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의 봄날, 치열했던 응원의 숨결
잠실의 봄날, 치열했던 응원의 숨결
  • 성대신문
  • 승인 2018.04.09 20:58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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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첫 잠실 더비 ... 연장 혈투 끝에 두산 승
질서 있는 응원문화 느낄 수 있어

그날따라 서울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가 경기장에 들어선 기자의 두 눈을 가득 메웠다. 야구장은 응원 전쟁을 준비하는 수많은 관중으로 금세 들어찼다. 6시 반이 되자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가슴에서 손을 내려놓은 선수들은 일제히 각자의 자리로 달려갔다. 기선제압을 위해 두산은 유희관을, LG는 소사를 선발로 내세웠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첫 공이 뿌려졌다. 

사진 | 김한샘 기자


전쟁 같은 더비, 무기는 응원이다
배트도 공도 없는 관중들이 가진 무기는 오로지 응원뿐이었다. 두산 팬이 1루 부근을, LG 팬은 3루 부근을 가득 채운 채 열띤 응원을 펼쳤다. 두산의 응원이 유난히 뜨거운 경기 초반, 먼저 흔들리기 시작한 건 LG였다. 소사의 실투를 놓치지 않은 두산의 양의지가 2회 말에 첫 타점을 만들어냈다. 이후 오재원의 적시타가 양의지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LG가 아직 밟지 못한 홈플레이트를 두 번이나 밟게 된 두산이었다. 점수는 2:0. 두산의 응원가가 잠실의 하늘을 수놓았다.

승리를 갈망하며 목청을 높여가던 LG 팬의 응원이 절정에 달한 8회 초. 결국 동점이 만들어졌다. 두산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응원가를 목청껏 높여 불렀다. 정말 응원이 무기였던 걸까. 두산의 오재일이 투런포를 가동했다. 공이 담장을 넘어가자 LG의 응원가는 순식간에 두산 팬의 함성에 압도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기로 뒤덮여 있던 LG 팬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응원조차 메말라 버린 3루 뒤편은 고요해지다 못해 차가워졌다.

더 이상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대로 끝나는 상황. 한때 두산의 간판타자였던 김현수가 LG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들어섰다. 3루 쪽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LG로 이적한 사실을 뽐내기라도 하듯 그가 힘차게 배트를 걷어 올렸다. 투런포였다. 승리를 확신하던 두산 팬의 응원이 순식간에 잦아드는 순간이었다.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김현수를 향한 LG 팬의 함성이 잠실을 뒤덮었다. 점수는 4:4. 결국 경기는 10회로 향했다. 경기도 응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화로운 전쟁, 성숙한 응원문화를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잠실구장의 주인을 가리려 엎치락뒤치락해 온 두산과 LG였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양측의 응원은 끝내 승부를 보지 못한 채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가 길어지는 와중에도 괴성을 지르거나 민폐가 될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중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며 응원에만 집중했다. 홈런이 터질 때면 응원단장 뒤로 축포가 쏘아 올려졌다. 팀이 승기를 잡는 흥분과 절정의 순간에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장 출입구 앞을 지키는 한 직원은 별다른 제재나 통제 없이 그저 티켓 소지 여부만을 차분히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구장 내 질서를 위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요새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다”며 “응원 도구를 무료로 배포하지 않는 만큼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말했다. 평온한 표정을 띤 구장직원들의 일상 속에서 성숙한 응원문화의 일면이 보였다.

조용한 외야로 발걸음을 옮기다
경기가 한창 뜨거워질 무렵, 기자는 응원의 열기가 한창이던 내야를 벗어나 외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외야는 내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내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채 각자만의 방식으로 차분히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아들을 안은 채 외야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 핸드폰 화면으로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남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경기 내내 외야에 앉아 있던 한 커플은 내야가 자세히 보이냐는 질문에 “꼭 내야가 아니더라도 단지 야구장에 와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며 “시끄러운 내야를 벗어나 야구를 조용히 즐기고자 외야에 머무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온히 경기를 관람하다가도 홈런이 터질 때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던 그들이었다. 그저 차분히 야구를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외야였지만, 실제로 공이 날아오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었다.

뜨거운 잠실의 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공 하나에 수많은 시선이 운집해 있었다. 응원가가 잦아들 때면 내야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배트가 공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가를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함성과 탄식이 뒤섞인 야구장의 데시벨은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좌석은 앉아있으라고 만들어놓은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만있지 못했다. 허공을 가르는 타자의 배트 소리, 포수 미트를 파고드는 야구공의 소리, 심판의 우렁찬 아웃 카운트 소리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땀방울들은 푸른 잔디 위로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구름 한 점 없던 1회 초의 맑은 하늘은 어느새 까만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11회 말, 두산 최주환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때리는 사이 2루 주자가 홈으로 힘차게 달려 들어왔다. 경기는 그렇게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시원한 바람, 깨끗한 하늘, 그리고 뜨거운 응원이 하나 된 잠실의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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