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준현 (wnsgus0307@skkuw.com)

‘성균관대학교 공식 언론사 성대신문’의 글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팩트체크 없이 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글이 수습일기가 아닐까. 내가 주인공이자 작가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기에 수습일기만큼은 화려하고 깔끔한 글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글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사실 글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생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문자와 글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추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림 같은 문자에서 시작해 뜻을 담고 있는 단어들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말과 목소리를 담는 문장과 글이 생겨났다. 낙서 같은 문자에서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글을 쓰기까지 우리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소수의 사람만이 본능적으로 논리적인 글을 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끊임없는 교육을 받아야만 논리적인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정도만 된다.

점점 더 빠르게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상과 미디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는 않을까 종이로 된 글이 우리의 손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줄까. 그리고 앞으로 변하게 될 그 방향이 옳은 방향일까. 걱정과 기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록이 시작되고 2000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문자와 글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작가가 쓴 작품, 언론인이 쓴 기사, 아이가 쓴 일기, 엄마가 쓴 메모, 수험생이 쓴 노트필기. 어릴 때 쓴 일기는 추억이 되고 엄마가 쓴 메모는 마음속 따뜻한 위안이 된다. 문학작품은 사람들의 삶에 양식이 되고 신문기사는 사회 구성원들의 눈가 귀가 되어준다. 이렇듯 다 저마다 글이 품고 있는 목적과 의도가 있다.

우리는 성대신문에서 기사를 쓴다. 기사는 어떤 글이기에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다듬고 다듬는 것인가. 기사는 공식적인 글이다. 개인의 글이 아니라 학생들의 목소리이자 학교의 목소리이고 언론사의 목소리이다. 기자의 편향된 시각은 학교의 편향된 시각으로 이어지고 학교의 위상은 추락한다. 기사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 반면에 사실을 숨기고 교묘히 왜곡하는 힘도 있다. 따뜻한 손길이 될 수도 있고 잔인한 칼끝이 될 수도 있는 것이 기사다. 우리는 성대신문에서 기사를 쓴다. 이제는 학교의 공식 언론인이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의 사실 확인을 해야만 하고 논리적 비약은 없는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검토해야한다. 우리의 글이 학교의 목소리이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끝에는 무한한 책임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