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기다린 13년은 아픈 세월의 전부가 아니다
판결을 기다린 13년은 아픈 세월의 전부가 아니다
  • 최인영
  • 승인 2018.11.05 18:11
  • 호수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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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밤마다 공습을 피해
달아나던 초등학생 시절 생생해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는 달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로 원고 이춘식(94) 할아버지는 13년 8개월 만에 신일철주금으로부터 1억 원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서명서 한 장을 받기 위해 쏟은 눈물
김정주 할머니는 올해 88살이다. 그는 일본 도야마현 후지코시 공장에서 1944년부터 2년 동안 중노동을 한 후 귀국했다. 그는 일본에서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강제동원 피해 청구 재판과 일본 기업 앞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 일본 재판에 참여했을 때 판사가 할머니 측 변호사의 말도 듣지 않고 소송을 기각했다. 할머니는 재판이 끝난 뒤 재판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 일했던 후지코시 공장에 가서 시위하다 경비원이 목을 조르며 쫓아내는 바람에 목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한국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 청구 재판을 진행 중이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피해 사실 확인을 위한 서명서를 받으러 돌아다닌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9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근로 정신대가 있었다는 것도 잘 몰라서 피해자가 직접 피해 서명서를 받아야 했어. 난 서명서에 서명 하나 받으려고 동사무소에 들어가면 항상 울면서 쫓겨나는 것이 일상이었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국회의원에게 서명을 받으려고 국회의사당 건물 2층부터 7층에 있는 모든 사무소를 다 들어갔다. 동사무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 할머니는 서명서를 다 채우지 못했지만, 장완익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판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명서를 받기 위해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장 변호사를 만났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지금도 빼앗긴 청춘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뜬눈으로 지새운 시간
초등학교의 일본인 선생님이 6학년이던 그에게 일본에 가면 먼저 일본에 간 언니를 볼 수 있고 중고등학교도 다닐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결국 일본에 가겠다는 문서에 도장을 찍고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일본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할머니는 공장에 도착하자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묻자 할머니는 배고픈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침에 된장국 한 그릇, 점심에 삼각 주먹밥 하나, 저녁에 밥 한 숟갈이랑 닭강정 3개밖에 안 줬어. 너무 배고파서 기숙사 풀을 뜯어 먹으니까 배가 안 아픈 날이 없었지.” 그는 매일 밤 미국에서 오는 공습이 울리면 도망가기 위해 항상 신발을 신고 잤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그는 기숙사로부터 탈출해 멀리 달아났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아직도 도망치던 느낌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날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기숙사와 공장에서 청춘을 보냈다.

곁을 지켜준 사람은 일본인
할머니는 우리나라가 해방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는 공장에서 보이던 일본인들이 사라진 것이 이상해서 물어본 뒤에야 해방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갔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지내며 고생했던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할머니에게 먹거리와 차비를 주고 잠도 재워줬다.

1970년대 일본에서의 재판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길에 할머니를 챙긴 사람도 일본인이었다. 1990년대 일본인 변호사는 다시 일본에서 재판을 진행할 때 그에게 옷을 사주고 비행기에서 먹으라고 군밤도 사줬다. 그는 재판이 끝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할머니를 붙잡고 승소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청춘을 다 바친 고생을 내 나라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결국 내 청춘을 빼앗은 나라의 사람이 울어주니 마음이 복잡했어”라고 당시의 심정을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대두되자 할머니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렸다. 할머니가 인터뷰할 때마다 눈물을 보이자 손자는 할머니에게 인터뷰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자가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많이 울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인터뷰를 해서 그만두지 못했다. “나라도 인터뷰를 해서 한국이 근로 정신대 문제를 제대로 알아줬으면 하니까.”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근로 정신대는 노동 착취, 위안부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집단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한국 사회가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일본에서 참여한 재판이 전부 기각당하며 항상 들었던 말이 있다. ‘너희 나라에 배상했으니 너희 나라에 가서 돈을 받아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서명서 받으러 간 사무실의 사무장이 날 쫓아내면서 ‘할머니들 다 집도 주고 돈도 주는데 왜 왔느냐’는 말도 들었어”라며 “우리는 집도 돈도 받은 적이 없어. 그건 위안부야. 우린 근로 정신대고”라고 전했다.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무지가 피해자들에게 두 번 상처 주고 있다.

손꼽아 기다리던 판결을 기다리며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적절한 보상과 사과를 받을 수 있는 판결이다. 그는 장 변호사에게 이번 달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소송의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판결이 났던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승소로 끝났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위 사람의 응원도 들었다. 여전히 김정주 할머니처럼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을 기다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다. 이춘식 할아버지의 재판은 끝났지만 그들의 재판은 미완이다.

사진 | 최인영 기자 ciy0427@skkuw.com
사진 | 최인영 기자 ciy0427@skkuw.com

*전원합의체=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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