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내가 영상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영상 크루 활동을 시작했다. 현장 속에서 실무를 배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크루 활동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곧 영상 실무와 관련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같은 크루 활동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얻고는 했다. 그들은 나에게 한번쯤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말리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방송 촬영 현장 아르바이트였다. 한 친구는 이것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메이킹을 찍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연속된 밤샘 촬영 끝에 찜질방에 자신을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당연히 눈 좀 붙이고 오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그냥 씻고 빨리 나오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몸은 몸대로 상하고 노동한 만큼 돈도 받지 못했다고, 최악의 아르바이트였다고 말하며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우리는 마치 연예 가십을 말하듯 가벼운 말투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또 함께 화내기도 하며 그 이야기를 하고, 또 들었다. 그래도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잠깐 보인 서로의 굳은 얼굴에는 이 일이 결코 특이한 경우가 아님을, 우리가 결국에는 매일 겪어야 할 일임을 알고 있음이 보였다. 너무나 당연하고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순간에는 가십으로 치부하고,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단편 영화를 찍다 보면 종종 캐스팅된 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주로 촬영에 대한 이야기인데, 촬영 중인 시나리오 내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과거에 촬영했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한다. 한 여자 배우분은 본인이 언어폭력,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 해주셨다. 한 드라마에 단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촬영 대기 중인 상황이었는데, 어떤 스태프가 다가와 대뜸 ‘너는 몸매도 별로고 얼굴도 별로라서 주연은 절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났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냐며, 한 두번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기는 것밖에는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함부로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배우분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촬영에 임하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미투운동 이후, 방송계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떤 언론은 방송 제작 현장 노동자 거의 대부분이 성폭력 피해가 있다는 통계를 보도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 실태들을, 수많은 성폭력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여성으로서, 나 또한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뜻의 ‘워라벨’이라는 신조어가 떠오르고 있다. 최저임금이 매년 조금씩 오르고,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선배들은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열악한 환경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일에 임한다. 나 또한 곧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이 현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는 없어도 살아남으며 버티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선배들이, 동료가, 후배가 이 일에 종사하면서도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고이든(철학 16)
고이든(철학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