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린 일기장의 낡은 두 눈

 

무뎌져가는 두 개의 지붕 위에

자못 따스한 하늘빛은 똑같은 음절들을 부드러이 흘리었다

낮고 반짝이는 비닐하우스들이

아아아 소리치며 합창하던 곳

음절들은 굽이쳐 그

좁고 덥고 뜨거운

우수가 꿈틀거리는 곳으로 들어가 단단히 굳어졌다

소리들의 신성한 납골당

아무도 울지 않는 납골당에

굳건하게 맺힌 과실은 너무도 달았다

아버지는

달디 단 참외를 좋아하셨다

다이아몬드를 울대 삼아

속삭이던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잠들어가는 어린 나의 더벅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그 손길의 향수가

그리워질 때면 그의 서재 속에 감추어진

단단한 언어들을 훔쳐본다

참외 포장지 같은 언어들로 나를 단단히 포장한다

흑백으로 굳어내리는 글자들로 나를 하얗게 분칠한다

 

무뎌진 수없는 지붕 위에

사뭇 소슬한 하늘빛은 똑같은 음절들을 부드러이 흘리었다

몽상 같은 졸음들이 쏟아지는 책상 위에서 나는

아아아 소리치지 않았다

졸음 속에서는

유년의 방 한편에서 나지막이 울어대던

박제된 부엉이도 사라진다

언어들을 녹이고

하이얀 하품 속으로 기대어 안겼다

문득

따뜻한 별을 바라보며 소원하던

별 주위의 먼지들을 경멸하던

서늘히 굳은

어린 나의 기도제목을 떠올린다

 

온도를 구별하지 못하는 낡은 두 눈은

좁고 길고 더운

자궁 속에서 태동하는 지하철의 첫차 소음처럼

냉정하다

한 마디의 말 없는 무뎌진 소리들

녹는점을 애타게 찾는 갇힌 언어들을

콘센트에 꽂힌 전자레인지에 돌려

굳히려고 했던 낡은 소음이다

 

수없는 지붕들의 광경을 이렇게 읽노라

입을 크게 열어젖히고 소리 없이 외친다

내가 선택한 수업에서

적막한 졸음과 함께

책상 위에 엎드려 흐물거린다

몽롱함 속에

부서진 흑연으로

녹아가는 글씨들을 흩뿌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품어야 할 두 눈망울이 이렇게 마주한다

하얗게 녹아있는 여기서

 

손국현(사과계열 18)
손국현(사과계열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