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시민평화법정에 서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시민평화법정에 서다
  • 정재욱 기자
  • 승인 2018.05.14 21:38
  • 호수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상 속 그날, 여전히 생생해
재판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분 지양해야"

“주문.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50주기를 맞아 피고 대한민국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시민 모의재판이 지난달 21, 22일 양일간 진행됐다. 이번 법정이 한국과 베트남 간의 불행한 역사에 어떠한 이정표를 남겼는지 되짚어본다.

성산동 문화비축기지의 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은 봄날의 햇살만으로 눈부셨고, 돌계단을 타고 보이는 수목 사이의 봄바람만으로 훈훈했다. 길이 멈추는 곳에는 포스터와 입간판이 시민들을 평화의 법정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통로에는 시민단체들이 행사와 관련한 굿즈를 제공하고 생존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남기는 글을 받고 있었다. 사전공지와 같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신분확인 후 법정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객석 중앙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즐비했고 단상 위 책상에 올라간 두꺼운 법전과 자료집은 이곳이 법정의 장소임을 알렸다. 빈자리가 하나둘씩 채워지고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3인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입장하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 재판이 시작됐다.

퐁니·퐁넛 사건과 하미 사건의 생존자인 두 명의 응우옌티탄(Nguyn Th Thanh)이 원고가 돼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었다. 원고, 피고의 소장이 제출되고 재판부의 진행에 따라 원고 대리인부터 소장요지를 진술했다. 원고 측은 비극의 역사가 서린 두 마을의 기억과 한국군의 작전을 비교하며 학살 존재 여부를 파악했다. 원고 측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국방부 파월 한국군전사(戰史)나 주월 미군감찰부 보고서 등 퐁니·퐁넛마을의 학살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많다”고 지적하며 해당 부대 1중대 1소대장과 2소대장이 2000년에 이미 자백한 사실을 언급했다. 김남주 변호사 역시 “하미 사건과 같이 증거가 제한되는 민간인 학살에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며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손해를 배상하고 피해자 존엄 회복을 위한 공식 사과와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이어 피고 측은 원고 측의 요지가 진술하는 정부의 법적 책임에 합리적 의심을 가했다. 해당 사건에서 사상자들을 순수한 민간인이라고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한국군은 전쟁법을 위반한 것인지가 논점이었다. 피고 측 대리인 박진석 변호사는 “두 마을에서 베트콩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고 교전이 잦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전선이 따로 없던 베트남전의 게릴라성을 고려하면 주민들 역시 무관하지 않음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전 중에 불가피하게 일어난 민간인 학살인 경우 헤이그조약과 제네바조약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피고 측이 답변요지 진술을 마친 후, 원고 측이 재반박의 기회를 가졌다. 김 변호사는 “제네바협약 제1의정서에서 민간인의 신원이 불분명하다면 민간인으로 간주한다”며 군이 모든 민간인을 보호하도록 규정된 전시 국제인도법을 위반했음을 자인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도 “베트남의 특수성으로 한국군의 피해도 존재하기에 의혹제기만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자 하는 원고의 논리가 빈약하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법정 첫째 날의 오후, 증언 영상들이 쏟아졌다. 임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높은 증명력을 가지는 참전용사의 증언이 담긴 영상을 소개했고 다시금 법정은 차분해졌다. 모자이크된 참전용사는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사병이었다. 도로 정찰 시 첨병이었던 그는 민간인 학살 다음 날 마을주민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던 기억을 전했다. 마을주민을 뚫고 지나간 길가에 놓인 시체들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는 그는 한동안 부대가 이 사건으로 시끄러웠다고 회고했다. 영상의 끝에 그는 “전쟁에서 최소한의 묵시적인 양해사항을 지키지 않은 엄연한 전쟁범죄”라며 “잘못을 잘못이라 밝히고 사과하는 것이 군인의 정신이자 명예”라고 소신을 밝혔다.

