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노동자, 그들의 일터
방송노동자, 그들의 일터
  • 이상환 기자
  • 승인 2018.09.04 01:11
  • 호수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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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말 오고가는 경우도 빈번
비가오고 밤이 와도 촬영 계속되는 경우 많아


그들은 여름이 미웠다. 하루 20시간의 살인적인 일정에 여름 더위는 잔인했다. 더워서 지치고, 그러다 사고가 나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방송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지난달 26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취재를 진행했다. 여느 아침처럼 도로는 한산했지만, 방송국 내부는 분주했다. “오늘은 더위가 많이 풀렸다.” 방송 스태프들이 물건을 나르며 말했다. 그들은 버스와 차량에 물건을 싣고 있었고, 보조 출연자들은 로비에서 차에 타길 기다렸다. 

모두 차에 타자 촬영지로 향했다. 차는 1시간 30여 분을 달려 인천으로 갔다. 가는 길 스태프들은 쪽잠을 잤다. 한 보조출연자는 “전날 밤샘 촬영에 다들 피곤하다”고 말했다. 방송 스태프인 장광훈 씨도 “전날 밤샘 촬영 후에 예비군 훈련을 하러 가기도 했다”고 했다.

촬영지는 작은 카페였다. 장비를 옮기는 스태프들로 실내가 붐볐다. 안은 스태프들의 열기로 팽팽했다. PD가 스태프에게 “카메라가 얼마짜리인 줄 아냐. 떨어지면 본인이 다 물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비정규직 계약인 탓에 비싼 장비를 옮기는 일임에도 별도의 보험이 없었다. 사고가 나면 제작사는 하청업체에게, 하청업체는 보조 스태프에게 책임을 돌렸다. 드라마 <화유기> 스태프의 추락사고 이후 보험을 들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낮은 등급이라 사고 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감독은 몇 차례 거친 말들을 내뱉었고, 스태프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따금 들어 올린 표정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지나니 익숙해졌다”고 혼나던 스태프가 말했다. 보조 스태프 장광훈 씨도 “일상이다. 더 크게 혼나는 경우도 많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다들 대수롭지 않은 듯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컷’소리가 났고 정적이 흘렀다. 스태프들은 다시 장비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보조출연자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이동하던 보조출연자는 “여러 장면에 옷만 바꿔 입고 출연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옷은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며 “별도의 통보 없이 시간이 변경돼 옷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바뀐 옷을 준비하지 못하면 다시 집에 돌아가야 했다.

하늘은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한 대학 캠퍼스에서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몇몇 스태프들은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파를 막아섰고, 다른 몇몇은 밥을 먹으러 갔다. 이동하던 한 스태프는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촬영 도중에 편의점에서 대충 먹고 오곤 한다”고 말했다. 흐린 하늘 아래서 촬영은 계속됐고 ‘컷’소리가 들렸다. 촬영장은 인사말로 시끌벅적했다. 배우들은 차로 향했고 스태프들은 조용히 장비를 정리했다. 몇몇 스태프들은 다른 촬영지로 향했고, 다른 이들은 방송국으로 복귀했다.

저녁 무렵, 방송국에 도착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복귀한 스태프들은 떨어지는 비를 툭툭 차듯 걸었다. “어제는 밤을 새우다 시피 했다. 오늘은 빨리 끝나 다행이다”라고 방송 스태프 박 모 씨는 말했다. 돈은 어떻게 지급되냐는 질문에 “이제 종료 문자를 보내면 시간을 계산해 준다. 하지만 야간 수당은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대답했다. 시급으로 계산되면 다행이었다. 일부는 주급 일급으로 받기도 했는데, 촬영이 길어지면 최저시급만큼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복귀한 스태프들은 썰물처럼 하나둘 빠져나갔다.

방송국 로비에서는 타 프로그램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분장 스태프 최서윤 씨는 “비가와도 밤늦게까지 촬영이 이어질 것 같다. 자주 있는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빗속에서 누군가 다쳐도 비정규직인 스태프 대부분은 피해를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다시 만석인 버스가 출발했다. 밖은 여전히 흐렸고, 비가 더 내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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