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虛)를 찔러 ‘실’(實)을 꾀하다
‘허’(虛)를 찔러 ‘실’(實)을 꾀하다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8.06.04 21:05
  • 호수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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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한의학의 모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최고의 명의 허준과 그에 못지 않은 허임이다.
그들의 의학은 과학을 넘어 사람을 꿰뚫는 원리를 지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이뮤지엄(e museum) 제공

허임은 우리나라 침구학의 으뜸으로 평가받는 의학자다. 그의 다양한 의서들 중 최고로 손 꼽히는 『침구경험방』은 그가 일생 동안 직접 시험해 본 수많은 침술들을 기록한 의서다. 경희대 한의학과 김남일 교수는 『침구경험방』에는 침구학에 대한 뛰어난 견해와 허임이 평생 동안 직접 연구한 결과가 담겨, 실제적 사용에 있어 활용가치가 크다”며 실용성을 강조했다. 

『침구경험방』은 허임이 침구학에서 활용하는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김 교수는 “허임은 경락의 소통, 오장의 ‘허’와 ‘실’ 치료 중심의 침구법, 병의 본질을 판단하는 진단, 이 세 가지의 원리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침구경험방』에서는 혈을 짚는 ‘취혈’과 침구술의 종류인 ‘보사법’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침구경험방"에는 명확한 취혈을 위한 ‘경락공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경락공혈’이란 인체에서 기와 혈이 순환하도록 선으로 이뤄진 통로, 즉 혈의 자리를 말한다. 이때 허임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경락의 소통이다. 기와 혈의 통로인 경락이 인체의 다른 요소와 맞물려 원활한 순환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김 교수는 “허임이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인 경혈을 사지 말단에서부터 몸통으로 이어지는 배열 방법을 사용해 나열한 점도 획기적”이라고 덧붙였다. 

허임은 침구 기술의 결정판인 보사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한다. 보사법이란 진단과 치료상 허하고 부족한 데는 ‘보’하고, 실하고 남는 데는 ‘사’하는 것으로, 과잉된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침구술이다. 그중에서도 허임의 보사법은 비법으로 인정돼 ‘허임보사법’으로 따로 분류되기도 했다. ‘허임보사법’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침을 5푼 놓으려면 먼저 2푼 정도 찌른 다음 조금 있다가 다시 2푼 찌르고 잠시 후에 1푼을 마저 찌른 다음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하면서 침을 단번에 빼고 손가락으로 침자리를 문질러 주는 것이 보법이다. 반대로 침을 단번에 5푼 깊이로 찌른 다음 조금 있다가 2푼 정도 빼고 또 조금 있다가 2푼 정도 빼고 다시 한참 있다가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하면서 침을 다 빼고 침자리는 그대로 두는 것이 사법이다.’

‘허임보사법’은 침을 놓을 때의 침의 높낮이, 즉 침의 깊이를 구분해 ‘보’를 위한 기법과 ‘사’를 위한 기법으로 나눈다. 김 교수는 “‘허임보사법’의 이러한 측면은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흔히 사용하던 일반적인 보사법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며 ‘허임보사법’의 독창성에 대해 언급했다.

허임이 『침구경험방』에서 활용했던 과거의 치료법은 현대 한의학에 적용돼, 한국 침구술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김 교수는 “특히 허임의 영향을 받은 ‘사암칩법’ 등의 침술은 현재에도 치료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허임의 연구가 현대 한의학의 시초임을 밝혔다. 

허준은 30여 년간 왕실 병원의 어의로 활약한 명의다. 다양한 집필활동으로 한의학 발전에 기여했던 그의 8가지 의서들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단연 『동의보감』이다. 김 교수는 “허준의 다른 의서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서적이나, 『동의보감』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종합의서기 때문에 400여 년간 한국 한의학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이라 전했다.

『동의보감』은 자연과 인체의 연관성을 기초로 한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천인상응’ 사상도 이의 일부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신체의 형태나 기능도 자연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서문에서는 ‘삶의 수양을 약이나 침을 통한 치료보다 우위에 두고, 몸과 마음을 고치는 양생을 치유의 근본으로 할 것, 지천에 널려있는 약초들을 널리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동의보감』의 5편 중 인체의 내부를 다루는 내경편과 약물을 다루는 탕액편이 핵심으로 꼽힌다.

내경편의 첫 부분인 신형문에서는 치료의 목적인 ‘양생’이 등장한다. 특히 ‘양생’의 방법으로 의학적 치료법보다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는데, 이때 ‘신형장부도’가 실려 몸 내부의 작용과 기능을 설명한다. ‘신형장부도’란 하늘을 상징하는 머리, 땅을 상징하는 몸, 정기의 통로인 척추, 기운을 모으는 배꼽 주위 단전 등으로 구성돼있는 그림이다. 이에 따르면 인체의 핵심적인 요소는 △정(精) △기(氣) △신(神)이다. ‘정’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유지시키는 인간의 근본, ‘기’는 인체를 순환시켜 각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몸의 에너지이며, ‘신’은 ‘정’과 ‘기’를 묶어 정신과 감정의 작용을 설명하는 요소다. 김 교수는 “‘정’이 충실하면 기운이 튼실하고 기운이 튼실해지면 정신이 강해진다는 것이 ‘정기신 삼자 관계’의 기본적 바탕”이라고 설명했다.

약재의 대가로 알려진 허준은 탕액편에서 일반적 약물학과 각종 약재에 대해 다룬다.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의 약재들을 총망라하고, 약재의 채취와 가공, 처방법 등을 설명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탕액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약재를 다루기 때문에 활용성이 높다”며 탕액편의 가치를 강조했다. 특히 과일, 나무, 곡물 등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약재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매일 볼 수 있는 각종 곡식에 대해 탕액편에서는 ‘곡식은 흙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치우치는 성질이 없이 고르고 맛이 심심하면서 달다. 또한 성질이 평하면서 고르며 보하는 것이 세고 배설이 잘 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먹어도 싫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대단히 좋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한의학에서 연구하는 내용들은 그 기반이 『동의보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의보감』은 다양한 한의학자에 의해 400여 년간 수많은 견해를 받아들여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교수는 “한국의 전통의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 『동의보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며 “『동의보감』은 현재 한국 한의학의 뿌리”라고 전했다. 

허준의 『동의보감』
허준의 『동의보감』
ⓒ이뮤지엄(e museu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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