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우수작] 목성의 냄새
[2018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우수작] 목성의 냄새
  • 성대신문
  • 승인 2018.05.22 00:37
  • 호수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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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의 냄새>

 

나는 우주를 유영하는 고독한 방랑자.

3일째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깊고 넓은 어둠이 동체 주위를 감싼다. 3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주 방랑자들을 인도하는 길잡이별을 향해 착실히 항해하고 있었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계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우주가 내려주는 계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에스텔 도법 기준 동쪽 방향으로,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인력이 우주선 나침판의 바늘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녀석은 그 강력한 힘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빙글, 빙글, 돌다가 결국 부러져버렸다. 드라이버질 몇 번이면 새 바늘을 끼울 수 있겠지만.

 

'우주 방랑자라면, 우주가 내리는 계시를 무시할 수 없지.'

 

이토록 강력한 인력. 인력은 모든 방랑자들에게 위험하지만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다. 천 칠백년 전에 처음으로 우주 방랑자가 되어 스스로 대기권을 뚫고 백조자리에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는 갈라파고스가,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으러 떠난 곳도 바로 저 정체 모를 인력의 목적지였다. 갈라파고스는 그것을 천사의 손짓이라고 불렀다. 천사가 있는 곳이 저세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주 타당한 작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니다. 우주 방랑자로서 우주에서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음을 계획한 적은 없다. 위험은 딱 그 만큼의 보상을 품고 있기에 매력적이다. 나는 그 인력이 뿜어져 나오는 저편에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는 못 배길, 처음 목성이나 토성의 전면을 보았을 때와 같은 전율과 경이.

나는 3일째, 그 아름다움을 향한 꿈을 좇고 있었다.

내 우주선이 무언가에 쿵, 부딪친 것은 3일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좌석 아래에서 모포에 몸을 말고 자고 있다가, 충돌에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켜 바깥을 살폈다. 부딪친 것은 나의 것과 비슷한 1인용 우주선이었다. 다만 크기가 훨씬 작고, 이십년 전의 늙은이들이나 선택했을 법한 갈색 모슬린 무늬로 뒤덮여있었다.

난 조심스레 그 쪽으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나타난 것은, 예상 외로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수어로 말을 걸었다. 통신 장비를 모두 갖추고 떠날 수 없는 우주 방랑객들의 시대에, 우주통상조합은 도통 통신에 응하려 하지 않는 방랑자들 때문에 골치를 썩이다가 결국 단거리 통신을 위한 우주용 수어 표준 지침을 만들어서 배포했다. 덕분에 한 때 수많은 수어 사용자들이 차별의 별을 떠나 우주로 향했다.

소년은 통신 인식용 렌즈를 잠시 건드려보다가, 우리가 그런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곤 수어로 답했다.

 

"우주 인력을 따라가고 있었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같이 가자."

 

소년은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5일 동안 같이 항해했다.

나란히 떠가면서, 이따금씩 잡담을 나누었다. 그래서 나는 소년이 약 1년여를 우주에서 보낸 초보 방랑자라는 것을 알았고, 위대한 방랑자 이피네프린이 핼리 혜성에 충돌해서 죽었다는 옛날이야기를 듣곤 방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가 왜 우주 인력을 따라가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반문했다.

 

"그러는 너는?"

"?"

"왜 우주 인력을 따라가는데?"

 

나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곳에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어떤?"

"사실 내가 처음 방랑자가 된 건, 허블 28세대 망원경이 찍은 목성 사진이 인쇄된 천원짜리 엽서를 본 후였어."

 

나는 의미 없는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어."

"그리고 두려운 만큼 매혹적이었지."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걸 보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는 걸 알았어."

"아니, 그걸 보지 못하는 삶을 살면, 죽을 것 같았어."

"그 순간 완전하고 영원한 죽음을 맞을 것 같았어."

 

소년은 손을 가만히 두고 잠시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갈라파고스가 인력을 따라간 후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도 그런 것을 발견했군, 하고 생각했었지."

 

소년은 그 말을 보곤 웃었다.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린 잠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난 사실 죽으려고 가고 있는 거야."

 

나는 내심 덜컹, 내려앉는 심장을 느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우주에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소년은 말이 없었다. 나는 소년의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소년은 무색한 손짓으로 이어 말했다.

 

"끝이야."

 

나는, 흐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며칠 후, 소년은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먹을 게 없어."

"? ?"

"좀 가다가 죽을 줄 알았지, ."

