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미학 '그로테스크', 문화를 읽다
혼돈의 미학 '그로테스크', 문화를 읽다
  • 우연수
  • 승인 2018.05.22 02:29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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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그로테스크, 비판적 사고 유도해
신체·민중 운동성, 카니발 그로테스크로 형상화

 

 

버려진 정신병원을 그로테스크한 *미장센으로 구현한 영화 ‘곤지암’은 지난 3월에 개봉해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누적관객수 약 267만 명으로 역대 공포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2016년 맨부커 인터네셔널 부문 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그리고 지난 2월 최영미 시인이 발표해 화제가 된 ‘괴물’에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선명하다. 그뿐인가. 촛불시위, 퀴어 퍼레이드, 정치 인사의 막말 등 그로테스크는 다양한 모습으로 현대 사회에 편재한다.

가장 그로테스크한 것이 가장 본질적이다
그로테스크는 “추한 것, 낯설고 혐오스러운 것, 우스꽝스러운 것”을 나타내는 말로, 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나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설명하는 데 쓰인다. 1957년에 볼프강 카이저가 그의 저서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를 통해 미학적 비평 개념으로 정립한 그로테스크는 △갈등 △과장 △부조화 △비정상성을 특징으로 삼는다. 먼저 갈등은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충돌이며, 이때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로테스크에서는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양상도 발견되는데, 현실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어선 안 된다. 그리고 부조화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이 혼재된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 비정상성은 그로테스크의 결정적인 요소인데, 그로테스크가 흔히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기준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국에 수용자는 그로테스크에 의해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 놓임과 동시에 쾌감과 공포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의 본질은 시각적으로 흉측한 모습보다도 현실 세계의 질서가 파괴된다는 충격에 있다. 카이저는 그로테스크가 비정상적인 형태를 띰으로써 ‘사실성’을 부여받는 것으로도 설명했는데, 이와 관련해 숭실대 독어독문학과 권선형 교수는 “비틀어진 형태를 통해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때문”이라고 보충했다. 그로테스크는 단순히 혐오스러운 묘사가 아니라, 익숙한 세계관을 뒤흔들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깨닫도록 세심하게 계산된 표현 양식인 것이다. 이처럼 친숙한 현실을 갑자기 이상하고 낯설게 만드는 ‘소외 효과’에 대해 권 교수는 “정신적 각성을 통해 수용자를 비판적인 자기 사고로 유도한다”고 전했다.

질펀한 축제에서 ‘민중’을 상상하다
그로테스크는 미학적 개념에서 나아가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확장됐다.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을 그로테스크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창우 문화평론가는 “그로테스크의 정체성을 진정으로 규명하기 위해선 미학 이론으로서 독자적 층위를 보장하기보다는 문화 이론과 결부시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며 의미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20세기 러시아의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그로테스크를 문화를 해석하는 이론적 범위로 확장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발전시켰다.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은 △민중 △신체 △카니발에 착안해 민중이 가진 생성력, 즉 운동성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그로테스크적 신체’는 근대적 주체를 거부한다. 근대적 주체는 이성적인 자기 통제와 강압으로 박제돼 있지만, 물질적이고 추한 이미지의 신체는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신체는 섭취, 배설, 성교, 출산, 노화, 질병 등을 통해서 세계와 끊임없이 섞이고 교환된다. 이렇게 신체의 운동성이 그로테스크로 표현된다.

나아가 바흐친은 ‘카니발 이론’을 전개해 카니발, 즉 축제에서의 그로테스크를 설명했다. 카니발이란 육식을 감사한다는 의미의 사육제(謝肉祭)로, 40일 동안 금욕주의적으로 지내야 하는 사순절을 앞두고 실컷 먹고 마시는 축제다. 카니발에서 군중은 육식을 위해 동물을 살해하고, 정치 권력자들을 풍자하기 위해 욕설을 뱉고, 마음껏 웃는다. 카니발에는 잔인성과 해학성이 공존하는데 바흐친은 이러한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민중의 운동성의 표현이라 주장했다. 요컨대 카니발은 기존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현실을 구성한다. 일상에서 민중은 규율과 질서로 통제되지만, 카니발이 열리면 일상의 엄격함이 해체돼 일시적으로나마 규범에서 자유로워지는 ‘예외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특히 바흐친은 카니발에서 민중이 뱉는 욕설이나 신성모독과 같이 저항적이고 해학적인 요소를 민중의 ‘웃음 문화’라 명명하고 웃음이 근대의 엄숙성을 해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민중의 생성력, 즉 저항성이 신체나 카니발의 그로테스크로 형상화돼 탈근대와 연결됐다.

사회에 나타나는 축제적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는 특히 사회가 변동하는 시기에 많이 생산된다. 신시대와 구시대가 맞붙고 또 다른 질서로 이행하는 르네상스, 낭만주의, 그리고 모더니즘 시기에 그로테스크가 유행처럼 번성했다. 사회 구성원이 사회적 혼란을 집단적으로 경험하면서 혼돈의 미학인 그로테스크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바흐친의 ‘축제적 그로테스크’가 주로 나타났다. 중세 교황청이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확산시킨 ‘지옥’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축제를 연상케 했고, 공포정치를 펼치던 절대왕정 시기에도 민중은 카니발에서 웃음 문화를 형성했다. 이 평론가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볼 수 있듯이 괴물들이 탐욕스럽게 먹고 즐기고 있는 지옥은 사실상 축제와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바흐친에 따르면 카니발과 민중적 웃음 문화에 기초를 둔 축제적 그로테스크가 르네상스 이후로 점차 쇠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현대에서도 촛불시위나 핼러윈 데이의 거리 행진을 통해 축제적 그로테스크를 확인할 수 있다”며 “현대적 관점에서 축제적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장센=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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