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번 여름,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약 한 달 동안 그 학교의 학생이 되어 수업을 들어볼 기회가 생겼었다. 솔직히 미국의 수업 방식이 우리나라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토론과 의견 교류가 많은 수업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들어왔던 나는 가기 전부터 수업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내 약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2~3개의 수업을 들었다. 과정을 수료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비록 기간은 짧은 수업이었지만 한국에서 12년간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배웠던 수업과 미국에서 들었던 수업은 몇 가지의 다른 점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교수자와 학생의 관계였다. 나름 혁신적인 교육방식을 지향하는 이른바 ‘혁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내가 이제껏 들어왔던 수업 대부분은 교수자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다큐멘터리와 논문들이 보여주듯 한국 학생들은 수업 중에 선생님이나 교수님께 질문하는 일이 드물다. 나와 내 친구들 역시도 수업을 듣다가 의문이 생기거나 기존에 배운 것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질문하기보다는 선생님 혹은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질문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것은 한국 학생보다 월등히 잦은 학생들의 질문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미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의 학생들이 더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론적으로, 통계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그 수업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느낀 바는 그 학생들은 단순히 ‘질문’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수자가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논박’을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교수님의 설명을 듣던 중 의문이 생기거나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손을 들고 “excuse me?”라는 말과 함께 질문한다. 교수님 역시 학생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생각한 후 의문점에 대해 대답을 해주고, 학생이 다시 질문하고 끝없는 논박을 종종 벌이곤 했다. 가끔은 너무 논쟁이 길어져 다른 학생이 수업을 재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하거나, 교수님이 그 학생에게 끝나고 교수실로 오면 마저 답변을 해주겠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학생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끝까지 파헤쳐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고, 교수님 역시 그 학생의 배움의 열정에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과 미국 모두 예외의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수업이지만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분위기의 수업이 있을 수도 있고, 미국에서의 수업이지만 일방통행식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본 학생들은 모두 ‘교수님께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학생’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그동안 귀찮고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김나래(사과계열18)
김나래(사과계열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