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점에서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부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보자마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제목만으로도 이목을 끌겠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2016년도 한국 성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31위라고 한다. 하위권이다. 우리 모두 상당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트레스, 그 원인이야 많다. 그 중 하나는 너무 많은 것들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 끄는 기술을 알려준다니 단박에 관심이 갔던 것이다. 또 한편 든 생각은 신경 끄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 학습(學習)하라는 것이다. 배우고 또 시간 들여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책의 요지는 부제를 통하여 조금 더 추측할 수 있었다. 일체에 신경 끄고 멍하니 있자는 게 아니다. 다만 쓸데없는 것들과 덜 중요한 것들에 너무 많이 꺼들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기 위한 기술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만 신경 쓰는 방법이다.
이런 요지를 대략 파악하고 나니, 그 책 내용과는 상관 없이 나름대로 의문이 하나 들었다. 내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을까? 알고 보면 내 인생에서는 하찮은 것들을 일거에 잊게 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몇 해 전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런 자신의 능력을 알아차린 주인공은 지나간 일에 조금이라도 후회가 들면 바로 시간여행을 단행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이리 저리 상황을 바꿔본다. 그리고 더 좋은 것들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화 막판에 이 사람은 더 이상 시간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각본상 그렇게 “성숙”한다. 과거사에 더 이상 꺼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사실 특별하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에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소중한 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이는 후회가 되는 과거의 일들을 조작하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후회에 꺼들리면 오히려 퇴색되고 결국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 혹시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가장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힘, 그래서 쓸데없는 것들에 신경 끄는 기술이 우리네 전통에 이미 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유학 경전인 대학(大學)의 “신독(愼獨)”이 그것이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신독의 뜻은 오직 자신만 아는 마음 속의 미세한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고 또 조심함이다.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가치(至善)는 다름 아닌 인(仁), 경(敬), 효(孝), 자(慈), 신(信)이다. 이것들이 낡았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더 나아가 주변의 많은 지인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주는 것, 이게 결국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독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사람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온전하게 주고 있는지 살피는 현재형 성찰이다. 후회를 동반하는 과거형 반성이 아니다. 현재 내 마음의 기미에 집중함으로써, 그에 방해되는 쓸데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망상에는 더 이상 꺼들리지 않는 기술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그것도 최상승 기법이 바로 우리 전통에 이미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드니 베스트셀러 전시대에 그 책 대신 대학을 슬쩍 올려놓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