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간이 만든 모든 도구란 결국 육체의 확장에 불과하지만, 오직 책만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이기에 그중 가장 경이로운 것이라 말한 사람은 소설가 보르헤스였다. 그렇다면 책을 읽고 또 글을 짓는 인간은 여전히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 굉장한 존재일 것이다. 심사자 앞에 서른두 편의 글이 경이로운 책이 되기를 꿈꾸며, 미래 책의 징후로 놓여 있다.

대학문예가 종종 그렇듯이 어머니, 아버지, 친구, 연인과의 경험이나 소망들이 만들어 내었을 상상들이 많았고, 취업난이나 ‘갑질’ 사회 혹은 노인-세대 문제와 같이 보다 직접적인 현실로부터 착안한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다. 전자는 대개 자기치유적이거나 고백적인 에세이 풍으로 결착되는 경우가 많았고, 후자는 깊은 연민을 포함하는 대로 보다 적극적인 취재력과 인간 이해의 깊이가 아쉬운 작품이 많았다. 존재론적인 불안, 신념 혹은 신앙의 문제, 인공지능 후의 인간과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들이나 청년다운 욕망을 성적 모티브들로 ‘확장’한 작품들도 여러 편 눈에 띄었다. 아쉬운 것은 주제의 강도나 스케일에 비해 사건의 세부나 리비도 분출의 사회적 개연성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그 어떤 진솔한 메시지도, 그 어떤 높은 눈과 열망도 그 자체로 ‘전달’된다기보다는 근면한 세공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전달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고민 끝에 <포유식물>을 최우수작으로 골랐다. 사랑의 갈구와 증오의 원점이 구별되지 않는 한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글로, 이야기의 출구가 다소 비의적인 한편 <로즈마리 베이비>나 <악마의 씨> 류와 같은 문화적 클리쉐를 떠올리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독자를 계속 다음 문장과 사건으로 이끄는 화소들의  유기적 배치, 정서를 단어가 아니라 객관적인 상관물이나 문장의 호흡을 통해 이끌어내는 세련되고 깊이 있는 전달 방식, 이해를 향해 가지만 불가해성을 남겨두는 단편소설 특유의 시학적 효과 등이 잘 조화된 작품이라 보았다. 
   
<목성의 냄새>는 일종의 과학소설 정확히는 ‘과학 밖의 소설’이다. 삶 충동과 죽음 충동이라는 근원적이지만 낯익은 주제를 전혀 다른 시공간의 전혀 다른 인간관계들 속으로 옮겨 놓자 매우 새롭게 들렸다. 성적 외연과 결정의 모티브처럼 흥미로운 전개도 있었고 결말도 부드러운 편이었다. 현재의 과학에서 추론되는 미래 과학 세계가 아니라, 과학 밖에 존재하는 오래된 미래에의 물음이 하드보일드식 문장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끝내 이 주제에 이 답이라면 과연 충분한 걸까 하는 의문을 버리기 어려웠다. 우수작으로 삼았다. 

수상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꼭 언급해 두고 싶은 작품이 있었다. 세 개의 콩트를 연작으로 연결한 단편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를 둘러싼 세 가지 변명>은 기발한 고안력과 깔끔하면서도 환기력이 좋은 문장들이 단연 돋보였다. 살인을 업으로 하는 천사, 여성들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까마귀를 가진 남자, 영화를 염오하는 영화평론가들의 이야기가 각각 다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성애적 표현이 너무 자주 돌출해 작품의 방향이나 타깃을 흐려 놓고 있는 듯했다. 충일한 상상력, 수련의 흔적, 문장의 재기로 넘쳤지만, 심사자로서는 그것들을 묶는 ‘끈’을 발견하지 못해 아쉬웠다. 넘치는 재능을 밀고 나가는 서사적 지구력과 상상력과 설득력의 균형이 이뤄졌다면 더없이 좋았을 작품이었다.

수련을 거친다면 곧 대학 문예를 넘어설 법한 좋은 작품들이 적잖았다. <유다계시록>, <아이언 메이든 시티>, <포로수용소>, <돈 빼고 다 팝니다> 등이 그런 작품들이었다. 몇몇 문장들을 심사자만의 책으로 기억해 두고 싶다. 글을 보내준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황호덕 교수(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