 

나는 헉, 하고 놀라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나한테 진공 식품이 꽤 있어. 난 원래 헥토파우르스좌를 목표로 가고 있었거든."

"그럼 어떡하지?"

"이 쪽으로 와."

 

소년은 그러자고 했고, 애를 써서 우주선을 조종했다. 나는 신중하게 머리 뚜껑의 위치를 조정하다가, 말했다.

 

"지금이야."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소년이 내 공간 속으로 떨어져 들어왔다. 갈색 모슬린 무늬의 우주선은 저 편에 주인 없이 남겨졌다. 나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저건 어떡해?"

 

소년은, 내 위에 엉켜있던 자세를 겨우 정리하고는, 말했다.

 

"몰라."

"너도 참, 대책이 없구나."

 

소년이 웃었다. 나는 아직 내 위에 올라타 있던 그를 그저 꽉 끌어안아주었다.

 

나는 소년을 히필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생경한 발음은 우주 방랑자 특유의 닉네임임이 분명했다. 나는 딱히 닉네임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본명을 말했다.

 

", 김피아야."

"반가워."

 

우린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었다.

 

히필린은 말이 많지 않았다. 시간이 있으면 대개 전면창 바깥의 한도 끝도 없는 우주를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처음에는 그를 가만히 놔두었다가, 갈색 모슬린 무늬의 우주선이 점점 멀어져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때쯤엔 이따금씩 그를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 히필린은 가만히 끌어당겨졌다.

마치 나 스스로가 거대한 인력이 된 듯한 느낌.

우리는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지나쳤는데, 먼 곳에 거대한 가스별이 보일 때마다 나는 가볍게 흥분했다. 처음의 기억은 강력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처음 목성을 보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

 

"히필린."

"."

"사실 난, 처음 목성을 보고 난 후 잠시 동안은 정말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히필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살다보니 더 하고 싶은 것들도 생겼어.

.

너는 어때?

?

아직도 죽고 싶어?

 

히필린의 숨이, 잠시, 멈췄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그리고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더욱 내 품으로 가깝게 잡아당기면서, 그의 정수리에 내 턱을 올려놓곤, 한숨을 쉬었다.

 

그렇구나.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며칠 후 마침내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우주 인력을 따라가는 또 하나의 무리를 만난 것이다. 상대 쪽의 파일럿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헬멧을 벗으며 손을 흔들었다. 새빨갛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의 이름은 팔레비자와.

그녀 옆에 앉아있던 검은색 단발머리의 사람은 로라고 했다. 두 명의 여자는 한 때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러나 최근에야 다시 만나게 된 친구 사이였다. 둘은 우리에게 인사는 했지만 그다지 우리를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침인사 정도나 나누며 두 무리는 같은 길을 따라 비행했다.

며칠이 더 지나서야 우리는 그 둘이 어떻게 우리와 같은 길을 향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팔레비자와가 우주 정거장을 떠나려고 할 때, 그녀의 우주선이 나아갈 레일을 손보고 있던 로가 먼저 팔레비자와를 알아보고 다가왔다고 한다.

 

"팔레비자와?"

 

그 후 로는 조금쯤 민망한 얼굴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 기억 안 나겠지만, 같은 고등학교 나왔던."

"."

"?"

 

그리고, 팔레비자와는 곧고 바른 시선으로 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앞에 서 있는 일은 왠지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로는 뺨을 붉히며 조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기억하고 있어."

", , 고마워."

 

로는 팔레비자와의 신발코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신기하네, 난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아니, 그렇지 않아."

 

너에겐 항상 관심이 있었어.

팔레비자와는 그렇게 말했다.

 

로의 시즌 오프 동안, 에프 포린네 정거장까지 가는 이틀간의 짧은 여정을 함께하자고 팔레비자와는 제안했다. 마침내 로를 조수석 시트에 앉힌 팔레비자와는 왼손으로 무성의하게 속도를 조절하다가, 오른손으로, 좌석 옆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려 둔 로의 왼손을 붙잡고는 했다.

인력을 느낀 것은 목적지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둘이 처음 창조의 가스를 배경으로 제대로 된 키스를 나눈 후에, 둘은 인력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우린 거기서 함께 시간을 보낼 거야.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기간보다 훨씬 길게."

