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수업이 끝나고 학교 앞 극장에서 영화 버닝을 봤다. 아직 등단하지 못한 습작생인 주인공 종수를 보며 '나도 시를 쓰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있어 전화를 걸었다. 상냥한 목소리가 성대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다.

서정주의 <신부>, 윤동주의 <소년>을 읽고 감명받아 시라는 걸 한 번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그 치기에 일주일여를 끙끙대며 습작 두세 편을 끄적였다. 5년 전 여름, 그렇게 <충장로 블루스>를 썼다.

광주 충장로에 있는 빠리노래방은 고향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이다. 친구 김도영의 입대 전날, 머리 미는 걸 지켜봐 주고 함께 빠리노래방에 갔다.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르는 도영의 얼굴에 미러볼 불빛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분홍빛은 첫사랑에 차인 상처, 초록빛은 그 애와 사귀게 됐다며 설레서 내게 전화하던 때 같네', '모든 순간이, 모든 빛에 담겨 여울져 흐르는구나' 생각했다. 우리를 비추는 미러볼이 '청춘거울' 같았다. 토이의 '안녕 스무살'과 짙은의 '백야'는 각각 나와 도영의 18번이었다. '득음의 경지구나' 울다가 웃던 대화, 새벽 무등산 전망대에 올랐던 일도 지금까지 생생하다. 시 쓰기에 대해 갖춰진 게 전혀 없어 보고 느낀 그대로를 순수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나는 시를 쓰지 않았지만 <충장로 블루스>를 좋아하던 도영은 신작 계획이 없냐며 내게 몇 번 넌지시 물었다. 다니는 학교 교양수업에서 좋아하는 시를 발표하는 시간엔 이 시를 가져갔다고 한다. 교수님의 "처음 듣는 시인이네요" 물음에 "가장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한바탕 웃었던 기억도 난다. 시를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시를 진심으로 좋아해 준 친구 김도영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예비 훈련병'은 대학원생이 됐고 '속없는 재수생'은 예비역이 됐다. 5년간 케케묵어 있던 시를 끄집어낼 기회를 준 성대문학상과 부족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교수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곽은산(신방 15)
곽은산(신방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