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채홍 (dlcoghd231@gmail.com)

 

만화책 펼친 순간 반해버린 만화의 세계
독자 댓글은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찾아봐

“누구나 제 만화를 봤을 때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언제 더웠냐는 듯 선선하던 어느 여름날, 작가의 고향인 대구의 한 카페에서 오랜 꿈을 이룬 남수연 웹툰 작가를 만났다. 그가 작가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과 만화에 대한 가치관을 들어봤다.

만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어릴 때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당시에 ‘만화책은 공부에 도움이 안 되니까 보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만화책은 보면 안 되는 줄 알았죠. 본격적으로 만화가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의 손에 이끌려 만화방에 가게 된 때에요. 만화책을 펼쳤는데 순간 ‘아, 나는 만화가가 돼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밤낮으로 만화만 봤죠. 남수라는 필명도 이때 생각했어요. 제가 본명이 ‘남수연’ 인데 친구들이 수연이라는 이름보다는 ‘남수’라고 불러서 이 이름이 더 가깝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친구들이 만화에서 제 필명만 보고도 ‘수연이가 만화책을 만들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리고 중학교 때 만화동아리를 했어요. 당시 친한 친구들과 같이 활동했었는데 굉장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축제 때 빈 교실을 빌려서 각자 그린 그림도 전시하고 부스를 꾸며서 레모네이드 같은 것도 팔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우리 작품도 걸어두고 특별한 행사를 꾸몄다는 게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학과가 아닌 실내건축디자인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힘든 점은 없었나.
회화보다는 만화가 저랑 맞는다고 생각했고 입시 그림은 잘 그려서 원래는 애니메이션 아니면 시각디자인 쪽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학과도 합격했었는데 집안 사정으로 인해 진학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가고 싶었던 과를 못 가게 되니까 ‘만화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냥 디자인 공부를 하자’라는 생각으로 실내건축디자인학과에 가게 됐어요. 원래 인테리어에 관심은 있었지만, 전공으로 삼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막상 전공을 선택하고 보니 교수님이 계속 건축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실 정도로 의외로 잘 맞았어요.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그림그리기 좋은 날’을 연재할 때 본가에서 작업했는데, 그때 집에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없어서 거실에서 작업했거든요. 저만의 공간이 없이 살다 보니 공간에 대한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건축을 공부할 때 그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공간 디자인이 단순히 무언가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쓰는 사람의 취향을 파악해서 최선의 동선을 생각하고 그려나가는 과정이라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씩 밟아가는 건축의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 만화가를 직업으로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제가 학생일 때는 출판 만화가 대부분이었고,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제가 그 과정을 다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꿈은 꿈으로 남겨두자 생각하고 디자인을 전공으로 삼아 대학에 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웹툰이라는 큰 만화 시장이 열리고 널리 알려지면서 자꾸 제 눈에 밟히더라고요. 어느 날 교양 수업 과제로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한 리포트를 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만화가가 너무 되고 싶은데 그 리포트에서는 ‘몇 년 후에 건축가가 돼서…’ 이런 식으로 말을 지어내고 있었거든요. 결국 엄마한테 전화해서 휴학하겠다고 했어요. 엄마는 제가 학교를 잘 다니다가 갑자기 휴학을 선언하니까 처음에는 ‘잘하는 거 하지 왜 안 하던 것을 하려고 하냐’, ‘옛날 꿈이지 지금 네가 어떻게 하려고 그걸 하려고 하냐’ 이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어요. 설득 끝에 결국 휴학을 하게 됐고 2년 동안 해보고 그때도 데뷔가 불투명하다면 포기하고 취업을 하자 마음을 먹었죠. 다행히 휴학하는 기간에 연재했던 ‘그림그리기 좋은날’이 베스트 도전에서 잘 됐어요. 엄마도 주변 지인의 자녀분들이 제 만화를 본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는 ‘너 하고 싶으면 해’ 이렇게 바뀌셨죠. 이후에 공모전에 도전하겠다고 했던 시기도 기말고사 기간이라 엄마한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걱정이 많으셨던 엄마와는 다르게 친구들은 워낙 옛날부터 제가 만화 그리는 것을 봐왔고 저를 만화 그리는 ‘남수’로 기억을 해서 그런지 제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어요. 친구들은 무조건 다 응원하고 좋아했어요.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안다. 만화를 그리는 일과 학업을 병행했을 때도 있었을 텐데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췄나.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 네이버 ‘청춘 로맨스 대전’ 공모전이 갑자기 공지됐어요. 그때가 기말고사 기간이었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 내에 학교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만화 4편을 올려야 했어요. 5일에 한 편씩 찍어냈죠. 저는 그 달이 힘들었기 때문에 솔직히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당시에 일주일 중 2일은 졸업 작품에, 5일은 원고에 투자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췄어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만 자고 쉬는 시간을 좀 줄이면서 하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졸업 작품도, 원고도 마찬가지로 집에 박혀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게 힘들긴 했어요. 그래서 때때로 여러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학교 근처에 있는 친구들이랑 밤에 맥주도 가볍게 마시고 멀리 여행은 못 가지만 가끔 영화도 보러 가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죠.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작업만 해서 평범한 일상도 못 누릴 때였거든요. 그래서 가벼운 산책,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순간은 성취감도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작품 <바른연애 길잡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간단히 소개해 달라.
평소에 생각해 뒀던 구성이긴 했어요. 사랑이 고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바른연애 길잡이>는 사랑을 시작할 때나 하고 있을 때 누구나 고민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다룬 이야기에요. 캐릭터는 기존에 생각해뒀던, 제 성격과 제 친구의 연애를 못 하는 특징을 합쳐 만들었어요. 남자가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 사실을 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런데 여자가 이것을 알게 돼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어떻게 보면 흔한 플롯이지만 조금의 차이점을 두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어요. 독자들이 ‘이렇게 가겠지?’ 생각했는데 약간 어긋나면서, 소소하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만화에요. 특별한 소재로 만화를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것은 아니었어요.