 

팔레비자와는 그렇게 말하곤 씩 웃었다. 그리고 시야에 닿지 않는 우주선 안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왠지 답답한 기분이 되어 한숨을 내쉬고는 내 옆에 앉은 히필린을 힐끔, 돌아보았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이제 우린 왜 인력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

 

얼마 후 팔레비자와와 로는 우리와 굳이 계속 같이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내 것보다 훨씬 좋은 엔진을 추진하여 우리를 쏜살같이 앞질러 가버렸다. 나와 히필린은 다시 둘만 남겨졌고, 그건 그들이 남겨두고 간 질문과 함께였다.

히필린이 좌석 뒤의 공간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나는 운전석을 자동 모드로 돌려두고 히필린의 옆으로 기어 들어갔다.

 

"."

 

자려고? 히필린은 잠결에 말했다.

 

"."

 

나는 뻔뻔하게 말하며 히필린의 곁에 누웠다. 히필린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이었다. 난 잠시 갈등하다가, 히필린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그의 냄새를 들이켰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비릿한 소년의 냄새다.

 

"뭐야?"

"잠깐만."

 

내친김에 그를 끌어당겨 내 품에 폭 안았다. 히필린은 몸부림쳤다.

 

"… …."

 

말 없는 대치가 이어지다가, 결국 히필린이 이겼다. 히필린은 나를 뿌리치고 상체를 일으켜 뒤 쪽에 기대어 앉았다.

그가 잠시 흐트러진 호흡을 골랐다.

히필린은 그 때, 우주 방랑자 주의사항 2조를 떠올렸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자신이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그 고전적인 조항을.

 

우주 방랑자를 쉽게 믿지 말 것.

 

그러나 이제 히필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좌석 뒤의 기계박스 위에서, 사금파리 같은 빛을 가끔씩 반짝거리는 우주를 등 뒤에 두고 섹스했다. 나의 성기가 그의 안에 강하게 치달을 때마다 히필린은 고개를 젖히며 길고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히필린의 몸 아래에서 엔진의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나는 그와 섹스하는 동안, 그의 온 몸이 뿜어내고 있는 뜨겁고 비린 냄새를 맡았다. 섹시한 냄새였다. 나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한 움큼 묻고 그 냄새를 빨아들였다.

 

"뭐해?"

 

너무 울어서 눈 밑이 빨갛게 짓무른 히필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차마 '냄새가 좋다'는 말을 할 배짱은 없어서, 그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곤 얼굴을 뗐다. 시선을 바로 하자, 내 아래에서 끙끙거리며 신음하고 있는 히필린의 면면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섹스를 마치고, 나는 내게 등을 보이며 누운 히필린을 끌어안은 채 휴식을 취했다.

히필린은 잠들지 않은 채로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 피곤해?"

 

나는 슬슬 잠들려는 정신머리로 히필린에게 물었다. 히필린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내 손가락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아야!"

"."

"왜 그래?"

 

그리고 히필린은 킥킥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소리였다.

 

 

우주는 소리도 냄새도 촉감도 없는 공간.

오로지 유리막에 비치는 형상만 있는 세계.

그것을 가졌을 때, 나는 욕심꾸러기처럼 다른 것이 갖고싶어졌었다.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어."

 

그것에선 아주 뜨거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뜨겁고, 비릿하고, 날카롭고 쨍한 유황의 냄새, 화약의 냄새, 혹은 사막의 냄새.

 

"그래서?"

"인력의 너머엔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었어."

"낭만적이네."

"?"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

"있더라도 나는 알 수 없겠지. 나는 그 작은 점에 빨려 들어가서 이미 죽어버렸을 테니까."

"왜 그런 것만 생각해?"

"왜냐고?."

 

히필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실, 히필린은 명확하게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히필린은 우주통상조합에서 R-2 구역 담당 공급자를 맡고 있는 사람과, R-2 구역 지정 소매업자 사이에서 탄생했다. 지정성별은 여전히 우주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담당 공급자는 모두가 그를 여자로 부르고 여자로 알았더라도 히필린의 아버지였고 지정 소매업자는 모두가 그를 남자로 부르고 남자로 알았더라도 히필린의 어머니였다. 그들이 비즈니스 관계로 말을 섞고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리 어렵지 않게 둘은 서로의 비밀을 눈치 챘다.

담당 공급자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려서 세례를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받았는데, 성인이 된 후에 화성에 있는 교회에 가서 내 세례명을 햄릿으로 바꿔버렸어.

햄릿?

 

되물으며, 지정 소매업자는 킥킥 웃었다.

 

그런 이름을 해줘?

화성 히피들이 세운 교회였거든. 지구의 규칙과 불문율을 깨는 거라면 뭐든 좋아했어.

신기하다. 가 보고 싶어.

