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요즘 뉴스를 보면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일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외교 문제로 정신이 없다. 여차하면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만큼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더구나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전쟁의 규모와 그에 따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게 된 현대에 이르러 외교의 중요성도 더욱 커져 있다.

외교는 인간이 무리 지어 살기 시작된 이래 사신을 파견하거나 받는 형태로 계속 진행되었으나, 외교관이 상대국에 상주하며 업무를 보는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외교는 역사가 길지 않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어그러진 유럽 국가들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1815년 소집된 빈 회의 이후, 이른바 빈 체제라고 하는 이 시기가 바로 근대 외교의 기점이다.

한편 서구에서 시작된 외교관을 주재시킨다는 근대적 형태의 외교방식은 화이질서에 의한 전통적인 외교방식을 지키고 있던 동아시아에 상당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이식된다. 물론 중국에는 포르투갈인이 상주하는 마카오가, 일본에는 네덜란드인이 상주하는 나가사키의 데지마 같은 곳이 이미 16세기부터 존재해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교역에 한정된 공간이었다.

제일 먼저 이러한 외교방식에 발을 디딘 것은 일본이었다. 미국 군함이 방문한 흑선 사건 이후인 1854년 맺어진 미일화친조약에 체결일로부터 18개월 후 미국이 일본에 영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중국 또한 얼마 후 근대적 외교방식에 발을 들이는데,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 1860년 맺어진 베이징조약에 공관을 설치하고 외교관을 주재시킨다는 조항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런 방식에 발을 들인 것은 1880년이다. 1876년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강화도조약에는 그저 외교관을 수시로 파견한다는 내용만이 있었는데, 4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를 조선국주차변리공사로 파견하게 된다. 이어 1882년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양국의 수도에 병권대신(秉權大臣: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를 주재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미국공사관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1883년부터 1902년까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청, 벨기에, 덴마크의 총 11개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이중 오스트리아는 독일공사관, 덴마크는 러시아공사관에 외교업무를 위임하고 별도의 외교관은 파견하지 않았으므로 서울에는 9개국의 외교관이 주재하고 있었다.

근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공사관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현대에 외국에 주재하는 최고위 외교관은 특명전권대사(일명 대사)인데, 지금이야 대사를 파견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고 국력에 따라 외교관의 등급에 차등을 두어 파견했기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1895년 고종이 칙령 제43호로 반포한 ‘외교관급 영사관 관제’에 따르면 조선 외교공관의 최고위 외교관은 특명전권공사였고, 다음으로 판리공사, 대리공사, 공사관 1~3등 참서관 순이었다. 조선에서 특명전권공사를 외국에 파견하므로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수준에서 외교관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의 국력이 대사관을 설치할 정도가 되지 않으므로 공사관 설치에 그친 것이나 딱히 조선의 국력 탓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예를 들면, 1900년 당시 미국이 대사를 주재시킨 국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멕시코의 6개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미국은 청이나 일본에는 1급 전권공사를, 조선에는 1급 판리공사를 파견하였다.

한편 미국은 1901년 판리공사를 전권공사로 승급시켰고, 영국은 1898년 총영사를 대리공사로, 독일은 1903년 영사를 판리공사로, 러시아는 1902년 대리공사를 전권공사로 승급시키는 등 주한 외교관들의 등급이 향상되면서 대한제국이 성립한 이후 국가의 외교적 위상이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서울에 주재하던 공사관들은 일제히 영사관으로 격이 낮아졌고, 외교권을 빼앗긴 시기와 맞물려 일본과 미국은 서로 전권공사를 전권대사로 승급시키기로 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황성신문에 실리게 된다.

                                                                                                                                                                오현웅(일반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