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호암관 앞에서 양산을 쓴 기자의 모습
호암관 앞에서 양산을 쓴 기자의 모습

태양 아래 든든한 동반자
양산 쓰는 관리하는 남자


양산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젊은 남성이 양산을 펼치기엔 아직 민망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기자는 이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지난 5일, 체감온도가 30℃에 육박하는 점심시간에 호암관 앞에서 양산을 펼쳤다. 마침 셔틀버스에서 수많은 학우가 쏟아져 내렸고 그들의 시선이 모두 기자에게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양보다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을 막기 위해 양산으로 시선을 가려보았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나는 평소에 양산을 쓰지 않아. 지금은 체험기를 위해 쓰는 중이야’라고 어필하려는 듯 기자는 본지 마크가 있는 프레스(Press) 증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해를 향해 걸었다. 목적지는 광화문이다.

출발하기에 앞서 양산을 구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우선 양산을 판매하는 곳이 어딘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백화점에서도 큰 매장이 아닌 이상 양산을 취급하지 않았다. 더욱이 심플한 디자인을 찾는 기자에게 맞는 양산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검은색이 더워 보일 수는 있으나 자외선 흡수율이 높아 밝은 색보다 기능적으로는 더 뛰어나다는 팁을 사전에 확인했다. 특히 양산 안쪽 면은 자외선을 사용자에게 반사해 검은색이 좋다고 한다. 또한 △방수 코팅 △암막 코팅 △자외선 차단 지수 등의 요소를 비교했다. 요즘 대부분의 양산 제품은 우양산을 표방해 방수 코팅은 돼 있으나 자외선 차단 지수는 90%에서 99%까지 차이가 났다. 한 인터넷 매장에서 기자가 원하는 디자인의 양산을 찾았다. 저렴하고 배송이 빠르지만 다소 조악해 보이는 국내배송 제품과 가격이 비싸고 배송이 느리지만 품질이 좋아 보이는 해외배송 제품이 있었다. 일단은 저렴하고 암막코팅이 되지 않은 국내배송 제품을 구매했다. 암막코팅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줄 알았으나 배송된 양산은 생각보다 얇았고 빛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할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양산을 전우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자마자 지난 학기 수업을 들었던 한기형 교수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기자는 스스로 양산을 든 모습이 괜히 어색해서 쑥스러웠다. 양산을 쓴 모습이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기자가 양산을 썼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 근방을 벗어나자 주변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양산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고마운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양산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횡단보도 앞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을이지만 9월 초의 햇볕은 따가웠으며 주변의 차들이 내뿜는 열기와 아스팔트의 열기, 하늘의 자외선은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선글라스를 낀 시민은 양산을 쓴 기자를 보자 미간을 움찔했고 이는 마치 양산을 쓴 기자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창경궁 담장은 2명이 지나가기에는 비좁은 그늘을 만들었다. 그 길을 걷는 시민들은 햇볕을 피하려 2열종대로 그늘 속에서 질서 있게 걸어갔다. 하지만 기자는 양산의 비호 아래 갈지자로 여유롭게 걸어갈 수 있었다. 안국역을 지날 때쯤 되자 처음으로 양산을 쓴 젊은 여성을 만났다. 그는 “주변에 양산을 쓴 남성이 없다”며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성은 자신을 관리하는 것 같아 호감이 간다”고 전했다. 양산 아래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광화문에 다다르자 바람이 세게 불었고 나의 동반자인 양산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자칫 부러질 것 같아 손잡이를 짧게 하고 양손으로 붙잡았다. 미국대사관 근처의 경찰들은 장우산모양의 튼튼한 햇빛가리개를 쓰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평소에 양산을 쓰는지 묻자, 한 경찰은 “아이들하고 나들이를 갈 때 아이들을 위해 양산을 쓴다”고 대답했다. 광화문 지하철역 근방의 양산 판매자는 “요즘 남자친구나 아들에게 선물하려 우양산을 사는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주위의 남성들이 양산을 쓴다는 말에 양산은 남성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호암관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이유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주위를 의식하는 기자의 짧은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