재밌는 곳이야. 화성에 한 번도 안 가봤어?

여기 정거장에선 너무 멀어. 정거장은 외롭고 조용하고 쓸쓸해.

세례를 받은 적은 있어?

우리 아버지는 인도에서 온 종교를 믿었어. 거기선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없어.

그럼 네가 오필리어를 하면 되겠네.

오필리어?…"

 

지정 소매업자는 잠시, 창문 바깥에 흐르는 우주의 면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것이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의 시작이었다.

 

햄릿과 오필리어가 서로 사랑하여 식을 올리고 허니문 섹스를 하고 신혼부부의 애틋함이 조금은 바래서 오래된 연인 같은 친숙함을 갖게 된 후에도, 둘은 전혀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햄릿이 햄릿이고 오필리어가 오필리어인 한 그것은 절대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구를 꼭 닮은 멀고 먼 우주의 정거장은 모든 차별과 억압에 있어서도 조금쯤은 지구를 닮아서, 햄릿은 50대의 산부인과 의사 앞에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낙태는 안 돼요.

왜요?

그러게 처음부터 피임을 잘 했어야지.

 

50대의 남자는 미묘한 반말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따금씩 햄릿의 신경을 긁었다.

 

백퍼센트 완벽한 피임이라는 건 없잖아요.

에잉, 쯧쯧.

 

50대 남자는 햄릿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이 당황스럽게 혀를 차다가 유인물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요새 단속이 강화됐다는 공문이야, 원래 이런 수술은 아가씨가 아니라 의사를 처벌한단 말이에요, 남편도 있는 멀쩡한 여자가 한둘쯤 낳아 기를 수도 있지.

그래서 안 해주실 거예요?

딴 병원 알아 봐요.

 

햄릿은 더 듣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그러나 정거장에선 산부인과가 있는 병원을 찾기가 힘들었고,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사를 찾기는 더 힘들었다. 이미 스무 살 때 집을 나와서 부모님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온갖 잔소리에 며칠쯤 더 시달린 후, 마침내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말했다.

 

그냥 낳을까?

 

인간은 생각이 있는 존재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어놓고 어느 쪽이 더 자신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될지 따져볼 수 있다. 햄릿은 한 번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도착하는 데 5개월이 넘게 걸리는 중절약을 기다리거나 언더그라운드 의료 시설에서 소독도 되지 않은 메스에 몸을 맡기는 것보단 오필리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편이 더욱 간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간단한 것은 다른 어떤 좋은 것들보다도 강한 매력을 가지는 법이다.

그래서, 그 때까지 아직 작은 세포에 불과했던 히필린은 이 때에야 비로소 한 명의 인간이 될 수 있었다.

 

히필린은 이따금씩 아기의 꿈을 꾼다. 거대하고 따뜻하고 어두운 우주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아기의 모습을. 배꼽에서 나온 탯줄만이 유일하게 생의 연결고리인 존재를. 그건 어쩌면 히필린 자신일 수도,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딘가의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우주를 욕망하는 모든 이일 수도 있었다. 하나 분명한 건, 모두가 그 때의 감각을 그리워해서 우주로 간다. 그것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마냥 포근하고 안전하기만 한 세계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 때, 그 곳에서 그는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자일 수 있었다.

아무 것도 겪은 적이 없는 자.

부모와 이런 내용의 말싸움을 한 적이 없었던 자.

 

그럴거면, 날 낳지 않았으면 되잖아요.

 

히필린은 그렇게 말했다. 잠시 텅 빈 눈으로 히필린을 내려다보던 햄릿은 대답했다.

 

나도 그러려고 했어.

 

그 때의 햄릿의 눈빛이 진실했기에 히필린은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래, 나도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요. 그러면 나쁜 것은 아무 것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살아있다는 무게를 지고 살아나가야 할 일이 없었을 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 대화 이후, 히필린은 우주 방랑자가 되었다. 아주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햄릿은 이따금씩 히필린에게 정거장에서 일하면서 주워들은 우주 방랑자들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그 중 핼리 혜성에 충돌해서 죽은 이피네프린의 이야기는 히필린에게 특별한 감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히필린은 그렇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어둠으로 가득 찬 우주, 그 안을 유영하는 우주 방랑자, 그의 생명줄, 그리고 재빠르게 다가와 방랑자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한 조각의 혜성.

자신이 이미 예전에 겪었어야 할 일.

