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부름에 대변하는 목소리

기자명 이철우 기자 (fecow@skku.edu)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이 몇 십여년 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면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상황 때문에 책을 자유롭게 읽지 못한다면 어떨까. 금지된 도서인 금서. 우리의 사고 속에 단순히 한 시대에 읽어서는 안 되는, 소장해서는 안 되는 책으로 여기는 금서에 대해 그 내막과 역할 등 속사정을 알아보자.

시대로 보는 금서

금서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현존 사료가 많은 조선시대가 시작점이 된다. 성리학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그것에 반하는 도가류 서적, 억불숭유 정책에 따른 불교관련서들을 불태웠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문난적』, 『정감록』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또한 16세기 중국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됐던 천주교 서적은 18세기의 도래와 함께 갖은 핍박을 받기 일쑤였다. 여러 해에 거친 박해와 처형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역시 국가의 기밀을 누설한다고 여겨 간행이 중지된 적도 있었다. 동학 역시 탄압의 표적에서 자유롭지 못해 무참히 짓밟혔다.

이후 일제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독립과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서적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에 일제는 체계적인 사전검열제도를 확립해 『금수회의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을지문덕』 등의 책들을 금서의 그늘 아래 놓았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공산계열 서적이 주로 금서목록에 오른다. 미군정의 집권과 더불어 정부의 반공정책 강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1960년 4·19와 1972년 10월 유신을 거치며 많은 금서 목록을 낳게 된다. 특히 80년대 제5공화국 아래의 금서는 해방 이후 목록의 가장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민주화운동을 거치는 과정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민주의식이 성장하면서 당대 군사독재 체재에 반대하는 사상을 담은 다종의 출판서적이 만들어지며 배포됐다. 하지만 정권에 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거세질수록 정권은 그들을 더욱 억눌렀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은 당시 폐간 당하기까지 했다. 또한 이런 시국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역사, 문화 등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에 많은 금서목록을 생성시켰다. 90년대 초반 군사독재의 막을 내림으로써 금서에 관한 규제 역시 많이 풀린다. 지금은 외설적 부분인 음란 서적의 경우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금서의 성격

이렇게 한 시대의 주류 질서 또는 지배 세력이 제작, 배포, 독서, 소지를 금지시켰던 금서는 한 시대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척도라 할 수 있다. 한 사회가 당연시하는 가치, 지식, 질서 등에 의문을 품으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 사회의 권력층에게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기존의 정치,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드는 행위는 그들이 내세우고 허용하는 사상 범위 내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범주 안에 들지 않은 서적은 자연스레 주류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금지서로 지정됐다. 반면 정권교체를 통해 이전 정권에서 지정됐던 금서는 비로소 풀리기도 했다. 이처럼 금서의 성격은 각 시대 주류 질서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금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는데 공자의 『논어』는 세계 최초의 금서였으며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안데르센 동화』 역시 한 때의 금서였다. 이처럼 금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까지 뻗혀 있었다. 금서하면 정치 사회와의 관계만을 생각하는데,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해 외설문학으로 꼽힌 중국의 『금병매』의 예는 금서의 사례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금서의 역할

금서를 통한 일방적인 압박과 탄압은 권력층의 질서만을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것 이었다. 우리사회의 부조리함을 인식했던 이들은 사회를 개선하고자 권력에 반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 중 출판업계는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세계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제공하는 한편 해방 이후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 사회에 좌우의 색을 고루 갖추게 한 계기 역시 마련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7,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불심검문과 가방수색에 가슴 졸이며 『자본론』이나 『혁명의 연구』를 숨겨 가며 봤던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 사회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민주화 실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학생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시대를 개혁시켰던 상징적인 존재. 금서. 이는 집권층의 기득권과 사상을 유지하기 위한 압박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글로 표현했던 산물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금서가 남긴 것은 사회를 다영하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