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뒤엉킴
빛과 어둠의 뒤엉킴
  • 홍정균
  • 승인 2018.09.17 16:14
  • 호수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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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사제들' 속 음악 '바흐 칸타타'

“예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은 성경의 한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어 빛과 어둠이 뒤엉킨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검은 사제들>은 흔히 엑소시즘이라 하면 떠오르는 가톨릭 문화의 모습을 적절히 차용합니다. 도심에 있는 이국적인 성당의 모습, 어렵지 않고 친근한 동네 아저씨 느낌의 신부님, 여러 언어로 된 기도문 등 현실적 요소와 함께 장미십자회, 12마물 등의 창작적 요소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극 중에서 가톨릭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낮의 태양 아래 학장 신부는 “인간의 빛나는 이성과 지성으로”라는 교황의 말을 인용하여 가톨릭이 미신과 불합리와 맞서 싸우는 현대적인 종교임을 강조하지만 어두운 밤의 시간에 주교는 김 신부에게 *구마를 허용합니다. 이는 이성의 세계 뒤에 여전히 존재하는 몰이해와 공포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일러스트 유은진 기자 qwertys@
                                                      일러스트 유은진 기자 qwertys@

구마의식이 진행되는 명동의 모습 또한 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유동인구가 많고 빛이 꺼지지 않는 명동의 밤거리와 건물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인적이 뜸한 어두운 골목은 시각적으로 대비됩니다. 악마라는 공포와 어둠의 대상은 현대의 합리와 이성으로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최 부제는 빛을 기록하는 장치인 캠코더를 통해 악령이 등장하는 구마의식을 찍으려 합니다. 하지만 교활한 악령은 캠코더가 꺼지면 등장합니다.

<검은 사제들>은 후반 40분의 구마의식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악령이 등장하자 김 신부는 최 부제에게 바흐의 음악 재생을 부탁합니다. 최 부제가 튼 CD플레이어에서는 *BWV140(눈을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가 흘러나오고 영화의 장면은 어두운 구마의 방에서 빠져 나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명동의 거리를 보여줍니다.

바로크(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합니다. 바흐를 비판하는 자는 그의 음악이 복잡하고 과장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바로크적인 특성은 익숙하지 않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충만함을 만들어내고 숭고함과 장엄함을 수반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바흐는 정통적인 루터교의 영향 아래 교회 전통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했고 구원에 대한 이해를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니체조차 바흐의 음악을 듣고 “아마 기독교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그것은 복음처럼 들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극 중 흘러나오는 BWV140은 바흐의 칸타타 중 가장 밝고 희망찬 곡입니다. 칸타타의 가사 중 “눈을 뜨라, 너 예루살렘 성아. 지금은 한밤중”은 예수의 재림을 기원하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악령은 바로크 음악의 성스러운 힘에 의해 “빌어먹을 바흐”라고 외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

바흐의 음악과 함께 명동의 거리를 유영하는 카메라는 빛과 어둠의 혼재를 잘 나타냅니다. 가장 악마와 가까워지는 공포의 순간에 흘러나오는 바흐의 노래는 성스러움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안정감을 주고 구마의 방이 아닌 카메라 뒤 극장에서 안전하게 영화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해당 시퀀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대중성을 갖게 됩니다. <검은 사제들>은 유난히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됩니다. 화면 가득 잡히는 배우들의 얼굴은 엑소시즘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관객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캠코더의 기능 부전을 말하던 영화가 카메라의 유영과 가장 영화다운 문법인 클로즈업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은 빛과 어둠이 뒤섞인 듯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검은 사제들>에는 다른 것들의 뒤엉킴이라는 흥미로운 장면이 또 등장합니다. 악령에 들린 영신을 구하기 위해 무속인인 제천 법사와 김 신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종교를 갖지만 오직 영신을 구하기 위해 서로가 의견을 주고받으며 구마의식의 섬세함을 살리고 한국적인 엑소시즘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소의 머리를 지고 굿을 하거나 호랑이띠를 찾는 모습은 한국적인 색채를 띠게 만듭니다. <검은 사제들>이 개봉한 후 영화 평론가들은 “한국 장르영화의 폭을 넓혔다”는 평부터 “버터에 된장을 발랐다”는 평까지 편차가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공통된 의견은 한국적인 엑소시즘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최 부제가 뿌린 소금이 악마의 자리를 정하듯이 이성과 합리는 공포의 자리를 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실수로 소금선은 자주 지워지고 악마와 공포는 이성의 영역을 자꾸 넘보게 됩니다. 빛과 어둠, 밝은 칸타타와 악마의 모습, 카메라를 향한 이중적인 태도, 토속과 이국 문화의 만남 등은 이성의 세계에서도 언제나 몰이해의 공포가 우리를 엄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마=종교적 의례나 주술을 통해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능력이나 작용을 구축하는 행위.
*BWV=Bach-Werk-Verzeichnis의 약자로 바흐의 작품번호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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