 

그 후 히필린은 예전보다 더욱 자주 잠을 잤다. 깨어있는 시간엔 창 바깥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나와 섹스를 하거나 했다. 히필린이란 닉네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선 그런 나날이 며칠은 더 이어진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땐, 이피네프린과 각운을 맞춘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것도 있긴 있어.

다른 건 뭔데?

플루옥세틴, 파록세틴, 플루복사민, 서트랄린, 데스벤라팍신.

그게 뭐야?

아버지가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던 약들이야. 아버지는 날 낳고 굉장히 많이 힘들어했어,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아버지에게, 그 약들이 그런 느낌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나 봐.

히필린도 약이야?

그냥 각운만 맞춘 거야.

?

글쎄.

 

그리고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히필린의 마음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흐물흐물 풀어져서 속내를 조금쯤 밝히게 되는 때는 그가 맨몸으로 나에게 안겨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꽤나 자주 있는 일이다.

 

너는 부모님이 있어?

 

꼭 그와 같은 상황에서, 히필린이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대답했다.

 

.

어때?

그냥 그래.

그냥 그런 게 어떤 건데?

 

나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우리 집은 누군가 '가족'이라고 했을 때, 지구 북반구의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만한 그런 가족이었고, 부모님은 내게 많은 걸 기대했어. 하지만 난 다 버리고 도망쳐 와서 이렇게 우주를 떠돌고 있지.

?

글쎄, 부모님이 바라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 같았어. 그러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거나.

 

나는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자주 추천해주시던, '꿈을 찾으라'는 종류의 책들에서 나오는 말들인 것 같아 스스로 우스워졌다. 하지만 그 느낌을 말로는 절대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운명을 느끼는 순간의 감정이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었어.

 

그 말과 함께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너는 그런 적 없었어?

 

히필린은 대답이 없다가, 조금 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었어.

 

미묘한 확신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있었어.

 

히필린은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그 말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햄릿과 오필리어는 히필린이 열한 살이 되었을 때, 히필린과 다섯 살 터울이 나는 어린애 한 명을 데려왔다. 4월의 작약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사랑스러웠다. 행동이 느릿느릿한 그 아이를 부부는 리건이라고 불렀다.

부부는 리건을 사랑했다.

특히 햄릿은, 리건에게 평범한 아버지처럼 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특별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히필린은 결코 줄 수 없었던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결국 아이의 문제도, 실수나 잘못된 정책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그냥

히필린의 문제였다.

그래서 히필린은 리건의 열두 번째 생일날, 케이크에 초를 꽂아주는 대신 할머니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떠났다.

 

'생일 축하해, 리건.'

 

그런 말은 고향을 돌아보며 속으로나 했다.

 

처음 고향을 떠나던 히필린은 과거의 것은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치 진부한 성장 소설의 도입부처럼 새로운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은 이피네프린의 각운이면서, 플루옥세틴, 파록세틴, 플루복사민, 서트랄린, 데스벤라팍신의 각운이었고, 비운의 선택 앞에 가로놓여진 왕자, 햄릿과 같은 머릿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과거 1960년대의 방랑자들을 부르는 이름의 두운이기도 했고, 고문당해 비참하게 죽은 여성 수학자의 이름의 두운이기도 했다. 히필린은 이런 의미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사실 이런 의미들이 히필린이라는 이름을 정말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히필린으로 부른다는 사실, 그리고 그래서 히필린이 점점 더 진정한 히필린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었다. 히필린이 점점 더 진정한 히필린이 되어갈수록, 과거의 가엾은 비극의 주인공, 햄릿과 오필리어의 아들은 점점 더 존재를 지워갔다. 존재를 사라지게 하기 위하여 히필린은 존재했다.

마침내 완전히 히필린만이 남은 히필린을 없애버린다면, 그 때에야 모든 비극이 마무리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히필린은 생각하곤 했다.

그 때를 위하여 히필린은 인력을 따라갔다.

 

그 날은 히필린이 내 허벅지 위에 앉은 자세로 섹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좌석 뒤의 공간에서 운전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히필린은 그런 나의 위에서 눈앞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의 장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맞이하고 있었다. 인력을 쫓아가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인력은 점점 더 강해져, 이제는 따로 엔진을 추진시키지 않아도 우주선이 알아서 우주의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주체하지 못하고 물살에 휩쓸려가는 강물 위의 한 조각 종이배였다.

 

, 피아.

 

히필린이 내 목을 끌어안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시각과 촉각과 후각이 온통 히필린의 살빛 가슴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대답했다.

 

, .

어떡하지이젠.