<바른연애 길잡이>를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만화를 보고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지만 제 만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즐겁다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바른연애 길잡이> 캐릭터들을 성격이 모난 데 없게 그리는 이유도 제 만화에서만큼은 독자들이 ‘얘들 되게 즐겁겠다, 그래 세상은 아직 즐겁지’라고 생각하면서 만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에요. 그렇게 보실 수 있게 항상 생각하면서 그려요. 극에 긴장감을 주는 존재인 *빌런이 안 나올 수는 없지만, 그런 캐릭터가 나와도 너무 불쾌하거나 증오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으면 해서 일부러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독자님들이 캐릭터의 단면만을 보고 누가 나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유연이는 유연이, 재현이는 재현이, 나래는 나래, 바름이는 바름이대로 캐릭터 자체를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후회할 행동을 하며 실수할 때도 있지만 우리 자체가 악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런 평범한 한 사람으로요. 그런 평범한 우리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만화로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은 다 읽어보는 편인가. 혹 악플도 있나.
댓글은 제 인생의 활력소죠. 마감하는 날에는 밤을 새우는데, 원고를 보내고 잠을 좀 자고 나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할 때 독자님들이 남겨주신 댓글을 놓치는 것 없이 거의 다 읽어요. 그런데 작가도 결제하기 전에는 미리 보기 댓글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저도 댓글 보려고 작품 미리 보기를 결제해서 봐요. 악플은 정말 다행히도 없어요. 그리고 팬들과 소통을 위한 블로그도 있는데 글을 정성 들여 쓸 시간이 없어서 관리를 잘 못 해요. 대신에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랑 글을 조금만 써도 되니까 블로그보다 많이 해요. 물론 댓글도 다 읽어보고 답글도 전부 달아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웹툰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솔직히 꿈에 대한 도전이 쉬운 것은 아니에요. 물론 힘든 일도 있고 장애물도 있겠지만 정말 몸이 부서져라,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인생에서 대학생이라는 시기가 비교적 도전하기 쉬운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만화를 그려본다든지 그림을 배우러 학원에 다녀본다든지 그런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도전해 보세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접어두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한 단계씩 용기내 천천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빌런=원래 ‘악당’을 뜻하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