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원구 (kwg0328@skkuw.com)
일러스트 유은진 기자 qwertys@
                                                                                                                                                                                                    일러스트 유은진 기자 qwertys@


오리엔탈리즘,
타자화로부터 발생해
동양 왜곡한 학문·예술,
제국주의 정당화해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역사상 동서양이 처음 충돌한 사건은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과 페르시아 제국 간 발생한 ‘페르시아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서양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대표되는 동양을 분석하며 그들과 대비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이는 당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 사람들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김기영 박사는 페르시아 사람들에 대해 “페르시아는 △과도함 △노예근성 △전제주의에 빠질 성향이 있지만, 아테나의 위대함은 △검약 △동등함 △자유란 미덕에 기초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영속하게 됨을 내포하는 작품”이라며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면서 그리스인의 우월 의식이 점차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과거부터 서양인은 동양인이 그들과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중세 유럽은 기독교 세계관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들의 주된 탐구 대상은 성서와 교리의 해석이었다. 그들에게 동양은 이교도의 세상일 뿐이었다. 르네상스가 무르익는 근대에 이르러 유럽이 동양을 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연구 관심사가 신에서 인간과 자연으로 내려와, 동양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또한, 십자군 전쟁 이후 육로로 들여오던 후추 등을 들여오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해상무역로를 개척해 인도는 물론이고 중국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이때부터 소위 ‘오리엔탈리스트’라고 불리는,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또한, 예술가들은 이집트와 중동뿐만 아니라 극동의 문화를 그들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해 중국풍, 자포니즘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형적인 고전주의에 싫증난 예술가들은 신문물에 자극받아 동양을 신비롭게 묘사했다.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경제·군사적으로 열세한 동양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서양은 동양을 열등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정의하고 이미지화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해 나갔다. 그들은 미개한 동양을 문명화한다는 명분으로 식민지를 건설했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김성곤 명예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비평에서 “서구의 문화적 우월감은 열등한 비서구를 계몽하기 위한 그들의 사명감을 고취했고, 이는 제국주의를 합법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식민지를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화와 문명화를 위해 식민지인들을 교육하고 통치하는 사명을 갖는다고 생각했다”고 서양 제국주의를 설명했다.

타자화로 빚어진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에 기반한 대립적 사고방식이자,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 및 스타일’이라고 정의한다. 오리엔탈리즘의 핵심 인식구조는 ‘타자화’다. 타자화란, 특정 대상을 이질적 존재, 차이를 가진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말한다. 김성곤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비평에서 “탈식민주의에서는 주변부 문화나 식민지인을 ‘타자’라고 부른다”고 서술했다. 즉, 근대 서양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자신들과는 달리, 동양을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무례하다고 타자화했다. 이어 “이 같은 관념은 인종 우월주의를 배양했고, ‘나와 너’의 관계를 파괴했으며, ‘타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다”고 타자화를 분석했다.

사이드에 따르면 동·서양은 지리적 장소 구분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이다. 또한, 그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서구의 편견 속에 투사되고 왜곡된 모습으로만 재현돼왔다”고 말한다. 그 당시 서구에서 말하던 동양은 서양인들의 편견이 만들어낸 허상인 것이다. 서양은 오래전부터 동양을 자신들과 대립하는 존재로 타자화했으며, 동양에 서양과 다른 성질을 부여하며 구분했다. 이러한 구별은 고대부터 형성돼왔고 근대에 이르러 제국주의를 뒷받침했다. 사이드는 그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는 단순히 부를 얻거나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는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지역의 사람들은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는 이념에 의해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펜과 붓으로 그어진 동양
사이드에 따르면, 서양의 수많은 학문과 예술은 동양을 다뤘으나 ‘미리 조작된 구조’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 서양이 동양을 대하는 인식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선별적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 중 가장 원시적인 생산양식의 특징으로 가내수공업과 자급자족 등을 꼽았는데, 이러한 후진적 생산양식을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 명명했다. 막스 베버 또한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비서구 문명에 과학, 법치, 자본주의, 합리성 등이 부재한다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인도인은 문명적으로 열등하므로 스스로 문명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며 영국의 인도 지배를 합리화했다. 동양을 왜곡한 학문은 서구가 동양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해 나갔다.

오리엔탈리즘은 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회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예술에서 오리엔탈리즘은 특히 중동을 대상으로 한 예술사조를 가리킨다.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중동을 외설적이며 향락적으로 왜곡했는데,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와 <터키탕>,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박홍순 작가는 미술관 옆 인문학에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에 대해 “제국의 멸망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 살육 축제를 벌이는 괴기스러운 장면은 미개하고 잔혹한 동양의 이미지를 그 어떤 글보다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그림 속의 동양 여성들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순간임에도 마치 교태를 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며 그림에서 왜곡된 동양 여성상을 설명한다. 이렇듯 많은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동양 여성 모습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관능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근대 유럽은 또한 동아시아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당대 귀족이 열광했던 중국풍 도자기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등이 그 증거다. 우리 학교 김계원(미술) 교수는 “특히 고흐는 에도 시대 화가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을 똑같이 그릴 정도”라며 유럽의 자포니즘 열풍을 설명했다. △시누아즈리 △오리엔탈리즘 △자포니즘 등 동양풍은 모두 ‘타자화’에서 비롯한 예술사조다. 김계원 교수는 “동양풍의 기저엔 타자화가 깔려 있다”고 말하며 “오리엔탈리즘이든 자포니즘이든 *양가성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인들은 동양을 신비하게도 보았지만, 중동인은 선정적일 것이라고, 일본인은 유치하리라고 생각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계원 교수는 “매혹당하면서도 격하시키고 싶은 양가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구의 합리성에 근거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는 인종에 대한 해석”이라고 타자화에서 비롯한 예술사조를 설명했다. 이에 김계원 교수는 “일본이나 중국 예술도 고유의 논리를 갖고 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키요에의 경우 내용이 사회 비판적이기 때문에 언론 기능도 했다”며 “이런 맥락을 알 수 없었던 서양인들은 표면만 보고 해석했다”고 덧붙였다.

                                                                  앵그르의 <터키탕>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안도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와 고흐의 <플럼꽃이 피는 나무>
                            같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고흐는 테두리에 한자를 어설프게 ‘그려’ 넣었다.

 

재생되는 오리엔탈리즘을 멈추자
현대에도 오리엔탈리즘은 재생산되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을 퇴폐적이고 향락적으로 왜곡한 영화 <300>이나, 동양의 신비주의를 이용한 <쿵푸 팬더>와 <닥터 스트레인지> 등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주변에 편재한다. 이에 대해 김계원 교수는 그 이유를 “서양의 입장에서 ‘근대성과 합리성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동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인식 때문”이라며 “이는 타자화에 해당하는 성질”이라고 분석했다. 김계원 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이 담긴 콘텐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상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서 우키요에나 중국 도자기를 봤다면 그 당시 서구인들과 똑같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며 “모든 문화에는 그 나름대로 합리성과 논리가 있고 단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제언했다.
 

*우키요에=일본 에도 시대의 대중적인 채색목판화. 우리나라의 민화와 비슷함.
   *양가성=서로 대립하는 감정이 공존하는 심리 현상. 양가감정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