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연수 (daleksupreme@naver.com)


동물보호법 개정 후 동물 장례 인식 넓어져
사람 장례식과 예의·절차 크게 다르지 않아

동물도 장례를 치른다
지난 7일 오전, 택시를 타고 도시 외곽을 향해 깊숙이 달렸다. 빼곡히 들어선 공장 가운데 하얀 울타리에 둘러싸인 갈색 건물을 만났다. 김포시 통진읍에 위치한 반려동물 장례식장 ‘페트나라(펫헤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장례식장은 화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분위기였다. 장례식장 안쪽, 아무도 없는 분향실에 작은 관 하나가 놓여있었다. 페트나라를 운영하는 박영옥 대표는 관을 가리키며 “보호자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사정이면 사체만을 전달해 화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사체는 찍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털이 하얗게 센 반려묘 ‘삼순이’가 장내를 둘러보던 기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삼순이는 14년째 향을 맡으며 이곳의 역사를 함께했다. 동물장묘업 관련 법·제도가 갖춰지기 전인 1999년 페트나라는 국내 최초 장묘업체로 개업했다. 당시 공장도 없던 허허벌판에 컨테이너를 두고 운영했다. 개업 당시 주민 반발도 있었지만, 장례식장이 민가와 멀리 떨어져 심하진 않았다. 박 대표는 “초기에 주민들과 소통하며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지난 3년 동안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등록된 전국 동물장묘업체는 13곳에서 27곳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과거에는 동물 사체를 생활·의료폐기물로서 일반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동물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그러던 2016년 동물장묘업 등록 사업장에서 처리되는 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동물보호법에 추가되면서 동물 장례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다. “여전히 동물의 장례를 치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요.” 그가 덧붙였다.

세월은 작은 함에 담겨
박 대표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2층으로 올라갔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신자를 위해 마련한 분향소들을 지나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다. 휴식처와 ‘추모카페’를 겸하는 이곳 납골당에는 커다란 소파와 수백 개에 이르는 안치소가 준비돼 있었다. 안치소마다 스티커로 기록한 화장일, 동물 이름, 종류가 눈에 띄었다. ‘2016년 O월 O일’, ‘2008년 O월 O일’, ‘2003년 O월 O일’. 박 대표는 “10년 넘게 안치된 아이도 있다”며 “정기적으로 납골당을 방문하시는 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동물의 납골당은 사람의 납골당과 다를 바 없었다.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사진은 물론이고 반려동물이 좋아하던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유품이 유골함과 함께 보관돼 있었다. 특히 납골당이 있는 2층 벽을 둘러싼 창가는 보호자나 방문객들이 두고 간 물품들로 가득해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알록달록한 꽃밭처럼 각종 장난감과 사진들이 어우러진 자리에는, 슬픔과 애도가 얼룩덜룩했다. 자신의 곁을 떠난 반려동물에게 사랑을 담아 쓴 쪽지들을 하나씩 읽어봤다. ‘제니, 사랑해. 친구들과 냠냠 맛있게 먹고. 잘 놀기, 스마일 하기.’라고 적힌 하트 모양 포스트잇 뒤로 작은 협조문이 붙어있었다. “개봉된 간식은 냄새가 심합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유품으로 두고 가 곳곳에 쌓여있는 간식을 보며 이곳이 동물 장례식장임을 문득 깨달았다. 안치소에 붙은 사진을 통해 햄스터나 토끼와 같이 다양한 동물이 안치된 모습을 살펴보던 중, 누군가 목줄 맨 개와 함께 납골당으로 들어왔다. 해당 방문객에 대해 박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시는 분”이라며 “고객께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일어섰다.

향이 끝을 향해 타들어 갔다
1층 장례식장으로 돌아오자 한 직원이 “지금 남양주에서 고객을 모셔오고 있다”고 전했다. 화장을 준비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직원들은 바쁘게 화장로를 오갔다. 잠시 후 ‘운구차’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작은 나무관을 든 직원 뒤로 보호자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이들은 바로 분향실로 향했다. 차분하지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인 장례식이 시작됐다. 장례절차는 분향실에서 예식과 염습을 진행하고 화장로에서 유골을 수습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6년 동안 동물 장의사로 일했다는 직원 A씨가 조심스럽게 염습을 시작했다. 다른 직원 B씨는 “고객과 16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이라고 귀띔했다. 하얀 수의를 입힌 모습이 보호자의 어깨너머로 보였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직원들은 분향실의 문을 닫고 나왔다.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마지막으로 함께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기계가 가동되는 요란한 소리에도 흐느낌은 작게나마 묻히지 않았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 직원 A씨가 화장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분향실로 들어간 직원 A씨가 마차를 끌고 나와 화장로로 향했다. 보호자 이 씨는 “은비야, 안녕”하고 인사했다. 화장로는 창을 통해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돼 있었다. 보호자들은 화장이 진행되는 40분 내내 재단 앞을 떠나지 않았다. 작은 장례식장 안에 향냄새가 퍼졌다. 줄곧 기자의 무릎에 앉아 있던 삼순이가 갑자기 소파로 가서는 두 사람 곁에 앉았다. “쟤 이름은 은비야, 은비.” 이 씨는 삼순이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향이 하얗게 다 타자 보호자는 향 하나를 더 꽂았다. 지난 16년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 두 사람은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직원 A씨가 유골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직원과 보호자들은 예의를 갖추듯 허리 숙여 인사했다. 흰 종이에 수습한 유골은 작은 흰색 함에 옮겼다. 하얀 천으로 감싼 유골함을 안고서 보호자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 씨는 “아이의 남동생, 딸도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며 “그래도 건강하게 나이 들어 떠나 덜 힘들다”고 전했다. 하얗게 탄 향을 뒤로하고 떠나는 그들의 모습은 사뭇 홀가분해 보였다. 박 대표는 “고객이 화장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추스른다”며 “오실 때와 가실 때 표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장례식은 ‘내가 이 아이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이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