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영화 <소공녀>에서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보루 그리고 남자친구를 대신해 집을 포기한 주인공 미소는 말한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확고한 취향을 가진 그는 주체적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머무르지 않으려는 그의 주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분명 그 신념을 꺾기 위해 무수한 설득과 회유가 개입되며 아마도 청년의 주거를 안정화하기 위해 공권력이 나설 것이다.

주거 빈곤층으로 편입한 청년세대를 위해 정부는 각종 청년주거정책을 시행 중이며 개중에는 필자가 사는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이 있다. 이 제도는 청년들에게 주거 선택권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지원 당시 요구한 대학생 자격이 휴학으로 인해 충족되지 못하면 재계약은 물 건너가는 것이냐는 문제가 의문으로 남아있다. 답은 두 가지다. 졸업해서 취업준비생으로 다시 신청하거나 재학생자격으로 재계약한 이후 휴학하는 방식이다.

눈치가 보여도 들키지만 않으면 효과적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으나 청년주거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눈 가리고 아웅 하겠다’는 심보는 계속 눈에 들어온다. LH 전용 카페에서도 취업전선에 뛰어든 전우들이 혼란의 언어들을 빚어낸다. 문제는 이들의 문제 인식이 다른 청춘들에게 공유될 여지는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는 취향을 중심으로 결집한 집단 내부에서만 소통하며 그들의 가치체계로만 세계를 해석하는 ‘섬 우주화’를 언급했다. 일본의 문화적 현상은 한국에서도 재현된다. 오늘날 젊은이의 삶은 수백 광년씩 떨어진 각자의 우주에 갇혀있다. 서로의 무관심 속에 각자의 삶은 빛을 잃어간다. 결국 청춘은 무기력함으로 뭉뚱그려진다.  

푸코는 1975년 발간된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에서 논한다. “시선은 감시하며, 각자는 이것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관찰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각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맞서서 감시를 행할 것이다.” ‘섬 우주화’에 놓인 청춘들은 끊임없이 감시가 이뤄지는 푸코의 판옵티콘 내 죄수와 다르지 않다.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시장 질서 내에서 내면화된 규율들이 ‘섬 우주화’ 세대까지 깊숙이 내려 앉아버린 것이다. 

청춘이 당면한 크고 작은 권력은 미시적이고 비가시적이다. 이 가운데 학내 언론이 존재한다.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고 학내의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함을 목표로 하지만 학내 각 이해 주체들 간 발현되는 권력 관계는 그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주로 학내 파급을 주는 소식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학내에서 빛이 바랜 언론의 목소리는 ‘섬 우주화’에 의해 더욱 희미해져 간다.

다만 푸코는 ‘권력이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와 ‘권력 행사에 전제되는 앎의 기구’를 분리했다. 학내 언론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가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청춘들이 견뎌낼 수 없는 왕관의 무게에 해당한다. 그 왕관을 찬찬히 그리고 무수히 관찰해야 만이 숨겨진 세공의 원리를 발견하게끔 한다. 학내언론이 올바른 ‘앎’을 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권력 메커니즘의 방향에 자그마한 균열을 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