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한샘 (hansem8718@gmail.com)


 

임종진 사진작가사진 l 김한샘 기자 hansem8718@skkuw.com
임종진 사진작가
사진 l 김한샘 기자 hansem8718@skkuw.com


사진은 생각을 전하는 좋은 도구
이념 걷어 내고 직접 보고 느껴야
진정한 앎이 있어

 

북한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을 담은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로 화제가 된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 그는 월간 <말>,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사진치유자로서 사진을 통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꿈꾼다. 방북, 걸프전 종군, 캄보디아 자원 활동을 하며 차곡히 쌓인 그의 특별한 사진 철학을 들어 봤다.


어떻게 사진과 만나게 됐나.
저는 민주화운동이 정점에 있던 시기인 1987년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저학년 때부터 사회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많았어요. 복학을 하고 나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옛날처럼 돌을 집어 던지는 것보다 사진이 내 생각을 전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있었던 젊은 시절, 사진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전공인 디자인보다 사진에 푹 빠지게 된 사건은 모교에서 열린 장애인 체육대회였어요. 선수 한 명이 축구 경기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의족이 빠졌는데, 상대편이 와서 껴주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이 장면을 가까이에서 찍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운동장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묘한 느낌인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저기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꼼짝을 안하고 5시간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어요. 결국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하고 자리를 떴지만 기분은 홀가분했어요. 사진은 찍히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나서야 특별함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죠.  

기자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기자가 될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중도일보>라는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를 뽑는다며 누가 추천을 해줬어요. 사진을 좋아하니까 기자가 돼 보라면서요. 그때는 사진 관련 일을 너무 하고 싶을 때여서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 합격했어요. 그런데 관심이 있는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들을 다루지 못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어요. 신문사 선배들이 노조 활동으로 모두 해고됐을 때, 저도 함께 나가서 선배들과 대안언론을 만들었어요. 월급도 없이 열정과 재미만으로 버티다 현실적인 부분을 극복하지 못하고 망했어요. 

그러던 차에 월간 <말>에 경력직 사진기자로 지원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그런데 합격한 분이 월급이 적다고 퇴사해서 다시 면접을 봐서 합격할 수 있었어요. 97년 가을이었죠. 쾌재를 불렀고 굉장히 행복했어요. 학창시절에 월간 <말>이나 <한겨레>는 저의 사고를 정립해 나가던 특별한 매체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전설적인 곳이었고 그 전설의 마지막 즈음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했어요.

사진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했나.
젊었을 때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직업 특성상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 중에서도 소외계층의 삶에 가까이 들어가게 되면서 그분들에 대한 연민의식이 매우 강해졌어요. 그 모습을 상황 중심으로 찍었어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장애인은 더 장애인 같아보이게, 독거노인은 훨씬 더 고독하게 강조해서 찍었어요. 돌아보니 제 사진 속엔 사람은 없고 오로지 고통만이 존재할 뿐이었어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상황에만 집중했다고 할까요. 자위하거나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어요. 그 후 한겨레를 그만두고 자원 활동을 위해 1년 반 동안 캄보디아를 다녀왔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면에 있는 존엄함을 여실히 체험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작품의 대상이 되는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 되는 사진을 찾게 됐죠.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의 삶에 쓰임이 될 수 있는 사진을 찍자는 생각이 바탕이 돼 귀국 후 사진치유와 같은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어떻게 북한의 일상을 찍게 됐나.
김대중 정부 때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월간 <말>에서 출판교류사업 명목으로 방북 신청을 했어요. 승인이 나고 초대장을 받아서 북한에 직접 갈 수 있었어요. 저는 취재와 별개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는 활동을 했어요.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가 아닌 얼마나 같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북한 사람들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모습이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뭉클하고 동질적인 형상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저는 북한 사회가 폐쇄적이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교육을 받은 세대였거든요. 처음부터 그런 계획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가서 보니 이 사실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 열린 전시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그가 방북했을 당시 찍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 열린 전시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그가 방북했을 당시 찍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 열린 전시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그가 방북했을 당시 찍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 열린 전시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그가 방북했을 당시 찍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목적이 무엇인가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념이나 체제에서의 구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보면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죠. 그래서 사진에서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걷어내고자 했어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념적인 것일 수 있어요. 우리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면서, 이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탈이데올로기지만 이데올로기인, 두 특성이 양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제가 찍어 온 사진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았고 수도인 평양만 삶의 질이 높고 지방은 빈곤하다는 인식도 있었어요. 하지만 서울과 지방을 비교해 봐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수도와 지방은 차이가 있어요. 북한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으로 북한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곳의 일상에 대한 상상이 불가능해요. 북한의 연인들이 어떻게 데이트를 하고, 아빠와 아이들이 어떻게 산책하며, 결혼은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해서 상상하기 힘들어요.

때문에 정책적인 부분 외에도 정서적인 교류가 중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앎의 시간이 꼭 필요해요. 북한은 여전히 너무 먼 곳이고 우리가 아는 게 없어요. 끊임없이 보는 핵, 인권문제 말고 눈으로 직접 바라본 것은 없거든요. 재단된 것만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껴야 진정한 앎이 있을 수 있어요. 이 점은 전시의 목적과도 연결돼요.

사진 치유란 무엇인가
앞으로 작가로서 사진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현재는 사진치유라고 스스로 명명을 한 이 작업들을 중심적으로 할 계획이에요. <한겨레>에 있을 때, 후천적 정신장애를 가진 분과 6개월간 사진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심리상담 지식이 없을 때였는데, 사진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는 도구로써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 경험이 계기가 돼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이후 대학원에서 심리상담을 공부했어요. 서양식 사진치료를 배워서 자격증을 땄는데 우리나라와 잘 맞지 않아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것은 행위 중심의 사진치유에요. 저는 직접 고안한 방법을 통해 간첩 조작, 518로 발생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어요. 이들이 수감되고 고문당했기에 외면하던 모멸감의 공간을 대면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에요. 사진 찍기의 큰 특징은 대면한다는 것이죠.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그 공간의 개념이 재해석되고 결국 극복하는 것이 목표에요.

이렇게 아픔과의 대면만 하는 것은 아니고 나를 즐겁게 하는 대상과의 대면도 중요해요. 고문 후유증으로 반신을 쓰지 못하는 분이 있었어요. 이분은 늘 죽은 나무만 사진에 담았어요. 자기 자신과 동일시를 한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나무에 피어난 버섯, 즉 생명을 틔워낸 것을 본 이후로는 꽃 사진을 즐겨 찍게 됐어요. 사진을 통해 본인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상처든,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이든 그것과의 대면을 위해서는 본인이 나서야 해요. 상담자의 지도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에요. 이것이 내담자중심 사진 치료의 특징이에요.

당신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작가라면 자신의 예술 표현으로써, 기자라면 시대의 상황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사진을 사용해요.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그런 전통적 영역과는 거리가 있어요. 저는 사진을 인간의 존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보고 있어요. 사람이 우선이 되는 사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고 계속 다듬어 갈 거예요. 대안적 사진행위라는 영역 하나를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