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조하급 교육학과 65학번, 서문여자고등학교 교장

■살아오시면서 마음속에 둔 교육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가정에서 주지 못하는 것을 학교에서 줄 수 있을 때, 학교 본연의 교육 목표는 달성된다. 학생들에게는 예절 교육에 치중했고, 선생님들에게는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해왔다. 선생님들이 담임과 교과를 이끌어 가는 학습의 주체로서 학생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할 때 학생들은 발전한다.

■대학 시절의 추억이 많을 텐데 지금 생각나는 추억은
미식축구를 했던 헐려버린 문과대 앞 운동장과 합창단원이 모여 노래를 부르던 당시 정문 옆 정정헌이라는 건물은 나에게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추억의 한페이지다. 집사람과는 캠퍼스 커플이다. 그녀와 문과대 3층 강의실에서 문학 강의를 들으며 데이트를 대신하던 시절도 돌이켜보니 30년이 지났다.


『불씨』
도몬 휴우지 지음, 굿인포메이션

『불씨』라는 소설을 읽은 지도 벌써 10여년이 된다. 학교장의 업무 수행 역시 경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쪽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미국 케네디 대통령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인물인, ‘우에스키 하루노리’의 생애가 실명소설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에 읽으며 큰 감명을 받은 바 있다.  

1767년대 당시의 일본은 에도 막부체제였지만, 260여개의 자그마한 나라들이 ‘번(蕃)’이라는 이름으로 난립해 있었고, 이 소국(小國)들은 번주(藩主)라는 지배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다스려지고 있었다. 도쿄의 서북쪽 산간 지대에 있는 ‘요네자와’라는 작은 번에 17세의 ‘우에스키 하루노리갗 번주로 등극한다. 그러나 번의 재정 상태는 파산 직전이었고, 중신들은 보신주의에 젖어 나라의 면모는 불꺼진 화로같이 한가닥 희망도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사태 앞에서 우에스키 하루노리 번주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의 개혁은 사랑과 신뢰 없이는 되지 않는다. 번사(藩士) 한사람 한사람이 불씨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우선 자기의 가슴에 불을 붙여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타인의 가슴에도 그 불을 옮겨 주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자신을 불태우겠다.

1천 5백양인 자신의 지출 한도액을 2백양으로 줄이고, 50명이던 하녀를 9명으로 줄이는 등 하루노리 번주는 자기 자신부터 개혁의 시범을 보인다. 이러한 작은 불씨는 모든 무사(武士)도 농사에 참여하며, 한치의 땅이라도 개간하여 수입원을 만든다는 의식의 개혁이라는 커다란 불씨로 옮아간다.

쌀 농사 위주에서 지방 특산물의 생산을 장려하고 이것을 가공해서 다른 번에 판매하는 정책으로 불씨는 옮겨 붙고, 원료 수출을 지양하고 제품화하여 수출함으로서 부가 가치를 높이는 불길은 전 국민으로 번져가게 된다. 산간 지방 풍토에 맞는 옻나무를 이용한 도료의 생산, 닥나무로 종이 만들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의 과감한 실천으로 번의 재정은 윤택해진다. 이는 하루노리 번주의 탁월한 지도력과 적재적소에 신하를 배치하는 용인술의 결과였다.

하루노리는 1785년 그가 35세가 되기까지 18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모든 국민이 사농공상의 신분을 잊고 하나가 되는 정신 혁명을 이룩했으며, 백성을 보물로 만드는 정치를 펼쳤다. 그가 죽어버린 산하만을 소생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믿음을 소생시키는 과정이 소설로서 잘 형상화되어 있어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1822년 72세로 죽을 때까지 그는 요네자와번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지금까지도 그는 개혁의 성공적인 모델로 일본인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