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화려하게 부활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중 신작 ‘아워 바디’에 이상스레 자꾸 눈길이 간다. 주인공 자영은 행정고시를 오랜 기간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린 인물이다. 그녀가 조깅을 통해 건강한 육체미를 가꾸는 현주를 알아가게 되고 함께 달리기하면서 생명력을 회복한다는 시놉시스는 청년세대가 퍽 공감할 서사로 읽힌다.

건강한 몸에 대한 수요는 끊이질 않는다. 성실한 이들은 신체단련을 소홀히 하지 않음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증명한다. 다만 대학생들이 불규칙적 생활을 영위하기 쉽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끼니를 거르거나 과제나 업무로 밤샘을 하면서 무기력을 일상화하는 청춘은 결코 필자만이 아니리라. 
     
하지만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는 것에 술을 빠뜨리고 설명하기 힘들다. 영국의 의학학술지에 실린 미국 워싱턴 대학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음주이던 조기 사망 위험 및 암과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에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적당한 음주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얄궂은 반론은 더 발붙일 곳 없다. 스트레스 해소나 숙면을 위한 음주는 한 정신과학의학과 전문의가 말한 대로 “갈증이 난 상태에서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일 뿐이다.

술은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술을 먹다 인생도 갉아먹게 된다. “술통에 들어가 앉아 있게 되면 천자는 천하를 잃을 것이고, 보통 사람은 패가망신할 것이다.” 한비자 제22편 설림(說林)의 격언을 꺼내 본다. 팔딱팔딱한 생동을 술에 의지하지 않고선 발휘할 수 없기에 술통에 절인 인생은 무기력의 표상이다. ‘술 권하는 사회’가 오늘날까지 유효한 까닭에 무력감은 아직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둔갑한다. 건강한 사회의 출현은 요원해 보인다. 

타인의 삶마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에는 언제나 술이 등장한다. 군 복무 중이던 젊은 청춘의 목숨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참혹한 사건은 술에게 주어진 특혜에 대한 공분을 자아냈다. 술에 관용적인 한국 사회를 향한 규탄이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대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은 의무’임에도 야속한 사법체계와 행정업무는 눈을 감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심신미약 뒤에 그는 어디에서나 숨어있다. 그렇게 술이 생명 그 자체를 앗아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다만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술이 우리를 병약하게 하는지 아니면 병약한 우리가 술을 마시게 하는지 말이다.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더라도 음주 문화가 사회에서 근절될 수 있을까. 일탈로서의 술을 금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술이 망나니의 칼자루로 악용되는 슬픔을 지워내기 위해 ‘아워 바디’가 말하는 싱그러운 건강미에 호소해볼까 한다. 자영은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애써 잊으려는 방식이 아니라 건강하지 않음을 당당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건강 그 자체로 회귀한다.

자영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음주가 건강하지 않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건강하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하자. 술 권하는 사회는 우리의 책임이지 않은가. 이전에 소진해버린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려고 노력할 때 술에 베풀던 엉터리 관용은 무장 해제될 것이다.

정재욱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