괜찮아괜찮아.

 

그 때, 나는 히필린의 살결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히필린은 똑똑히 뜬 두 눈으로 우리의 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길도, 어떤 목적지도, 어떤 표지판도 없는 그야말로 무한의 광야廣野. 무엇보다 명확한 우리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히필린은 그 때야말로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상하좌우가 완전히 뒤집힌 혼돈 속에 떠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할 혼돈.

그 깨달음과 함께, 히필린은 며칠간 잊고 있었던 소망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죽고 싶다, 그냥 죽어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그 감정은 무척 끈적하고 농밀해서, 섹스가 끝나고 히필린의 눈앞에 장대한 우주가 치워지고 난 후에도 한동안 히필린에게서 떨어져나갈 줄을 몰랐다.

히필린은 만성적인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신, 나는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럴 거면 돌아가자.

 

그것이 내 단순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히필린은 조수석에 앉아서 엄지손톱을 깨물며 불안하게 대꾸했다.

 

돌아갈 수 있어? 너무 멀리 왔잖아.

인력의 반대 방향으로 엔진을 몰면 돼.

연료는 있고?

당분간 쓸 정도는 있어. 가다가 서버리면, 근처를 지나는 우주선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고.

아무도 안 지나가면?

히필린, 그런 걸 고민할 시간에 일단 돌아가 보는 게 어때?

피아.

 

히필린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나는 모르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히필린을 설득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대신, 나는 히필린이 잠든 틈을 타 조작을 반대로 해놓고 조용히 엔진을 추진시켰다.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던 동체가 조심스레 호흡을 시작했다. 아무리 1년 경력의 초보 방랑자라도 엔진 소리 정도는 눈치 챘겠지만, 오랜 잠에서 깨어난 히필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주선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만히 따라갔다. 인력의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잡아당기지 않는 저 평범한 삶의 세계로.

그즈음에는 식량이 처음 있던 양의 반의 반도 남지 않아, 긴축재정을 시작해야하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히필린은 규정된 최소 칼로리에 군말 없이 잘 따라와 줬다. 오히려 배가 고파서 괴로운 건 나였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단백질의 맛과 포만감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애써 견디다가 못해 히필린의 손가락을 빨아먹었다. 짭짤한 인간의 소금기. 히필린은 좌석 뒤에 팔을 베고 누워서, 동행자가 자기 손가락을 빨아먹으며 가만히 미쳐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피아.

 

히필린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순간적으로 제정신을 차려서 대답했다.

 

?

나는, 이피네프린 얘기 말고도 수많은 우주의 소문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그 중에 우주의 인력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어.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도입부였다. 나는 잠시 빨아먹는 걸 멈추고 히필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

갈라파고스가 그 인력을 '천사의 손짓'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따위야 흔하지만, 그 수많은, 인력을 따라가 죽음을 맞은 유명한 방랑자들의 흔한 이야기 말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살마 벨로디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푸른 별이라곤 천원짜리 엽서에서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어.

그가 인력을 따라갔던 이유는, 지구를 탈출한 많은 방랑자들이 물과 식량을 사고 연료를 채우러 그가 있는 정거장에 들를 때마다, 인력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고 다시 길을 떠났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그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그들 모두가 인력을 따라가는 일을 '미친 짓'이라고 말했지. 설화 속의 갈라파고스 같은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그 방랑자들에게 우주는 삶의 공간이었지 죽음의 터전은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들 모두가 가진 하나의 죽음에 관한 꿈은 그들의 오래 된 푸른 별로 돌아가, 그들의 육신이 고향의 흙을 덮고, 고향의 흙 속에서 썩어가는 것이었어.

그러나 살마 벨로디아는 돌아갈 고향별과, 다시 손에 쥐어야 할 고향의 흙 같은 것이 없는 우주 정거장 3세였지.

몇 번, 정말로 우주 인력을 따라간다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었어.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곳에서 맞게 될 어떤 환상적인 삶의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어. 아니, 죽음을 상상하는 자들에게도 그 죽음은 각오해야 할 대가였고,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지. 그 밖의 어떤 것, 그들 모두는 죽음 이외의 어떤 것을 기대하며 인력을 따라가고 있었어.

살마 벨로디아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간다면, 내가 인력을 만나 그것을 따라간다면. 나는 그런 것을 기대하면서 가지는 않을 텐데.

그 때, 살마 벨로디아가 기대하던 것은 칙칙한 무색의 죽음, 어떤 영광도 어떤 찬사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죽음 바로 그것이었어.

