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몇 해 전에 친구 둘과 용인 외곽을 걷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를 맞았다. 우리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지만, 속옷이며 양말까지 쫄딱 젖기까지는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 비를 피할 곳은 여전히 없었다. 사방으로 누렇게 죽은 작물들은 자리에 앉아 빗물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뜀박질을 멈추었다. 어떤 혼란도 없이 스스로에게 내려지는 처벌을 감내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달콤하고 자유로웠다. 손가락만 한 빗방울들을 맞으면서는 누구에게도 죄가 없었다. 그때 나는 웃었던 것 같다.

함께 비를 맞던 두 친구와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아니고, 만나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혹시 내가 너무 일찍 멈추었던 게 아닐까. 다리 근육이 찢어지고 모든 숨이 고통스러울 때까지 계속해서 달렸더라면 마른 땅을 밟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두 친구와 햇볕 아래에서 옷을 말리며 함께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생각에 목이 멘다. 친구가 지쳐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계속 달리자고 외칠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로 폭력적일 수 있을까.

 

필담, 학교 친구들, 가족들, 남희, 상민, 해윤, 지웅, 종빈, 모두 사랑하고 존경한다. 이 글은 그대들을 향한 불안한 다짐으로 썼다. 스스로의 생명력에 몸서리를 쳐 본 모든 사람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원영(심리 14)
김원영(심리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