속옷 차림으로 햇볕을 쬐며 온전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었어요. 하지만 현재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대개 공적인 성격을 띠어 많은 인파 속에서 자연을 느끼는 수밖에 없죠. 변화하는 자연을 온전하게 접할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사람들은 결핍을 느끼고 집 안에서 유일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에게는 실내 건축 속에서라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요즘 아파트와 같이 고밀화된 주거 형태에서는 테라스와 발코니가 예전의 마당 같은 사적인 외부 공간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싱가포르의 집합주택만 봐도 모든 집에 테라스가 연결돼 있죠. 이는 도시에 사는 이점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이점이 더해져 좋다고 생각해요.
 
서울 도심 속 건축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에 개선될 점들이 있어요. 서울 내 많은 학교가 획일화돼 있어요. 사람들은 획일화를 통해 평등 사회를 이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다양성을 통해 평등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A는 30평, B는 60평 아파트에 살면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A가 30평 마당이 있는 한옥에 살고 B는 60평 아파트에 산다면 그들은 그들 나름의 장점을 내세울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학교 또한 다양성을 띠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학교는 교도소와 같아요.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학교 안팎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으며, 음식이나 옷이 모두 획일화돼 있죠. 이처럼 획일화된 공간에서 획일화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가 있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따돌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죠.

또한, 학교가 고층화되면서 학교 내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졌어요.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학교에 가면 교실에서만 생활하고, 방과 후에는 봉고차에 실려 학원으로 가요. 이처럼 12년 동안 건물 안에서 생활한 학생들에게 도전적으로 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에요. 마치 닭으로 키웠는데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어른들이 먼저 각성하고 학교 건축을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해요. 예를 들자면 제한된 땅 안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만날 수 있게 테라스를 만드는 방법이 있어요. 학생 수가 줄면서 남는 교실들을 테라스로 만들면 아이들이 변화하는 자연을 쉬는 시간 동안 만날 수 있죠.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우라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현재 지혜를 가르치는 자연이 우리 학교에는 없다고 봐야 하죠.

매일경제, <알쓸신잡2> 등 미디어에도 자주 출연했다.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사람들이 건축의 역할에 대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건축은 결국 건축가가 아닌 건축주가 만드는 것이에요. 건축주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건축가는 많지만 훌륭한 건축주가 너무 적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살려면 먼저 그 공간이 좋아져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들이 건축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해요. 공간 구조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건축에 있어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건축주들이 늘어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책과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건축을 소개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건축학도를 꿈꾸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음 세대 건축가의 역할은 지금과 다를 것으로 생각해요. 저는 80년대에 건축 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종이에 계속해서 그리는 식으로 건축을 배웠어요. 하지만 요즘은 다 컴퓨터로 작업해요. 마찬가지로 2020년대에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소프트웨어 또는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인공지능이 건축과 융합되는 것은 피할 수 없어요. 이 변화에 적응하고 나면 건축가의 역할 또한 달라질 것으로 생각돼요.

2000년 전의 건축가는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하고 정교한 건축물을 만들 줄 알아야 했다면, 지금의 건축가는 복잡한 도시 안에서 여러 기관을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해요. 비전을 제시하고 때로는 방송에 나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죠. 이처럼 2020년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변화하는 건축가의 역할과 필요한 덕목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유 교수가 설계한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종합복지회관. 2017년 세계 건축가 어워즈를 비롯해 여러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 성과를 이뤄낸 작품이다.
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제공
유 교수가 설계한 캥거루 하우스 내부 곳곳에 설치된 창문은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을 나타낸다.
유 교수가 설계한 캥거루 하우스 내부 곳곳에 설치된 창문은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을 나타낸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