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최우수작] 포유식물
[2018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최우수작] 포유식물
  • 성대신문
  • 승인 2018.05.22 01:28
  • 호수 1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유식물>
 

서리가 내려앉은 산길 위로 등산화 자국이 찍혔다. 아래로 고개를 돌리니 내 발자국 위로만 조심스럽게 발을 올리는 선주가 보였다. 내 발자국에서 어떤 온기라도 느끼는 것일까. 혹은, 사람들의 경고대로 선주의 날카로운 눈빛을 조심해야하는 것일까. 두 사람 뒤로 이어지는 한 쌍의 발자국에는 어딘지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침묵 속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걸었다. 가만히 서서 나를 올려다보던 선주는 내가 움직이자 말없이 따랐다. 아득히 펼쳐진 숲속에서 숨소리는 거리감이 없었다. 내 가쁜 숨소리를 듣고 있자면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지 저 멀리 발끝에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숨소리를 더듬어 찾다가 나는 문득 어색함을 느껴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선주의 두 눈이 보였다. 숲속에는 내 숨소리밖에 없었다.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가는 선주의 가슴팍에는 귀를 대어도 소리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위 사이를 지나는 살모사처럼, 고개를 수그린 수녀처럼 선주는 침묵을 지켰다. 티를 내지 않으려 용을 쓰면서 나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선주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 가는 거예요.”

어느 보통의 어른보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선주는 나에게 물었다. 몇 시간 만에 처음 들은 선주의 목소리였다.

아직 더 가야 볼 수 있어. 안 힘들어?”

선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 서서 내가 걷기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숨을 고르다가 출발하자 선주가 따라 걸었다.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나는 선주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발이 미끄러진 것은 역시나 선주를 돌아보던 도중이었다. 뾰족한 바위라고 생각해 발을 딛었는데 어느새 해가 떠 서리가 녹은 모양이었다. 바위의 모양은 상관없었다. 몸은 자꾸만 아래로 향했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소름끼쳤다. 얼마나 굴렀을까, 부러지다 만 나무 밑동에 내 몸이 걸렸다.

어디가 아픈지 가늠하기 위해 몸을 조금씩 꿈틀거리다가 나는 선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부르는 소리도, 달려서 내려오는 소리도 없었다. 학부모회의 때 다른 학부모들이 보인 걱정 어린 눈빛이 기억났다.

선주는 진단이라도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선주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법 했다. 뾰족한 바위에 등산화를 확실하게 고정시킨 느낌이 발바닥에 남아있었다. 내가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선주의 표정은 어떨까. 한숨을 쉴까, 눈 끝을 찡그릴까, 다행이라며 슬쩍 웃을까. 어느 쪽이든 선주는 또 다시 내 발자국만을 밟으며 나를 따라올 것이었다.

그 때 시퍼런 하늘 아래 멀리서 선주가 보였다. 아주 느린 움직임으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선주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채 산을 걸어 내려오는 선주의 모습에서 나는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선주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내 앞에 선주가 다가왔을 때에도 나는 그대로 그 아이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질문인지 선언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선주는 손을 펼치고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선주의 손을 잡고 일어나 몸을 털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

 

선주의 남동생을 배고 있던 진희가 죽은 날, 선주는 목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장례식에서 쓰는 꽃은 목화가 아니라 흰 국화라고 내가 알려주자, 선주는 분명히 목화였다고 답했다. 자신의 치아들이 하나씩 목화솜이 되어 입 속에서 퐁, , 하고 솟아났다고 말이다.

