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지난 2일 마무리됐다. 하지만 병역 혜택 논란이 점화되면서 대회는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이토록 뜨거운 문제였나 싶을 정도다. 언론은 부채질했다. 여론은 요동쳤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역 혜택을 따내는데 모두들 관심 있었다.

흥미롭게도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와 축구대표팀에 대한 여론의 입장은 180도 다르다. 야구 대표팀은 선발 과정에서의 잡음이 대회 기간 내내 지속됐다. 이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여론은 “사실상 병역회피자나 다를 바 없다”며 병역‘특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축구 역시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해당 선수의 맹활약과 손흥민에 대한 전 국민적 인기로 여론은 반전됐다.

동일한 잣대를 가진 제도가 종목에 따라 전혀 다른 함의를 지닌다면 실정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현 병역법 제2조 10의 3에 따르면 병역 혜택을 받는 선수는 예술·체육요원으로 분류돼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문화·체육 분야에 업무로 복무하는 자”로 규정된다. 한 국회의원이 빌보드 1위를 한 방탄소년단을 통해 병역 혜택의 형평성 문제를 든 것처럼 국위선양의 모호성을 지적할 수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법이 시대에 뒤처진 것이다.

국가대표의 성과가 오롯이 국가의 몫이며 이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병역 혜택을 시혜하는 것이 불합리한 처사라는 국민적 정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평등하게 부담하는 암묵적 원칙은 공고해져 왔다. 더욱이 병력 자원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회마다 논란을 피해가지 못하는 체육요원이라면 향후 보충역의 복무형태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엄밀히 존재한다.

운동선수의 병역은 어떻게 부과해야 정의로운가. 정치철학자 롤즈는 무지의 베일과 상호 무관심적 합리성을 전제로 정의의 보편적 원칙을 2가지 꼽았다. ‘타인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할 평등한 권리의 보장’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 명백히 기대되며 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직위의 개방성’이다. 

이들의 병역혜택은 후자의 원칙인 이익의 호혜성과 자격 제한의 개방성이 충족된 제도 하에 실시될 필요가 있다. 기본권이 다소 제한받을 수 밖에 없는 현역복무와 등가적인 위치에 두고 비교하기 어려웠던 기존의 제도를 바로잡는 것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가 제안하는 “종목별로 기준을 정하고 이를 충족하는 선수에 대해 일정 기간 병역을 유예하는” 방안이 그 예이다. 특정 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만이 아닌 운동선수라면 누릴 수 있으며, 면제가 아닌 병역의 이행이 담보된다는 측면에서 긍정할 수 있다. 병역의무의 이행인 체육요원이 사회형평의 원리에 입각한 제도로 개선될 때, 비로소 대중들의 뜨거운 눈총이 거둬질 수 있으리라 예상될 것이다.

정재욱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