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목적을 ‘서울 황폐화’라고 규정하면서 혁신도시와 지역 균형발전의 효용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중앙의 자원을 지방에 배분하는 작업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방 토박이뿐 아니라 막 상경에 성공한 뜨내기들도 어리둥절하다.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된 후에도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서울이 황폐해진다는 주장은 기우를 넘어 어폐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공공기관 이전의 과오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다만 혁신도시가 지역 균형에 이바지하고 있는지는 곱씹게 된다. 물론 혁신도시가 들어선 중소도시 주민들은 함박웃음이다. 유년 시절부터 원주에서 살았던 한 지인은 “혁신도시가 되면서 원주시가 더 나아졌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상권 활성화, 지역 일자리 증가, 최신식 인프라 구축까지 각 지자체 선거 슬로건에만 존재하던 것이 황금알이 돼 굴러 떨어졌다. 나주의 한 토박이도 입장이 다르지 않다. ‘배 재배’만 하는 도시에서 이제는 ‘한전’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는 그의 말에 모종의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젊은이가 희망을 노래할 만큼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원도심 공동화 문제가 이를 심화시킨다. 이 문제에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가 있다면 각종 범죄가 증가하는 것처럼 한번 낙후된 지역은 그 수렁에 더 깊게 빠진다는 의미이다. 활기를 잃은 지방 도시를 되살린다며 자본을 투입해도 현시점에서 원도심을 빠져나가는 인구를 묶어둘 유인책이 없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혁신도시가 팔짱 매고 거드름 피울 이유가 없는 셈이다.

지방도시 살생부의 저자인 마강래 교수는 “쇠퇴하는 모든 곳을 치유하겠다고 덤벼들었다간 재정 파탄으로 인해 모두가 공멸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지방 중소도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중앙정부의 지원을 경고했다. 지방 중소도시와 상생을 목표로 하는 혁신도시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혁신도시로 도심이 양분화된 경우 재정 씀씀이가 헤퍼짐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는 ‘갈라먹기’식 경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은 원도심과 신도심 간의 사회적 불만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혁신도시는 쇠퇴하는 원도심에 산소 호흡기를 부착한 부양자의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각종 상하수도나 도로 같은 제반 시설, 학교나 은행 같은 공공행정의 비효율성을 혁신도시가 감내하기 어려울 게다.

중앙의 자원을 지역으로 옮기는 정책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혁신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 나머지 지역의 행보가 중요하다. 지방소멸로 인한 재정적 위기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의 중소도시들은 마 교수가 주장한 ‘압축도시’에 가까워져야 한다. 적은 인구지만 그 밀도를 높인다면 생존의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는 게 핵심이다. 재정 손실을 최소화하며 혁신도시를 긴밀하게 연결한다면 대다수 중소도시의 몰락 속 굳건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혁신도시에서 파생되는 일자리만으로 요행을 바란다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반쪽짜리 정책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 생명수를 마르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빈다.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