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시를 쓰거나 읽는 행위가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나와 세상을 정리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일상적 수행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겪는 일과 세상은 무엇인가 등을 궁금해하는 데서 시 쓰기는 출발한다.

시는 감정을 리듬에 맞춰 표현하는 글쓰기 양식으로 이해한다. 이번 응모작들 중에도 아프다, 슬프다, 울다 등의 언어와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시적 주체가 내 자아의 목소리에만 전적으로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심정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방적 목소리밖에 낼 수가 없다. 내 자아만큼의 협소한 세계에 갇히는 꼴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촘촘하게 짜여진, 타자에게서 비롯된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된 온갖 경험”이라고 바디우라는 말한 적이 있다. 시쓰기는 사랑이다. ‘타자에게서 비롯된 설렘, 경험, 시련, 고통’으로서 사랑은 ‘타자가 되어 봄’으로써 열린다. ‘타자-되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내가 주체로 거듭나고 세상이 열어 밝혀진다. 평화와 자유가 온다.

그런 의미에서 우수작 <나무의 이명을 듣다>는 참 좋았다. 나무의 언어를 들어보려는 자는 “편지를 거꾸로 읽고”, 도시 한 복판에서 “끌려가는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무 이파리 뒤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기어 나오는 시간”을 감지한다.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에 대해서 “귀를 막을 때 들려오는 음악”, “나무의 이명”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확장이며 세계의 열림이다.

최우수작 <메콩>은 원숙한 기량과 깊은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메콩강 늙은 사공의 얼굴 주름 사이를 들여다보는 안목이 깊고 성실하다.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중국의 윈난성과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흐르는 메콩강의 유장함과 인간의 위엄이 함께 대비되어 감동을 준다. 강을 둘러싼 풍경들과 인생살이가 잘 조화되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도 바람은 분다”, “물에서 태어나서 눈이 퍼렇다”, “밥 짓는 냄새를 가르는 오토바이 소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가작 <충장로 블루스>는 감당하기 벅찬 청춘의 뜨거운 열기, 발광을 스무 살의 언어와 몸짓과 취향으로 진솔하게 표현해 설득력을 얻었다. “보랏빛 원피스의 색깔”로 각인된 첫사랑과 실연을 재수생, 훈련병이라는 아득한 생들과 대비시킴으로써 덧난 청춘이 더욱 아팠다.

가작 <어린 일기장의 낡은 두 눈>은 상상력과 언어들이 참신했다. 일기장 속의 언어들이 튀어나와 소리를 내고 나를 쓰다듬고 아버지를 불러내는 구성은 좋다. “갇힌 언어들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상상력, “참외 포장지 같은 언어들로 나를 단단히 포장한다”는 표현 등은 이 글쓴이가 좋은 시인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입상작을 뽑기 위해 그밖에도 많은 작품을 놓고 갈등하였다. <집시의 이름으로>는 매력적이었다. 집시와 더불어 유랑하며 춤추는 시상을 좇아가며 나도 흥분하고 설레었다. 언어와 시상이 조금 더 긴밀했으면 좋겠다. <개나리에 대한 해석>은 ‘트랙 위를 달려봤다며 달리기를 만류하는 형’과 ‘간절히 트랙을 뛰어보고 싶은’ 나, 불안하고 불투명한 세상에 짓눌리지 않고 그 경계를 달리는 청춘의 열정이 시적 리듬을 얻고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는 부녀간의 어색하지만, 깊은 관계에 천착하는 심리적 지구력이 좋았다. <편지>, <소화>, <열대야>, <이방인> 등도 기억에 남는다. 언급하지 못한 더 많은 작품들이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84명 모두, 다음을 기약한다.

정우택 교수(국어국문학과)
정우택 교수(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