다음 영상에서 마을의 생존자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경험과 동시에 가족과 이웃을 잃게 된 경험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학살의 주체가 한국군임을 자신했다. 뒤이은 원고 당사자 신문에서 한에 사무친 이들의 사연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의 증언은 통역의 말을 통해 법정 안에 울렸다. 날 것 그대로의 증언에 모두 숨을 죽였고 몇몇은 함께 손수건을 눈물로 적셨다. 30여 분간 통역을 진행하던 통역사도 법정이 자신을 도와달라는 원고의 말을 전하면서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원고의 증언이 끝날 때마다 방청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원고와 피고 간에 치열한 법적 공방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논의를 처음으로 꺼낸 한겨레 고경태 기자와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펼쳐졌다. 피고 측 전민경 변호사는 고 기자에게 “퐁니·퐁넛 사건 전날 베트콩과 촌민이 설치한 지뢰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잔당소탕작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 않냐”고 질문했다. 이에 고 기자는 “작전을 수행한 소대장들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과 배치된다”며 “작전의 일환이라면 전투 성과로 전사에 기록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구 이사는 “베트콩은 베트남 사회에서 유공자로서 연금, 수당, 의료 혜택을 받을 뿐 아니라 가문의 영광으로 불리기에 베트콩이 민간인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고 측 이정선 변호사는 “하미 마을 원고의 오빠가 베트콩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민간인과 전투원은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구 이사는 “군과 접촉 시 무기 소지와 공격 및 저항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며 “마을에 베트콩이 있었을지라도 사망자 135명 중 20~50대 남성이 2명이었다는 점을 볼 때 학살로 의심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최종변론 이전 원고들의 최종진술이 있었다. 하미마을의 응우옌티탄은 자신과 같은 생존자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이들 모두를 대신해 이 자리에 왔다고 발언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생존자에게 삶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며 끝맺었다. 최후변론에서 원고 측은 “민간인 살해가 있었음을 피고도 인정한 단계에서 쟁점은 불법행위의 가해자 국적”이라고 언급하며 현지인들이 이를 분별할 수 있었고, 베트콩의 소행이라면 전사에 남아야 할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에 한국군으로 특정할 수 있다고 논증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국제법에 따라 규정된 전시 민간인 보호 의무를 위반한 점을 열거하는 것으로 변론을 마쳤다. 순서를 넘겨받은 피고 측은 준비된 PT 발표를 생략했다. 대신 법정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이 표명한 억울함을 소개하며 그 이유로 참전용사 대부분이 학살과 무관함을 주장하였다. 한국군이라는 집합명사에 대해 재고 가능성을 열어두며 학살의 주체를 명확히 하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데 뜻이 같다는 의미였다. 

판결을 내리기 전 재판부는 휴정을 가졌다. 그러자 법정 안에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베트남 퀴논에서 근무했다던 한 참전용사가 피고 측 변호사에게 말을 건네고자 무대 앞쪽으로 나왔다. 그는 “총만 들면 베트콩이 될 수 있던 이들을 민간인으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사실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전군인의 호소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전날 있었던 베트남전쟁 관련 국제학술대회의 논의 결과를 주최 측이 소개했다. 뒤이어 시민평화법정 홍보물을 제작한 금호고등학교 학생들이 원고 측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우려와 달리 법정에서는 소란이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광경이었다.

판결이 선고되자 원고석에 있던 두 명의 응우옌티탄이 환호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청중들 역시 그들의 여정에 지지의 뜻을 보냈다. 방청객인 박지수 씨는 “법정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피고 측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연구자들과 법률가들에 의해 해소됐다”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법정을 긍정했다. 재판부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이틀간 이뤄진 심리였지만 변호사들이 체계적인 조사로 법리를 구성했다”며 “원고의 최후변론이 당당하고 조리 있어 감명 깊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끝으로 그는 “국가와 개인이 가해자면서도 피해자라는 점이 고려된 이번 결정문이 한국법원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법정이 끝난 일요일 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마음속 응어리진 역사도 빗물과 함께 흘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인사캠 - (03063)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3층 50325호
  • TEL : 02-760-1240
  • FAX : 02-762-5119
  • 자과캠 - (16419)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성균관대학교 학생회관 2층 03205호
  • TEL : 031-290-5370
  • FAX : 031-290-5373
  • 상호 : 성대신문
  • 발행인 : 정규상
  • 편집인 : 김재원
  • 편집장 : 강동헌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동헌
  • 성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성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skkuw.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