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채홍 (dlcoghd231@gmail.com)


시대 특징 반영해 변화한 귀신
주변국에 비해 덜 무서운 우리나라 귀신

 

우리나라 귀신의 자취를 따라서
귀신은 △해를 끼치는 존재인 귀(鬼) △숭배의 대상인 신(神) △자연물에 혼이 깃든 자연신 △인간이 죽어서 변한 인신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고려대학교 HK한국문화연구단 강상순 HK교수는 “우리나라 귀신만의 특징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대별로 특징을 규정지을 수는 있다”며 “무속과 불교가 널리 받아들여졌던 신라, 고려 사회는 자연신에 대한 숭배가 많았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신 숭배가 특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의 귀신 기록은 오늘날 많이 남아있다. 유교 사상이 지배적인 조선 시대에는 귀신을 공경한다는 것은 제사를 의미하며 이는 ‘귀신’이 아니라 ‘조상님’을 공경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또한 귀신을 멀리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그것이 한 말을 믿지 말아야 함을 말했다. 공부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었으며, 인간과 반대되는 귀신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조선 전기 소설인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등에서 귀신은 인간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귀신은 인간과 공존할 수 없으며 마지막에는 결국 소멸한다. 귀신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도 끼칠 수 없고 오히려 귀신이 인간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 귀신의 대표적 특징은 ‘한이 서린 여성 귀신’이 많다는 점이다. 주로 ‘처녀 귀신’이라 불리며 긴 생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리고 소복을 입은 채로 등장한다. 그러나 등장하자마자 사람에게 직접적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조선 후기 기문 총화에 수록된 ‘누명을 벗고 싶은 여인’ 이야기를 보면 처녀 귀신이 김공에게 자신의 한을 말함으로써 그것을 풀어주기를 원한다. 이후 인간인 김공이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데, 이는 귀신이 인간에게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귀신이 인간에게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도움을 받는 귀신은 ‘여성’으로 그에 따른 도움을 주는 사람은 ‘남성’으로 등장한다. 유교적 관점에서 결국 스스로 한을 풀 수 없는 귀신은 ‘여성’으로 묘사되고,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가진 존재는 ‘남성’으로 묘사된다. 강 교수는 “조선 후기 여성 억압이 강했던 시기에 여귀가 많이 나온다”며 “하고픈 말은 많지만, 그 목소리가 억압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남자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기문 총화에 수록된 박소립, 윤안국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남성 귀신은 여성 귀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남성들이 죽어 귀신이 됐을 때는 다시 현실에 등장하여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으로 해야 할 역할을 한다. 이는 가부장적 관점에서 남성들에게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불교, 무속, 유교의 영향을 받아 귀신 이야기가 발전해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와 이념에 조응하는 것이 한국 귀신의 특징”이라고 묘사하며 귀신이 사회의 발전 과정에 따라 조금씩 변화돼 왔다고 정리했다.

구미호 상상도
오윤 작가의 '낮도깨비' 그림 속 도깨비의 모습

 

우리 집에 사는 귀신
우리나라 귀신은 중국이나 일본의 귀신에 비해 덜 무섭다는 인식이 강하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귀신 대부분이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것의 수호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구미호와 도깨비는 처녀 귀신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귀신으로 여겨진다. 물론 구미호는 중국과 일본에도 나타나지만, 우리나라 공포물의 소재로 가장 오래 사랑받고 있다. 구미호는 1000년을 살고 인간의 간을 100개 빼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에 해악을 가하는 귀신으로 꼽힌다. 하지만 구미호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남자를 사랑하게 돼 간을 빼먹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인간이 되지 못하는 등 부정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귀신이 인간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설명에 부합한다.

도깨비의 탄생은 고려 시대의 이의민 등이 경주에서 두두리를 숭배했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풍요를 비는 자연신의 일종으로 두두리를 숭배했다. 우리에게 착란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존재로 바뀐 것은 조선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일제의 영향으로 고대의 자연신이었던 존재가 유교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고 질병과 재난을 초래하는 귀물로 추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도깨비는 일제 강점기 이후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악한 존재로 그려진 것이지 처음부터 인간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귀신은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귀신
일본의 오니는 ‘불교 지옥에서 망자들에게 벌을 가하는 괴물 옥졸’을 일컫는 존재로서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범위가 더 넓고 의미가 다소 다르다. 오니는 거침없이 잔인한 행동을 하며 사람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요괴로 그려진다. 뎅구, 갑빠, 바께모노 등의 요괴도 주인공과의 대결자적 역할을 하며 인간에게 해를 가한다. 강 교수는 “일본의 경우 엄격한 신분제와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 원한이 공포물에서 무차별적으로 해를 가하는 복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도 *강시와 같은 해악적 존재들이 많은데 이는 다양한 소수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귀신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각 지방의 다양한 화제들이 모티브가 됐기에 여러 변화를 거듭한 기괴한 것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가까이 있는 중국과 일본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해를 끼치는 귀신도 존재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한’이 있어 복수하려는 모양새의 위해를 가하는 귀신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귀신은 드물다는 점이 주변 나라와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시=‘곧게 서 있는 시체’를 이르는 말로 중국의 대표적 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