진희의 시체를 화장실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진희의 유언장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지하철역 쓰레기통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유언장에는 선주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많이 참아왔는지에 대해서 적혀있었다. 평소에 진희는 선주를 거의 항상 품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진희가 먼저 선주의 포옹을 풀어헤친 것이 그 포옹들 중 얼마나 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장례가 끝나고 일주일 뒤, 나는 학교에 불려갔다. 교무실 한 구석에 파티션으로만 마련해놓은 상담실은 교장과 담임, 선주, , 이렇게 네 명만 앉으니 더 이상 자리가 없었다. 그 중앙에는 학교 외에 다른 곳 어디에서도 볼 수 없지만 학교마다 하나씩 꼭 있는 못생긴 탁상이 위치했다. 그 탁상 위에서는 작은 히터가 대가리를 돌리며 사람들에게 골고루 열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선주에게도 열기가 가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파티션 너머로 교사들이 선주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선주 아버님.”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낮게 신음만 뱉는 교장의 눈치를 보던 나는 옆에서 선주의 담임선생이 말을 걸자 깜짝 놀랐다.

선주 어머님에 대해서 선주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교장의 눈치를 살폈다. 하얗게 내려온 눈썹이 신경 쓰였다. 여전히 교장이 눈을 감은 채로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나는 담임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좋은 이야기요?”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

담임선생은 답을 하기에 앞서 맞은편에 앉은 선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선주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와 담임선생 사이의 대화를 차근차근 따라오고 있었다. 담임선생은 불쾌함을 견디려 애쓰는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렸다.

선주 어머님을 선주, 자기가 죽였다고, 해서요.”

더듬더듬 말을 뱉고 나서 담임선생은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선주는 내 대답을 기다렸다.

선주가 유언장을 보았을 리는 없었다. 시체를 발견할 때부터 유언장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찢어서 버리기 전까지 유언장은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희가 선주를 미워했다는 사실을 선주가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아마도.

왜 그런 말 한 거니.”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선주에게 물었다. 선주는 두어 번 눈을 깜빡거리다가 담임선생을 보고 말했다.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 이것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담임선생은 조금 급한 말투로 선주의 말을 받았다. 교장이 한 번 더 낮은 신음을 길게 뱉었다.

분명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열 명이 넘는데도 선주는 그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쉬는 시간이라 시끄럽긴 했어도, 그런 말을 잘못 들을 리가 없죠.”

히터 대가리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삐걱거렸다. 다시 보니 선주는 일부러 히터의 열기가 닿지 않는 곳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징계는 어떻게. 피할 수 없을까요.”

내 물음에 담임선생은 물론이고 교장도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다. 눈을 계속해서 감고 있던 교장은 슬쩍 눈을 떠서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선주 아버님, 오해 마세요. 이런 일로 학교에서 징계를 내리진 않아요.”

선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담임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에 반해 담임선생은 다급하게 선주와 나, 교장 사이를 번갈아보며 단어를 이어 붙였다.

저희는 그저, 선주가 걱정될 뿐이에요. 물론 선주 곁의, 다른 친구들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요.”

겨우 말을 끝낸 담임선생은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면서 의자에 기대앉았다. 나는 다시 선주를 바라보았다. 가늘고 긴 눈매가 날카로웠다.

선주야. 잠깐만 교무실 밖에 나가있을래?”

교장이 눈을 떠서 선주를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놀란 것은 선주가 아니라 나였다. 선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잠깐 동안의 침묵 위에 히터 소리가 덮였다. 교장은 깍지를 끼고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주 아버님. 선주는 분명 특별한 아이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특별해서 사회에서 잘 어울리지 못할 것이 염려되네요. 듣자하니 원래부터 감정이 격하고 자주 우는 친구라던데.”

담임선생은 교장의 말 한 음절 한 음절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교장의 말이 끝나자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다른 부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선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거예요. 워낙에 선주가 민감하니까요.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교장이 헛기침을 했지만 담임선생의 말이 덮이지는 않았다.

아무튼, 요는 이겁니다. 전에도 선주 같은 아이를 많이 봐왔지만, 결국 특별한 아이들은 특별한 처치를 필요로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일은 일반적인 아이들도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선주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대학병원 교수가 있는데, 이 친구가 아동정신건강에서는 손에 꼽을 정돕니다. 고깝게 듣지 마시고 선주를 생각해주세요.”