그래서 살마 벨로디아는 63세가 되던 해에, 평생을 우주 정거장 안에서 산 화초 같은 몸을 이끌고, 가족들에게 '미쳤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누구의 축복도 환호도 받지 못한 채로 작은 우주선에 몸을 실었어. 어디선가 인력을 만나길 바라면서.

그것이 자신을, 죽음의 터전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면서.

 

거기까지 말하고, 히필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히필린이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잠시 히필린이 호흡을 고르도록 기다려주었다.

 

살마 벨로디아는오래도록 우주를 떠돌았어.

 

히필린이 잠시 후 이야기를 재개했다.

 

그는 우주에서 많은 것을 보았어. 생전 볼 것이라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을. 제멋대로 생긴 소행성들이 서로 부딪혀 깨지는 모습을, 토성의 고리를, 거대한 가스의 별과, 모두의 고향 푸른 별 지구를. 그리고 마침내, 살마 벨로디아는 에스텔 북위 180도 지점을 지나가던 중에 우주의 계시를 느꼈어. 그의 우주선 나침반이 무척 빠른 속도로 뱅글뱅글 돌다가 깨져버렸지.

살마 벨로디아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인력이 이끄는 방향으로 우주선을 몰았어. 여행은 오랜 기간 이어졌어. 그래서 우주선 안에서 살마 벨로디아가 64세의 생일을 맞았을 때, 살마 벨로디아는 솔리드 프로틴을 육각형으로 쌓아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 수도 있었지.

프로틴을 씹으면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언제일까라고, 살마 벨로디아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은, 그 자체로 죽음의 모양을 한 순간은 언제 내게 찾아올까, 라고.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히필린이 내게 물었다. 그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싣고 있지 않았다.

 

? 피아, 그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나는 살마 벨로디아의 최후를 알지 못했다. 나는 히필린이 그것을 알려주기를 바랐다.

 

어떻게됐는데?

 

히필린은, 잠시 눈을 감더니, 먼 곳을 떠도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는 돌아왔어.

 

인력의 힘과 매력에서 벗어나, 아무런 힘도 매력도 없는 그의 일상으로, 삶으로. 살마 벨로디아가 엔진을 반대 방향으로 추동시킨 것은 그가 여정을 떠난 지 꼭 674일이 되던 날이었는데. 그 날, 살마 벨로디아는 우주선의 매끈한 전면창을 통해 시야 저 편에서 아른거리고 있는 기묘한 존재를 발견했다.

그는 우주 점쟁이였다.

우주 점쟁이야 신기할 것도 없지만, 그 때 살마 벨로디아가 떠가고 있던 곳은 이미 대부분의 우주 정거장이 모여 있는 도심에서도 멀리 벗어나 드문드문 방랑자들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장사가 되기는커녕 생활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오지에 우주 점쟁이가 앉아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우주 점쟁이는 오래 된 동체 위에 조촐한 간판을 걸어두고 감은 눈으로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고, 살마 벨로디아는 문득 호기심을 느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살마 벨로디아가 초보 방랑자용 수어책을 펴놓고 더듬더듬 말을 걸자, 우주 점쟁이는 감은 눈을 뜨고 어두운 눈동자로 살마 벨로디아를 응시했다. 우주 점쟁이는 검은색도 파란색도 아닌, 금색으로 군데군데 빛나는 신비한 남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안녕."

 

그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살마 벨로디아에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살마 벨로디아는 어떻게 복채를 지불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식량이나 돈을 받고 점을 쳐주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받는 것은 조금 다른 거란다."

"뭔데?"

"그건 점을 친 후에 알려줄 거야."

 

의심스러운 말이었지만, 살마 벨로디아는 왠지 그가 사기를 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사기를 치고 싶었으면 이런 촌구석에서 인력을 따라가는 방랑자나 상대하면서 앉아있진 않을 것이다. 살마 벨로디아는 손으로 좋아, 라고 말했다.

 

"무엇이 궁금해?"

 

우주 점쟁이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빛내면서 물었다. 살마 벨로디아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려운 질문이네."

 

우주 점쟁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눈동자가 눈꺼풀 안으로 숨었다. 그 때, 살마 벨로디아는 우주 점쟁이의 어깨뼈가 조금 틀어져서 기묘한 각도가 된 것을 보았지만, 잘못 보았나 싶어 잠자코 있었다. 우주 점쟁이는 눈을 감은 채로 말을 시작했다. 살마 벨로디아는 그에게 대답할 방도가 사라져 난처했으나 일단은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인력을 따라 우주를 떠도는 방랑자야."

