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언론의 바다에서 정론직필 일병 구하기
황색 언론의 바다에서 정론직필 일병 구하기
  • 성대신문
  • 승인 2018.09.03 23:28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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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날아서 오고 진실은 그 뒤를 절뚝거리며 따라온다”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금언이 너무나 실감 나는 요즘이다. 우리 언론 현실은 어둡다. 가짜뉴스라는 황사가 온 나라를 뒤덮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이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통 저널리즘의 기억은 황색 언론의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와의 싸움은 언론의 역사만큼 길고도 깊다.

1898년 2월 15일 저녁 무렵, 쿠바 하바나 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군함 메인함의 어마어마한 폭발로 260여 명의 미국인이 죽고 순식간에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아무런 정황증거 하나 없이 즉각적으로 스페인을 범인으로 몰아갔다. 그러한 억측 보도의 중심에 퓰리처와 허스트가 운영하던 the World지와 the New York Journal이 있었다. 사건 발생 이틀 후, 퓰리처의 ‘더월드’ 1면 톱은 “메인호를 폭발시킨 것은 폭탄인가, 어뢰인가?”라는 타이틀이 차지했다. 그 바로 하단에는 폭발에 의해 산산조각 나는 메인호의 선체와 공중을 향해 갈기갈기 찢겨 날아가는 마스트가 아주 세밀한 삽화로 전면에 걸쳐 게재되었다. 허스트의 ‘뉴욕저널’은 하바나 항구에서 발가벗긴 채 스페인 병사에 의해 검색당하는 백인 여성의 삽화를 올렸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뉴욕의 최대 일간지인 더월드와 뉴욕저널은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 전 미국 국민을 복수심에 불타게 만들었다. 결국 미국과 스페인은 10주간에 걸친 전쟁에 돌입했고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채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언론계의 노벨상, 퓰리처상을 제정한 퓰리처와 언론계의 황제로 추앙받는 허스트가 왜 이런 오점을 남겼을까? 1890년대 말 미국은 고속 윤전기와 칼러 인쇄술이 급속도로 완성되어가던 시기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신문의 발행비용이 급감하고 자극적 컬러인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라디오가 없던 당시에는 신문이 유일한 언론매체였기 때문에 새로이 떠오르는 광고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발행부수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이러한 언론현실을 가장 빨리 포착한 사람이 퓰리처였다면 허스트는 후발 주자로서 그에게 도전하는 입장이었다. 그러한 퓰리처와 허스트에게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렬하게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 소수자의 시장보다는 다수자의 시장을 겨냥할 것, 그리고 최대의 발행 부수를 달성할 것, 이것이 그들에겐 지상 최대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내 대중을 가장 손쉽게, 재빨리 장악하는 방법은 선정적 상업주의, 자극적 선동주의, 그리고 중독적 폭로주의가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이들은 거리낌 없이 황색 언론의 바다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당대 언론의 대명사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와 가짜뉴스와 함정 뉴스로 인해 파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19세기 말의 고속 윤전기와 컬러인쇄가 미국 언론계에 던진 화두가 황색 언론이었다면 인공지능 인터넷 통신과 퀀텀 컴퓨터가 급속도로 밀려드는 요즘의 우리 사회는 가짜뉴스의 홍수에 뒤덮여 있다. 문제는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분별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명백한 팩트에 티가 나지 않을 만큼 갈아 넣은 허구, 약간의 왜곡, 그럴듯한 자극적 선동 논리를 양념 치듯 뿌려 놓으면 독자의 전체적 판단은 팩트와는 상관없이 언론사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흐른다. 거의 완벽한 픽션을 팩트인 것처럼 보도해 놓고도 허구임이 드러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한다. 이런 소문조차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고. 더욱 황당한 것은 팩트에 대한 보도보다 그것의 해석에 지면과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해석마저 전유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지나치면 선동이 되고 인민재판이 된다. 사실 보도에 더 충실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퓰리처의 더월드도, 허스트의 뉴욕저널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뉴욕 타임즈’는 여전히 살아 남아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황색 언론의 극성 속에서도 정통 저널리즘의 기치를 들고서 등장한 언론이 바로 ‘뉴욕 타임즈’이다.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은경 교수 (신문방송학과)
한은경 교수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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