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

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낙태죄,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평등한 법
원치 않는 출산 후 겪게 되는 어려움 고려해야

낙태와 관련된 법(형법·모자보건법)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며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나가야 하는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모두 성차별이 존재한다.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제269·270조에 따르면 낙태 시 여성과 의료인만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여성과 의료인의 잘못에 초점을 두고 이들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여성의 임신과 낙태에는 남성이 처벌대상에 제외된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차별이며 균등한 처벌이 아니다. 특정 성(性)에 대한 일방적 처벌로 볼 수 있다. 모자보건법의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형법에서는 처벌받지 않은 남성이 모자보건법에서는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낙태 관련 조항은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면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부가 낙태에 대한 규정을 유지하는 이유는 낙태를 합법화할 시 심각한 저출산 사회가 되리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경우 1967년 형법에 낙태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영아들이 유기되면서 영아 사망률이 증가했다. 또한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은 검증되지 않은 시술소에서 비위생적인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루마니아는 20년 뒤 낙태죄를 폐지했다. 낙태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출산율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낙태 처벌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 안에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성평등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

낙태죄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여성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비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낙태 시술은 주로 불법 시술소나 산부인과에서 아무런 건강 상담 없이 시행된다.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다 보니 의대에서는 낙태를 교과서로만 대충 배우고 실습할 기회가 적다. 의사가 된 후 직접 시술을 하고 나서야 낙태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게 된다. 이런 실정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낙태 관련 전문의가 없다. 결국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체계화된 낙태술을 배운 전문의사가 시술해야만 여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잘못된 낙태 시술은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시술은 추후 출산 확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전문화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낙태 관련 법들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낙태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모자보건법의 예외조항이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엄격하고 제한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 모자보건법에 따라 합법적 낙태 수술을 하는 경우는 2%도 되지 않는다. 모자보건법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도 임신이 24주를 넘어가면 낙태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입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24주가 넘어간다면 원치 않던 임신임에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 제정된 지 오래된 모자보건법의 조항들이 바뀐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45년 전 보수적 가치관이 팽배하고 여성의 몸에 대해 전혀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자보건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여성의 권리도 신장된 시점에서 모자보건법을 기준으로 낙태를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여성의 낙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논의할 때 여성이 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여성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법안에서 생명이 탄생했을 때,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엄마와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역시 필요하다. 출산 시 양육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몫이 아닌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태아의 생명권만 강조하는 입장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얼마나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사회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