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하영 기자 (chy7900@skkuw.com)

법 시행 후 “연명의료 중단하겠다” 3000명 돌파
연명의료 중단, 자살인가 자연사인가  보험업계 혼란

 

지난 2월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의료행위를 말한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연명의료결정법’의 시작
우리나라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경직된 분위기가 이어져 왔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의료를 중단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은 “이 사례는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으로 처벌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판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단순히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의사가 살인죄를 지게 된다는 오해가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연명의료에 대해 다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김 모 할머니 사건이 있고부터였다. 김 모 할머니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4개월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해왔다. 이에 가족들이 영양공급 중단과 함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이 소송이 받아들여져 국내 첫 존엄사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연명의료는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후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우여곡절 끝에 2013년 국가생명정책심의위원회에서 만든 권고안을 바탕으로 2016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보건복지부 주도 하에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2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법 시행 후 두 달 만에 2160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3274명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화두에 올랐다.

법 시행 두 달, 현장에서는 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병원이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보건복지부에 등록하도록 되어있다. 현재 윤리위원회를 등록한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42곳 중 동아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 2곳을 뺀 40곳이다. ‘전체 병원 중 3%만 법을 시행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중환자실이 없는 병원은 애초에 연명의료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일반 병원과 요양병원까지 합친 수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통계 방식”이라고 밝혔다. 한편 양산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윤리위원회 구성을 위해 전담인력을 요청하는 등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법 실행에 발맞춰 병원들이 각각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막상 일선에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시스템 탓에 하루하루가 혼란의 연속이다. 우선 연명의료중단 의향을 밝힌 환자의 정보를 조회하는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전에 활용되던 ‘심폐소생술 거부 제도(DNR)’의 정보를 연명의료정보시스템에 옮기는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스템이 연동됐어도 의사가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 환자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전산시스템에 직접 입력해야만 한다. 빠른 조치를 취해야하는 응급 환자를 두고 실행하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의료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점차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에게 보험금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난데없이 혼란에 빠진 곳은 다름 아닌 보험업계다.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사망한 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의 약관해석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연명의료 중단을 자살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연사로 볼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명의료 중단을 자살로 볼 경우 보험회사는 사망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 자살과 같은 보험가입자의 고의적인 사망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의 면책 사유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보험약관에는 자살보험금 지급 면책 예외조항으로 ‘피보험자의 심신상실에 의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자살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연명의료 중단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금융분쟁조정세칙’을 개정해 연명의료 중단에 의한 사망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입장을 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보험연구원 오승연 연구위원은 “논란의 핵심은 사망 원인을 연명의료 중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임종과정에 이르게 한 사고로 볼 것인가에 있다”며 “법의 취지를 생각하면 임종과정에 이르게 한 사고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명의료 중단에 의한 사망에 대하여 논란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근거조항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기까지
존엄사는 윤리적, 종교적, 법적, 의학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네덜란드는 2000년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에 존엄사를 허용하면서 유럽 각국의 존엄사법을 촉진하였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는 등 소극적인 형태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6년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하여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기도 했다. ‘죽을 권리’와 ‘생명 존중’의 극명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꾸준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연명의료결정법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 의료인이나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윤성 원장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진정으로 죽음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의사, 그리고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