히터 위로 교장이 건네는 명함을 받고서 나는 다시 자리에 앉지 않았다. 담임선생이 앉아야 할지 일어서야 할지 몰라 헤매는 동안 나는 지갑 깊숙이 명함을 꽂아 넣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꼭 데려가 보겠습니다.”

더 말을 하려는 교장을 뒤로 하고 교무실 바깥으로 나가자 복도에 선주가 서있었다.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선주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눈만 깜빡였다. 선주의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나는 진희를 떠올렸다. 조퇴 처리가 된 선주를 데리고 맥도날드에서 오백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버렸다.

예상 외로 그 이후에 학교에 불려가는 일은 없었다.

 

*

 

엄마는 정신병원에 다녔었죠?”

까진 팔꿈치를 생수로 씻어내는데 옆에 서있던 선주가 느닷없이 물었다. 언젠가 듣게 될 질문이었지만, 왜 지금, 왜 여기서 듣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녔었지.”

다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나는 대답했다. 굴러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두 시간은 더 걸어야 절이 나올 것이었다.

정신병은 유전된다던데.”

선주의 말을 무시한 채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선주도 입을 다물고 내 뒤를 따라왔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바윗길이 나무 계단으로 바뀌었다. 발걸음이 한결 편해진 나는 마음 놓고 보폭을 늘렸다. 숨도 더 이상 차지 않았고, 구르면서 부딪힌 곳들을 제외하고는 몸도 편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선주는 점점 더 힘겨워하고 있었다. 간격이 늘어난 내 발자국들을 좇아 허둥댔고, 그 바람에 엉뚱한 곳에 발을 올리고는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가슴이 묘하게 먹먹했다. 결국 나는 차츰 보폭을 다시 줄여 걸었다. 선주의 걸음도 다시 안정을 찾았다.

엄마는 죽을 때까지 낫지 못한 거죠?”

여전히 아래만 응시하면서 선주가 터덜터덜 말을 뱉었다.

낫지 못해서 돌아가신 거야.”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스님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낫지 못한 걸까요.”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 등에 선주의 머리가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선주의 얼굴이 보였다. 자그마한 얼굴 위로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주 뒤로는 까마득히 멀고 깊은 내리막길이 보였다.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우리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글쎄다.”

선주의 멍한 두 눈을 쳐다보면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진희가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선주 때문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

 

선주는 까다로운 아이였다. 언제나 진희의 관심을 원했고, 사랑을 받지 않는 매 순간을 상처로 받아들였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나는 선주를 항상 곁에 두었지만 그것이 선주에게는 부족했다. 갈수록 선주의 말수가 줄어든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진희는 하루 종일 울었다. 그 길로 진희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 진희와 내 곁에서 선주는 차츰 웃음을 되찾았지만 진희는 선주의 유년기에 대한 죄의식을 버리지 못했다. 진희는 선주의 손바닥을 자기 이마에 대는 것을 좋아했다.

선주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진희는 통원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선주 데리러 당신이 가면 안 될까.”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현관문 앞에 서있던 진희가 나지막이 물었다. 현관 옆에 걸린 벽시계에서 초침소리가 들려왔다.

? 선주는 내가 가면 안 좋아할 텐데.”

내 대답에도 진희는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 불안스러운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진희를 데리고 소파에 가 앉았다.

왜 그래? 힘들어?”

아니, 그냥. 요즘 들어서 선주가 까칠해서.”

선주의 변화는 나도 조금씩 눈치 채고 있었다. 웃음과 울음이 많던 선주의 얼굴은 점차 무표정으로 자리 잡았고, 모든 말에는 공격성이 배어있었다. 그 공격성에 나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속상하기는 해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진희에게는 전혀 다른 깊이의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진희가 지친 눈을 깜빡였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나는 진희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진희는 고목이 쓰러지듯 천천히 누워 소파 가장자리에 머리를 묻었다.

내가 듣는 데에서 욕도 하더라, 어제는. 만만한 거야.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자기 전에 내쉬는 평화로운 한숨 같은 목소리로 진희는 말했다. 그 가벼움에 놀라서 나는 진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사춘기 애 행동에 그렇게 의미 부여하지 마.”

