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원구 (kwg0328@skkuw.com)


생산업자와 동물단체,
번식장 존폐 놓고 대립해
김 PD, 유기동물 생기지 않으려면
대중적 인식 변화 필요해 

‘괜찮아, 이리와 봐.’ 보호소에서 유기견 입양 희망자가 움츠러든 강아지에게 손을 뻗는다. ‘킁킁.’ 웅크렸던 강아지가 이내 꼬리를 흔들며 코를 갖다 댄다. 아마 살기 위해 냄새를 맡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인 ‘포인핸드’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부터 9월 8일까지 전국에서 유기된 동물의 수는 8만 876마리다. 이 중 약 18%인 1만 4801마리가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안락사 당했다.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 동물보호법
2년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는 반려동물 번식장을 조명했다. 해당 방송에서 보여준 번식장은 오물투성이였고, 농장주는 임의로 모견을 제왕절개 했다. 방송 후 여러 매체에서는 그 실상을 실어나르기 바빴고, 우리 사회에 ‘동물권’은 화두가 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TV 프로그램이나 동물권 단체의 영상을 보면 불법 번식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불법 번식장에서 동물들은 좁은 우리 안에서 지낸다. 소위 ‘뜬장’으로 불리는 이 우리는 오물을 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다. 이 때문에 동물들은 뜬장 안에서 중심을 잡기 어렵다. 이때 창살에 긁혀 상처가 나고 발톱도 휘어지며, *상동증을 겪기도 한다. 불법 번식장의 동물들은 강제로 교배 당하고, 새끼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매를 통해 펫숍에 팔린다. 동물권 단체 케어(대표 박소연)의 김태환 커뮤니케이션팀 PD는 “산업 동물의 처우는 다 비슷하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만 유지한다. 펫숍에 있는 말끔한 애들도, 원래 있던 번식장에서는 처참한 몰골”이라며 불법 번식장의 모습을 설명했다.

불법 번식장을 규제하기에 동물보호법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 3월 2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 생산업 허가제 전환 △뜬장 신규 설치 금지 △모견의 임신 주기 8개월 제한 등의 변화가 있었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대해 그는 “법령 개정은 긍정적이지만 감시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감시를 지속하기에는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지자체에서 유기동물 업무를 담당하는 익명의 공무원은 “담당 지역마다 보통 인원이 1~2명 배정돼 있는데, 여러 군데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인력이 부족해 곤란하다”며 하소연했다.

생계와 생명의 대립
현 반려동물 산업에서 펫숍은 동물 공급을 번식장에 의지한다. 익명의 번식장 운영자는 “농장(번식장)이 아니라면 어디서 동물들을 공급하겠냐”며 번식장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한편, 김 PD는 “펫숍에 동물을 공급하기 위해 번식장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하지만 상업적 가치가 떨어지면 번식장에서는 식육견으로 팔리고 펫숍에서는 버려진다”고 반려동물 산업의 사이클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반려동물 생산업자 측은 번식장의 환경개선을 요구하지만, 동물권 단체 측은 번식장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려동물 생산업자에게 번식장 존폐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20년째 번식장을 운영하는 김철규(65) 씨는 “우리처럼 합법적인 농장은 야외에서 건전하게 키운다. 몰상식한 불법 농장 몇 군데로 전체를 매도하는 건 옳지 못하다”며 운을 뗐다. 이어서 그는 제도권 안에서 건전하게 번식장을 운영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축산 위생관리법에서 똑같이 가축으로 분류되는 소, 돼지, 닭 등은 정부 지원이 많은 데 반해 우리는 규제만 강화됐지 지원은 전혀 없다”며 불평했다. 이어 그는 “우리도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데 모든 여론이 우리를 내몰면 설 곳이 없다”며 호소했다. 하지만 동물권 단체에서는 생명권을 이유로 번식장 폐지를 주장한다. 김 PD는 “번식장에서는 새끼를 낳고 보호소에서는 입양되지 못해 죽는 사이클이 문제”라며 “입양할 개가 없어서 펫숍과 농장이 있는 거라면 모를까, 많은 동물이 안락사 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들의 입양을 사회가 함께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번식장에 설치된 뜬장. 개밥그릇에는 사료 대신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 있다.
불법 번식장에 설치된 뜬장. 개밥그릇에는 사료 대신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 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한편 반려동물 유통구조의 실상이 알려진 후, 반려인 사이에서는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펫숍에서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수요를 줄여 궁극적으로 번식장을 없애자는 논리다. 인천에 사는 김현지(31) 씨는 지난 3월 유기견 ‘이트’를 입양했다. 그는 “미디어가 보여준 번식장의 모습들이 충격적이었다. 이후 ‘사지 말고, 죽음에 직면한 아이를 구하자’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입양을 결정했다”며 입양 이유를 설명했다. 반려동물 생산업자 측에서도 유기동물 문제에 책임을 인정한다. 김 씨는 “유기견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을 느낀다”며 “농장수익이 떨어지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현재 유기동물 입양은 △동물권 단체의 입양센터 △동물병원 △지자체의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할 수 있다. 정부도 유기견 입양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지난해 7월 19일 정부는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국토 환경 조성'을 표방하며,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반려동물지원센터 설치’와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 등을 포함했다. 이로써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동물을 입양할 경우 예방 접종비와 중성화수술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동물권을 신장하기에는 부족하다. 김 PD는 “전보다 예산을 많이 투입한 것은 좋지만, 정부 정책만으로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유기동물 문제의 핵심은 반려동물 유통구조뿐만 아니라 ‘내키는 대로 동물을 사고 버리는 상황’이다. 입양되지 못한 동물은 안락사되기 때문이다.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식 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는 “사람들은 귀여워서 동물을 사거나 입양하고, 여건이 안되면 다시 버리거나 파양한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유기동물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며 인식개선을 촉구했다. ‘유기동물 한 마리를 데려온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 동물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일’이라는 말처럼 유기동물 입양은 누군가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상동증(常同症)=같은 표정, 행위 등을 장시간 지속해서 반복하는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