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물, 라디오부터 스마트폰까지
한국 공포물, 라디오부터 스마트폰까지
  • 김윤수
  • 승인 2018.09.17 16:18
  • 호수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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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철 장사'라는 안일한 인식으로 주춤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부흥 모색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곤지암>이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6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국내 공포영화 흥행 순위 3위를 기록하며 주춤했던 우리나라 공포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공포물은 국내 드라마·영화 산업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소재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국내 방송극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방영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비롯해 영화 <여고괴담>과 같은 시대별로 대표적인 공포물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미디어 속 공포에 대해 알아보자.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사진 | 박태호 기자 zx1619@


우리나라 영상매체 속의 공포
우리나라 공포물을 처음 선보인 영상매체는 스크린이었다. 국내 공포영화는 1924년의 무성영화 <장화홍련>을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돼왔다. 당시 공포영화는 ‘한’을 지닌 여귀(女鬼)를 중심으로 한 인과응보적인 구성의 민담 또는 설화를 차용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영상 매체를 통한 공포물의 등장에 대해 고려대학교 국제한국언어문화연구소 문선영 연구교수는 “라디오 같은 청각 매체를 통한 ‘듣는’ 공포에서 TV를 통한 ‘보는’ 공포로의 변화는 당대 대중들에게 더욱 사실감 넘치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분석했다. ‘보는’ 공포에 대한 영역은 1970년대 중반 TV의 보급에 힘입어 TV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졌다. 방영 초기의 공포 드라마로는 주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전설의 고향’을 들 수 있다. ‘전설의 고향’은 1970년대 민족성 함양을 위해 제작됐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교훈성을 가진 일화를 소개하는 식의 구성이었다. 이 중 ‘구미호’ 편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하는 여름 납량특집 형식으로 굳어졌다. 문 교수는 “지금의 구미호, 처녀귀신의 모습은 ‘전설의 고향’을 통해 관련 전설을 직접 접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한국의 전형적인 공포 이미지로 굳어졌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공포물은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공포의 대상으로 사람들과 직결된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1994년에 낙태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 ‘M’이다. 당시에 생소했던 CG 기술을 편집에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화제가 됐고 역대 공포드라마 최고 시청률인 52.2%를 기록했다. 영화계에서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한 1998년의 <여고괴담>이 대표적이다. 내용적인 측면 외에도 이 작품은 귀신이 등장하는 점프 컷 편집으로도 유명했으며 그 시기에 210만 명이라는 상당히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문 교수는 “<여고괴담>은 1990년대 사람들이 사회변화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잘 반영된 작품이기에 한국 공포 영화 시장을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여고괴담> 개봉 이후부터 공포 영화는 20년간 매년 약 4.9개의 작품이 꾸준히 개봉하면서 주요 장르로 자리하게 됐다.

공포물의 침체기, 그 원인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공포물도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어려움을 겪었다. 공포영화의 경우 작품 수 자체도 2006년 이후로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소녀괴담>이 48만 명 남짓의 관객을 모은 것이 그해의 가장 흥행한 공포영화였을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 자체도 뜸해졌다. TV 공포드라마 역시 2010년의 ‘구미호:여우누이뎐’ 이후로 작품 수가 확연히 줄었다. 이렇게 공포물이 침체기를 겪게 된 원인으로 공포물에 대한 선입견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제작사 측에서는 공포물 자체가 신인 배우·감독의 영역, 일명 ‘B급 장르’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블록버스터 대작 위주의 ‘1000만 영화’에 비해 흥행 폭발력이 약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었다. ‘여름 한철 장사’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이전의 흥행했던 공포영화에 편승해 ‘여귀의 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우후죽순 제작됐고, 식상한 소재로 인해 스토리가 부실해졌다. 문 교수는 “공포 장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자체도 스토리의 치밀한 구성을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자극적인 요소로 구성됐다는 편견이 있다”며 공포물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편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공포물의 스토리가 빈약한 근본적인 원인은 스토리의 기반이 되는 국내 공포문학 자체가 해외와 비교했을 때 부실하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링>, <샤이닝>, <캐리> 등 공포 소설의 영화화·리메이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일본의 경우 더 나아가 일본 호러대상 시상식을 매년 진행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포문학은 활성화되지 못한 장르로 남아있다. 국내 공포소설 『손톱』의 저자인 김종일 작가는 이에 대해 공포라는 콘텐츠 자체를 하위문화 취급하는 대중들의 인식을 원인으로 꼽았다. 김 작가는 “공포물에 대한 독자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공포문학 자체가 사람들에게 선호되지 않고, 그 결과 공포문학을 꿈꾸던 작가 지망생들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며 “이는 공포문학 자체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변화의 움직임
이러한 위기에서 미디어 속 공포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최근에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 시도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화 <곡성>에서는 굿을 비롯한 *오컬트적 요소, <검은 사제들>에서는 퇴마 요소, 드라마 ‘아랑사또전’과 ‘주군의 태양’에서는 로맨스 요소가 공포물에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등장한 웹툰 시장에서도 공포물은 웹툰의 특성에 맞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웹툰에서는 여름 납량특집 기획으로 여러 작가의 단편 공포 웹툰 특집을 연재한다. 최근의 ‘재생금지 2018’은 많은 웹툰 독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연재했다. 해당 에피소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경음악, 스마트폰의 360도 VR 기능을 활용해 생생한 공포감을 연출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김 작가는 많은 사람에게 공포가 하나의 유흥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올해 영화 <곤지암>의 예상치 못한 흥행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포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며 “공포문화가 지금 세대들의 선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회·환경적 변화에 맞춘 공포물이 흥행에 성공했던 것처럼 공포물은 다시 한번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컬트=초자연적, 마술적, 신비적이라는 뜻으로 텔레파시·초능력·악령·영혼과의 대화·영혼 재래설 등의 요소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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