진희의 대답은 없었다. 숨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실에 나는 홀로 앉아있었다.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적막에 길이를 부여해주었다. 40초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래도 그만큼 선주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지.”

그 때, 진희가 눈을 번쩍 떠서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내 왼 눈과 오른 눈을 번갈아보던 진희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사랑 좀 그만하라고, 선주한테 부탁해볼까?”

진희의 눈동자가 빛났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오싹한 느낌이 몰려와 허벅지 근육을 당겼다. 경직된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진희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소파에 누웠다.

장난이야. 쫄기는.”

초침소리가 60초를 세 바퀴 돌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희는 잠이 든 건지 화가 난 건지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로 눈을 감고 느린 숨만 쉬고 있었다. 평소에 진희가 감정적으로 반응을 할수록 선주는 나보다 진희에게 더 집중했다. 진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참으려고 애를 써도 받은 상처는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없이 자동차 키를 진희의 손에서 빼서 선주를 데리러 가는 것밖에 없었다. 학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선주는 내 말을 모조리 무시했다. 그 후 며칠간 선주는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던 것 때문에 진희에게 화를 냈다.

 

*

 

연애하던 시절, 진희는 이 산으로 나를 한 번 데리고 왔다. 진희가 데이트 장소를 정한 유일한 때였다.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은 진희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행동이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진희만 따라 나는 산을 올랐다. 그런데 정상에 다다를 때 즈음에 작은 절이 하나 보였다. 이름을 써놓은 간판도 없는 절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자신이 지내던 절이라고 진희는 말했다. 그 곳에서 진희는 스님들과 말없이 합장을 하고 얼마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산을 내려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여기에 있으면 내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아. 숲속에서 제각기 자라나는 풀처럼. 그냥 바람을 쐬고, 물을 마시고, 작게 웃는 거야.”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진희가 말했다. 우리는 아홉 달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진희는 가끔씩 절 이야기를 했지만, 선주가 태어난 이후로는 절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절간의 풍경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스며든 걱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선주는 이제 조금씩 힘들어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선주는 서너 발짝 정도 뒤쳐져 따라왔다. 혹시라도 내가 넘어진 때처럼 선주가 넘어질까 두려워 나는 선주를 앞으로 보내고 뒤에서 따라갔다. 선주는 이제 발자국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내 앞을 걸었다.

절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선주가 넘어지면서 계단의 모서리들에 몸을 구석구석 부딪친 것이었다. 그러나 신음소리 하나 없이 이전처럼 가쁜 숨소리만 내쉬면서 선주는 팔을 짚고 일어섰다. 내가 팔을 잡아주려고 하자 선주는 내 손길을 피하면서 눈만 내 쪽으로 향했다.

그 쨍-하고 날카로운 눈빛이란. 진희의 것과는 반대편에 있는 눈이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먹어치우고도 여전히 배고파하는 무언가가 그 속에 앉아있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진희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진희의 음울한 눈빛과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진희였다. 반면 선주의 눈은 사방으로 열기를 뿜었다. 그 열기를 참지 못하고 달아오른 눈알은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면 진희의 뱃속에 들어있던 아이는 어느 쪽이었을까. 오히려 나처럼 평평하고 지루한 눈으로 아이는 마지막 숨을 쉬었을 지도 모르겠다.

 

*

 

선주 아버님 되시죠?”

, 맞습니다.”

그게……. 일단 얼른 여기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

선주가 조금 다쳤어요.”

아니, ……. 알겠습니다, 일단 갈게요. 선주 반이 3학년 3반 맞죠?”

아뇨, 학교 말고 병원이에요. 세 블록 떨어져있는 응급실이요.”

?”

조금 이따 뵐게요.”

전화가 끊겼다.

차를 타고 가면서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헤아렸다. 무엇을 세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러지 않으면 운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응급실 입구에 다다라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오면서 세고 있던 것은 진희의 기일로부터 오늘까지의 거리였다.

