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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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산부인과의사회, “낙태죄는 변화한 의학적 상황 제대로 반영 못 해”
태아 생명권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제 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 270조 (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모자보건법
제 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에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지난달 17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형법 제270조를 근거로 의사의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재판 없이도 즉각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내리겠다고 공포했다.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크게 반발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이충훈)는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복지부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처분을 유예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헌법재판소, 낙태죄를 다시 생각하다
헌재는 낙태죄 관련 형법 제27장 제 269조·270조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소원 심판을 진행 중이다. 위 조항은 낙태한 여성과 낙태 시술을 한 △의사△*조산사△한의사에 대한 처벌을 엄격하게 규정한다. 해당 소원은 낙태죄로 기소된 한 산부인과 의사가 지난해 2월 제기했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헌재는 2012년 8월 부녀의 낙태죄 및 의사의 업무상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최근 들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정부 차원에서 낙태 관련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도 인사청문회에서 “일정 기간 내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했다.

한편, 지난 10월 청와대 청원 페이지에서는 낙태죄 폐지 요청 정원이 23만 명을 돌파했다. 또한 같은 해 11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 낙태죄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가 51.9%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의 36.2%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 속 헌재가 지난 2012년과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바라본 낙태죄
지난 2012년 헌재는 ‘4(합헌) 대 4(위헌)’로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위헌 판단의 주요 쟁점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에서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다. 당시 합헌 측은 “임부의 자기결정권 제한 정도가 낙태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될 예정인 생명체이기 때문”이라며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까지 허용한다면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생명경시 풍조가 퍼질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반면 위헌 측은 “국가는 인간 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 정도나 보호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 또한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에는 여성이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겪게 되는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된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립 속 낙태죄는 *정족수 미달로 ‘합헌’ 결정됐다. 헌재 결정의 정족수는 6인 이상이지만 4명만 위헌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바라본 낙태죄
상황이 변했지만 45년 넘게 개정되지 않은 낙태법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현재 모자보건법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산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을 가져도 태아에게 장애와 질환이 유전되지 않는다. 또한, 혈족이나 친족 간의 임신도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정작 중증 기형인 태아는 낙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모순된 모자보건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침해하는 경우’라는 조항도 지적했다. 또한 “모체의 건강을 해친다는 기준은 전적으로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죄가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을까. 이들은 국가가 낙태를 예방하고 생명을 존중하려면 낙태를 범죄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태죄는 법적 책임을 여성과 시술한 의사에게만 묻는 비합리적 제도라는 것이다. 김 이사는 “그동안 헌재는 낙태를 줄이기 위해 형법상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왔는데 형법 처벌이 예방 효과가 없다고 본다”며 “낙태죄가 이른 시일 내에 폐지돼야 한다”고 전했다.

낙태가 빈번해지지 않을까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더 쉽게 낙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 권인숙)의 김동식 연구위원은 “해외는 낙태를 쉽게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설치해 놨다”고 말했다. 독일, 네덜란드 등 낙태죄 폐지 국가의 낙태는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이뤄져 여성들은 낙태에 대해 신중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독일의 경우 임신 12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하며 형법에서 상담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담 시 의사는 낙태할 경우의 후유증과 아이를 낳을 경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상담의 목적이 낙태뿐만 아니라 태아를 보호하는 데에도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통해 여성들은 충분한 *숙려기간을 거쳐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논쟁,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낙태죄 폐지는 법적, 의학적, 윤리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어 전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돼왔다. 루마니아는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을 통해 <디크리 770>(Decree 770)이라고 불리는 임신중절 금지법을 폐기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임신 3개월간은 여성의 낙태권을 우선하고 이후 6개월까지는 산모의 건강을 고려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유권자들은 지난 5월 낙태 금지 헌법을 개정하는 데 찬성했다. 이에 따라 낙태시술을 한 여성에게 최장 14년의 징역형을 처하도록 했던 헌법 조항은 폐지 수순을 밟는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 속 세계 각국에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낙태죄 폐지를 걱정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낙태죄 폐지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우리 학교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민만기) 김천수 교수는 “태아의 생명권 때문에 낙태죄 완전 폐지는 어렵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이나 형법의 개정을 통해 낙태의 허용 사유를 늘려주는 방안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소원=기본권의 침해를 받은 사람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일.
*조산사=병원, 의료기관이나 가정에서 산모의 임신·분만·산후 처치를 보조하고 정상 분만을 유도하며 신생아 및 산전·후의 산모를 간호하는 의료인.
*정족수=합의체가 의사(議事)를 진행시키거나 의결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인원 수.
*숙려=곰곰이 생각하거나 궁리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