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나의 일기장을 보았다. 2009, 초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만년 다이어리에 수 놓인 글자들은 너무도 평면적이었다. 표지는 알록달록했지만 내가 써 내려간 속은 그저 깊어 보이는 듯한 평면 위에 그려진 흑백이었다.

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물결치던 성주군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시는 아버지.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온 어린 나는 절대적인 존재와 사고를 상정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혈육과 신을 모두 상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단단하면서도 포근한 것이었다. 그러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일기장이 문득 너무도 냉정했고 낡았다고 느꼈다. 글을 쓰고 손에 굳은살이 박일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 굳어버린 살이 나의 삶을 훈장으로 만들어 밤낮으로 자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 짓고야 마는 것이다. 번지르르하고 굳건한 언어로 나를 포장하고 그 뒤에 숨어 본질을 잊는다. 역겨움은 언제나 수반되는 것이라고 조금씩 되새기는 이 태도가 역겨워졌다.

그렇기에 가작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수상이 부여할 수 있는 내 역겨운 태도들에 대한 굳은살 때문에 수상이 조금은 꺼려지는 부분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녹아가는 언어들을 쉬지 않고 사랑하기로 했고 이젠 굳은살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아졌다. 굳건함에서 오는 안락함, 주변부의 목소리들이 지워지는 포근함이 아니라 훨씬 더 불편하지만 녹아드는 사고에 푹 안겨 몽롱함 속에 신음할 수 있는 안락을 원한다.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이 이 시에 부여되었기를 바란다.

 

손국현(사과계열 18)
손국현(사과계열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