응급실은 한적했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는 사람은 내가 선주의 이름을 부르자 느긋하게 마우스 휠을 돌리면서 모니터를 살폈다. 저쪽에 들어가시면 있어요. 손가락 하나만이 위로 올라와 나에게 방향을 가르쳐주었다.

93. 그 기간 동안 선주는 퇴행성 질환에 걸린 사람처럼 조금씩 변해갔다. 점차 짜증이 줄고 울음도 사라졌다. 음식도 덜 먹어서 젖살이 거의 다 빠졌고, 발걸음도 느려졌다. 말하는 문장의 길이도 조금씩 짧아졌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겪는 것과 비슷한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선주는 침대 위에 앉아 입에 하얗고 빨간 솜을 잔뜩 물고 있었다. 선주를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예전에 보았던 담임선생과 교장도 있었다. 나를 본 선주는 천천히 눈을 끔뻑거렸다.

선주 아버님.”

나를 발견한 교장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다행히 건강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상처는 봉합을 다 마쳤고요. 지금 상태가 좀 그런 것은 마취를 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

맞아서 이런 건가요?”

내 질문에 교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 손으로 담임선생을 부른 교장은 담임선생이 달려오자 나에게 다 들리는 귓속말로 물었다.

말씀 안 드렸어?”

, . 교장선생님께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교장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싸움이 있었습니다.”

교장의 말을 듣고 입을 벌렸지만 질문을 하기 전에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말싸움이었어요.”

담임선생은 미간을 찌푸린 채 교장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지윤이라고 선주를 도와주던 친구가 있었어요. 같이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같이 가길래 선주가 많이 나아진 줄로만 알았죠, 저는. 그런데 선주가 오늘 점심시간에 지윤이에게 그랬다나 봐요. 후회하기 전에 자기 옆에서 꺼지라고.”

가끔씩 뒤로 고개를 돌려 선주의 눈치를 살피면서 담임선생은 말을 이었다.

지윤이는 정말로 착한 아이예요. 충격이 컸겠죠. 수업시간에 울음을 못 참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조용히 둘을 불러 선주에게 사과를 시켰어요. 건성이긴 했지만 선주는 미안하다고 했고, 그걸로 끝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 다음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담임선생이 갑자기 말을 흐렸다. 그 모습을 본 교장이 헛기침을 하고는 낮게 신음하듯 말했다.

선주가. . 어디서 난 건지는 몰라도 펜치를 가져와서. 화장실에서. 발견됐습니다.”

?”

잘못들은 건가 싶어서 되묻자 교장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펜치로 이를 뽑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거울을 보면서.”

 

분명히 목화였어요. 국화에서 솜이 나오지는 않잖아요. 내 이빨들이 목화씨가 돼서, 그 속에서 솜이 솟아났어요. , . 입 안에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솜이 가득 차서 아, 나는 목화구나. 하고 생각할 때 잠에서 깼어요.

 

선주의 다문 입 사이로 삐져나온 솜은 점점 하얀색에서 빨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 눈길을 좇던 교장이 간호사에게 무어라고 말하자 간호사는 새하얀 솜뭉치를 들고 선주의 입을 벌렸다. 선주의 구강구조 모양으로 굳어서 나온 검붉은 솜 덩어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실내가 아주 춥지는 않았지만 나는 쓰레기통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 솜을 입에 문 선주는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천천히 내 왼 눈과 오른 눈을 번갈아보던 선주는 슬쩍 웃었다. 선주에게 다가가자 선주는 웬일로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자그마한 주먹을 잡자 선주의 주먹 안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렸다. 주먹을 천천히 편 선주는 내 손 안에 작고 하얀 것 두 개를 넘겨주었다. 송곳니 하나와 어금니 하나였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힌 치아 두 개. 하얗고 빨갛고 매끈매끈했다.

 

*

 

이제 다 왔어, 선주야. 조금만 가면 돼.”

