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독한 여름이 지났다. 여름내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 사이로 어느덧 쾌청한 바람이 스민다. 하늘은 이제 높고 푸르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이 가을에 친한 친구와 수다 떨며 걷기 좋은 “건축적인” 장소 5곳을 추려 독자들에게 추천 드리고자 한다.

1. 서울(한양) 성곽길
성곽길은 낙산길(동), 인왕산길(서), 남산길(남), 북악산길(북) 4개 코스가 있다. 이중에서 낙산길이 건축적으로 가장 아름답다. 낙산길은 동대문역사공원, 낙산공원, 혜화역을 관통하는 코스다. 오를 때는 푸른 하늘을 보고, 내려올 때는 짙은 숲을 보는 맛이 좋다. 맛이 좋은 이유는 거석으로 만든 성곽 담장 길을 한편에 두고 조망해서 그렇다. 특히, 바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서울의 산세가 달리는 담장과 겹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중간에 장수마을 ‘목수 카페’에 들려 쉬자.

2. 서울로 7017
서울로 7017은 고가 도로를 입체 조경 산보 길로 바꾼 프로젝트다. 서울로의 절정인 중간지점에 서면, 이전에 체험해 보지 못한 높이에서 남대문과 서울역이 보인다. 남대문의 웅장한 포작지붕과 서울역의 경쾌한 돔 지붕이 생전 처음 본 사물처럼 다가온다. 또한 서울의 속살인 퇴계로 일대의 건물 숲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울로 인근에 동문 건축가 최종훈이 설계한 ‘피크닉(Piknic)’이 있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작품인데,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핫 하다.

3. 사운즈 한남
JOH에서 기획한 사운즈 한남은 동네 특유의 골목길이 건물 저층을 관통하고,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에는 입체적 광장이 펼쳐진다. 옥외 파라솔 아래에 앉아 느긋이 커피를 마시고, 마신 후에는 여행서적 전문서점을 살피자. 고층 서점의 건축적 관전 포인트는 계단이다. 특히, 계단 난간 디테일이 압권이다. 나무와 철 패널 두 겹으로 빗겨서 처리했는데, 난간을 보고 있는 눈이 즐거워 계단의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근에 JOH에서 기획한 D 뮤지엄을 함께 보면 좋다. 입체적 오픈 스페이스 구성과 입체적 동선 구성이 사운즈 한남과 유사하다. D 뮤지엄에서 판매하는 당근 케이크가 맛이 일품이란 소문이 자자하다.

4. 아모레 퍼시픽 본사
아모레의 공사비는 DDP만큼 들었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이 건물은 대척점에 있다. 건물은 네모반듯하다. 1층 로비 천장을 보면, 깊은 콘크리트 천창이 있다. 천창에서 진동하며 (천창 유리 위에 공중정원 인공 연못이 있다) 떨어지는 빛이 화강석 바닥을 더 돌답게 한다. 영국 건축가 데이빗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는 미니멀리스트답게 디테일에 강하고, 재료와 빛에 강하다. 1층 박물관도 강추. 관람자와 소통하는 작품들이 돋보인다. 지하 식당가도 생각보다 맛과 가격이 착하다. 필자는 지인들과 이곳 퓨전 중국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식사를 했다.

5. 서판교 단독주택지
북촌이 과거를 대표하는 단독주택 밀집지구이면, 서판교는 현재를 대표하는 단독주택 밀집지구이다. 동문 건축가 이정훈, 이충기, 정재헌 등의 단독주택 작품들과, 그 밖에 국내 유명 건축가 권문성, 김승회, 남수현, 성수진, 승효상, 유현준, 이재하, 장윤규, 전숙희, 조남호, 조성욱, 조성익, 정수진, 황정헌 등의 작품들이 있다. 서판교에 단독주택 수가 1,500개를 훌쩍 넘어 이 시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들이 씨름한 생각과 설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 판교에 들린 김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청계학당’도 보자. 본교 명예교수님인 이상해 교수님이 설계했다. 안동 병산서원과 비원 정자를 참조하여 전통건축양식으로 지었다. 휴식은 인근에 있는 운중 저수지 ‘카페랄로 판교점‘을 추천한다.

새로운 지식은 책 속에만 있지 않고, 놀이와 휴식인 ‘유식(遊息)’ 속에도 있다. 성균관에서 강학과 유식은 하나다. 가을에 친구와 많이 걷고,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맛보자.
 

이중원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