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연수 (daleksupreme@naver.com)

정상 상태 증폭으로 정신질환 발병
유전·환경적 요인, 상호작용해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성인 5,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주요 17개 정신질환 평생유병률은 25.4%에 달한다. 4명 중 1명이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 흔한 정신질환, 그것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가

비정상과 정상 사이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줄임말인 DSM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한 정신장애 분류표로서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2013년에 발행된 제5판, DSM-5는 신경발달장애,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병적 장애, 우울장애를 포함한 20여 개 주요 범주와 300여 개 하위 범주로 정신질환을 분류하고 있다. DSM-5는 대부분 정신질환에 대해 “사회, 직업, 학업, 그 밖의 중요한 활동에서 불편을 유발하거나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 혹은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고통이나 장애의 정도는 의사가 판단한다.

한편 DSM-5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신질환의 범주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DSM-5에 우울장애의 하위 유형으로 새롭게 추가된 파탄성 기분조절장애는 간헐적인 분노 폭발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는 정상 상태에서 나타나는 분노와 구분하기가 어렵다. 폭식장애 또한 그 기준인 반복적인 폭식이 일반 사회에서도 자주 관찰돼 문제가 제기됐다. 정신질환과 정상 상태 사이, 그리고 질환들 사이 중첩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신질환과 정상 상태의 경계를 짓기 어렵다는 점에 입각해 토론토 서니브룩 보건학센터의 랠프 루이스 정신과 의사는 정신질환을 “정상 상태가 과장되거나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생물학적 요인이나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이 증폭돼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유전적 뿌리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은 19세기 말 사회적으로 격리되던 ‘광인’을 관찰하고 비슷한 증상군끼리 모아 정신질환을 13개의 범주로 나눴다. 신경정신의학자로서 크레펠린은 육체적 이상으로 인해 정신장애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같은 시기에 프로이트를 필두로 정신분석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불안의 원인을 생물학적인 관점이 아닌 무의식의 세계로 설명했다. 이들 영향으로 1950~1960년대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정신분석학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두고 의학 역사학자 에드워드 쇼터는 그의 저서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정신의학의 역사적 단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1970년대 뇌과학과 생물학을 중심으로 정신의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조현병 같은 정신장애를 뇌 질환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여기에 항정신병 약물의 등장도 한몫했는데, 항우울제 프로작을 비롯한 현대 약물 덕분에 정신질환 환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전학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하게 연관 있는 특정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의 유전적 관련성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 공동연구기관 브로드 연구소가 발표한 연구는 이러한 유전적 관련성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여러 정신질환은 증상이 다르더라도 유전적으로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환자 26만 5000여 명과 비환자 78만 5000여 명의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우울증, 조현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특히 유전적으로 중복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우리 학교 홍경수(의학) 교수는 “뇌와 관련된 여러 정신질환 가운데 소인 유전자들이 서로 겹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에 기여하는 유전자가 몇 개뿐이면 원인 유전자라고 부르고, 유전자가 수백 개면 소인을 조금 높인다고 해 소인 유전자라고 부른다. 이때 개개 유전자가 미미하게 작용하고 발병에 기여하는 유전자 조합도 다르기 때문에 소인 유전자들이 겹칠 수 있다.

‘유리멘탈’은 사실 타고난다
정신질환은 유전병이 아니다. 유전적인 성향 때문에 환경적 영향을 받았을 때 정신질환에 좀 더 취약할 뿐이지, 반드시 정신질환에 걸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발병률이 높은 성향은 스트레스-취약성 모델로 설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정신장애의 취약성을 타고난 사람에게 다양한 스트레스가 가해졌을 때 정신질환이 유발된다. 스트레스-취약성 모델은 질병에 대한 취약성과 환경적 스트레스 간 상호작용에 집중하므로 둘 중 한 가지 요인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홍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조현병 환자일 때 발병률은 50%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여도 절반 정도 발병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환경적 요인으로 미뤄 볼 수 있다. 홍 교수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효과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신경과학자 앨런 자사노프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정신건강과 신경과학의 교차점을 다룬 에릭 켄델의 신간을 비판했다. 자사노프는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단순히 뇌의 질병으로 환원하는 것이 과장됐고 대단히 이르다”고 평가했다. 정신질환과 유전의 관계가 불확실하고 질환에 연루된 유전자라도 관련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주요 정신질환이 유전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정신질환 사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홍 교수는 “유전적 영향을 총체적으로 합한 값은 크지만, 수백, 수천 개 유전자를 하나하나로 보면 매우 약하게 기여한다”고 보충했다.

정신질환은 사회, 환경, 그리고 신체를 포함한 다양한 맥락 속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태아기의 바이러스 감염이나 태중(胎中) 환경 같은 생물학적 환경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섭식장애를 외모지상주의와 관련되는 ‘선진국형 질환’이라고 이름 붙였다. 섭식장애인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생물학적 또는 유전학적 측면에서 그 원인을 *뇌섬엽 기능의 이상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젊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식욕부진증을 마른 체형을 이상적으로 보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떨어트려 보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유전적 취약성이 있더라도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영위할 수 있고 취약성이 없더라도 정신질환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이 의심되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우선이다.
 

*뇌섬엽=뇌의 외측 틈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피질 부분으로, 신체 내부의 감각기에서 생성되는 감각을 처리해 몸 전체 상태를 인식한다. 음식의 맛에도 반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