선주는 내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발목을 양손으로 쥐었다. 붉게 부어오른 발목이 아파보였다. 선주가 나무계단 위에 주저앉아있는 사이에 하늘은 점점 푸르게 어두워져갔다.

내가 업어줄까? 업으면 금방이야.”

가기 싫어.”

반말을 선주에게 들어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입에 넣어 삼키려 했던 게걸스러운 아기가, 기억났다.

업어줄게.”

내 말을 듣고 선주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가기 싫다고!”

절이 멀지 않았다. 절의 나무와 스님과 흙을 얼른 선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선주의 손과 발이 내 몸을 두들기는 동안 나는 선주를 끌어안아 들었다. 몸이 흔들려서 위태롭기는 했지만 계단을 올라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한 계단씩 나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기 싫어!”

이제 선주는 울부짖고 있었다. 우는 소리인지 함성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를 뱉으면서 선주는 힘껏 꿈틀거렸다. 나도 있는 힘을 다해 선주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게 문 어금니가 아렸다.

 

*

 

엄마는 항상 그래. 진짜로 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때 그 때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거야. 나는 엄마한테 그냥 문젯거리인 거지. 내가 지금 늦은 것 때문에 이래? 아닌 거 엄마도 알잖아. 엄마 태도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내 눈을 보지도 않아. 우울증 있으면 다야?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돼? 도대체 나를 왜 그렇게 싫어해? 지금도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지, 그냥? 처리해, 그럼!”

 

*

 

10분도 채 되지 않아 선주의 몸 너머로 넓은 공간이 보였다. 노을빛을 받아 빛나는 절간의 모습은 따뜻해 보였다.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던 스님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 익은 곡식처럼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선주도 알아챘는지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내 머리를 때리고 무릎으로 내 배를 찼다. 아침에 구르면서 부딪히고 까졌던 곳들이 하나씩 느껴졌다. 그러다 선주는 내 목덜미를 물었다.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자기도 놓지 않겠다는 오기가 느껴졌다. 피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본 스님의 얼굴은 기괴했다. 처음으로 또렷하게 본 그 표정에 따스함은 전혀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에게서 떨어져서 평화를 만끽하는 이 절의 것들은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을 견디며 슬픔을 참아내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들이 이곳에 있었다.

진희는 종종 울음을 삼키다가 딸꾹질을 했었다. 그래서 진희가 딸꾹질을 하고 있으면 나는 진희가 어딘가에 숨어서 울다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부탁하고 화를 내도 진희는 자신의 울음을 숨겼다. 시간이 지나자 진희는 딸꾹질까지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혹시 있을 눈물의 흔적을 찾아 진희의 눈가를 살폈지만 진희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진희는 절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결혼식 후에도, 선주를 낳고 난 후에도 진희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얼어붙은 침묵 속에서 진희는 언제나 이 절의 풀 한 잎이었을 것이다.

 

따뜻하다.”

언제부턴가 발버둥치기를 그만둔 선주가 말했다. 선주는 아까 전까지 물어뜯던 내 목덜미에 볼을 대고 천천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선주의 체온이 내 목에 느껴졌다. 내 피가 등 위에 흘러내리면서 촉각을 깨웠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이 내 몸 곳곳에, 그리고 내가 껴안은 선주 속에 있었다. , , 하고 솟는 솜처럼 새하얗고 무해한 온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따갑고 쓰라리며 가끔씩 죽고 싶어지는, 그런 열기였다.

 

일러스트 l 유은진 기자
일러스트 l 유은진 기자

 

김원영(심리 1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인사캠 - (03063)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3층 50325호
  • TEL : 02-760-1240
  • FAX : 02-762-5119
  • 자과캠 - (16419)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성균관대학교 학생회관 2층 03205호
  • TEL : 031-290-5370
  • FAX : 031-290-5373
  • 상호 : 성대신문
  • 발행인 : 신동렬
  • 편집인 : 배상훈
  • 편집장 : 이상환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환
  • 성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성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skkuw.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