 

말을 건네는 우주 점쟁이의 손동작이 아까보다 미묘하게 더 각이 져 있었다. 살마 벨로디아는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자가 아까와는 다른 사람임을 눈치 챘다. 우주 점쟁이가 다시 눈을 뜨자, 그의 눈동자 색깔이 좀 더 탁해져있었다.

 

"너의 미래가 궁금해?"

 

살마 벨로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선택의 별, 파이렐이 내려주는 계시를 해석하는 자. 너의 미래엔 두 개의 선택이 가로놓여있구나."

"어떤?"

"계속 가던가, 돌아가던가."

 

별 것 아닌 대답에 살마 벨로디아는 김이 빠졌다. 살마 벨로디아는 말을 이었다,

 

"그건 선택도 아냐. 난 돌아갈 생각이 없거든."

"아니, 너는 이미 이 선택에 연루되어 있어. 방랑자야, 왜 네가 처음 너의 고향을 떠나 이 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나는 알지."

"왜인데?"

"너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

 

살마 벨로디아가 침묵했다.

 

"그러나 방랑자야, 너는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네가 너의 고향과, 집과, 사람들과, 관계와, 그 모든 사랑, 미움, 기대와 원망, 배신, 그리고 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건 오롯이 너의 선택은 아니었단다. 너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야. 너는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땅을 떠나 이 곳에 왔으니."

"하지만,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이 있지?"

"여기에서야말로 네가 진정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너의 과거는 의미를 갖는단다. 너는 순응이 아닌 죽음을 선택할 때에만 네가 비로소 선택의 주체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너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었어."

"그게 뭐지?"

"그건 저항이야."

"하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

"물론이지, 방랑자야, 그러니 아무도 네가 선택한 것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어. 그러나 두 개의 선택지를 직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인생의 어느 시점에 나를 만나게 된단다."

"네가 누군데?"

"나는 선택의 별, 파이렐."

"."

"지금에야 너는 진정한 선택 앞에 섰어. 죽음을 향해 계속 가던가, 돌아가서 저항하던가. 그게 전부야."

 

살마 벨로디아는 잠시 손을 멈춘 채 고민에 빠졌다. 우주 정거장에서 태어난 것부터 시작해 살마 벨로디아의 인생은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살마 벨로디아는 죽기로 결심했었다.

 

"파이렐아."

 

잠시 고민하던 살마 벨로디아가 우주 점쟁이를 불렀다.

 

"네가 받아가는 건, 바로 나의 선택이었구나."

 

우주 점쟁이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살마 벨로디아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살마 벨로디아의 선택을 알았다. 히필린이 이미 이야기가 시작할 때 결과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마 벨로디아는 돌아가기를 선택한 거지?

맞아.

돌아가서는 어떻게 됐어?

 

그게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히필린은 고집이 있는 이야기꾼같은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몰라.

? 가장 중요한 부분 같은데.

아니, 피아, 그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가 돌아가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야.

 

나는 히필린이 왠지 살마 벨로디아의 최후를 알면서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히필린은 내가 그 결말에 우리를 대입해볼 것이 두려운 걸까? 나는 살마 벨로디아가 엄청나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더라도 딱히 우리의 귀환에 의심을 품지는 않겠지만, 굳이 히필린의 침묵을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히필린이 그 날 말을 아낀 이유가 단지 살마 벨로디아의 최후가 비참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히필린은 내가 우리의 귀환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보다, 살마 벨로디아의 선택을 평가하는 것을 더욱 경계했다. 그는 누구도 살마 벨로디아의 선택을 칭송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의 최후를 알게 되는 순간 그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살마 벨로디아의 최후도, 그의 선택도, 그에 대한 평가도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건 히필린이다. 나는 히필린이 살마 벨로디아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동안, 그 스스로도 선택의 별 파이렐을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제야 진정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나 몰래 엔진의 전력을 끄거나, 깊이 잠든 나를 우주의 망망대해 한 가운데로 밀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품에만 가만히 안겨있었다. 히필린은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러니 마치 히필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고집스런 이야기꾼처럼 우리의 결말에 대해 말을 아끼려고 한다. 히필린은 죽음을 생각하기를 멈추고 삶으로, 그의 가장 지리하고 멸렬한 삶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일러스트 l 유은진 기자
일러스트 l 유은진 기자

 

 

현은진(국문 15)
현은진(국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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