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채홍 (dlcoghd231@gmail.com)


작가주의 관점에서 본 브레송만의 스타일
영화를 통해 자신의 믿음 확인

로베르 브레송은 1900년대 활동했던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총 13편의 영화를 남겼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감독으로 특히 누벨바그 감독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누벨바그는 신예 감독의 등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사조로 기존의 영화 관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던 시기를 일컫는다. 브레송 또한 그만의 특징을 가진 영화를 많이 남겼기에 이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여겨진다.

시네필을 향한 첫걸음
시네필은 ‘영화광’을 의미한다. 기자는 시네필이라는 용어가 ‘영화제에서 일정 요금을 내면 영화제 기간 섹션별로 영화 한 편씩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카드’를 의미하는 말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시네필이 영화광을 의미하는 만큼 영화제 동안 그 영화광들이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징표의 의미에서 그 카드를 지칭하는 말이 시네필로 정해진 것은 처음 알게 됐다. 시네필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시네필이 되려면 현재의 영화가 있게 만든 고전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고전영화의 상영관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지난달 1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됐던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브레송의 열세 가지 얼굴’을 발견했다. 마침 시험이 끝난 주인, 지난달 25일 변성찬 영화평론가의 “로베르 브레송의 ‘감옥-이미지’에 대한 단상들”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강연이 있어 이를 들어보기로 했다. 강연의 내용은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 사제의 일기>, <잔다르크의 재판>, <사형수 탈주하다> 등의 감옥 이미지를 가진 영화의 특성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강연에서 가장 강조했던 내용은 브레송적인 비전과 브레송적인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강연에서는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영화에 드러난 비전과 스타일 둘을 조금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다.

브레송은 영화에 어떤 생각을 담았나
브레송적인 비전은 영화에 드러난 브레송의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그의 작품 <죄지은 천사들>, <시골 사제의 일기>, <잔다르크의 재판>에서 가톨릭적 죄의식의 전이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브레송의 영화를 ‘얀선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얀선주의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매우 비관적인 견해로 신의 은총을 매우 중요시한 주장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는데, 선을 선택하는 자는 앞으로도 자유의지에 따라 신의 은총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생각이다. 이 두 생각은 얼핏 보면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브레송은 이 두 생각을 결합해 가톨릭적 죄에 대한 구원을 설명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신의 형상을 알 수는 없지만, 신의 은총은 가능하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요시한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변 평론가는 “브레송은 신자는 아니었지만, 신의 은총과 구원에 대한 논리적 질문을 던지고 생긴 사고방식이 그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브레송은 영화들을 통해 그의 믿음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했으며 영화가 발전함에 따라 그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 그를 얀선주의자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 브레송은 “나는 얀선주의자로 불렸지만, 이는 미친 짓이다. 나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을 보면 <죄지은 천사들(1943)>, <소매치기(1959)>, <돈(1983)>으로 발전하면서 점차 냉혹, 잔인해지고 염세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전의 영화보다 희망이 사라지고 염세주의적이라는 평가에 그는 “<돈>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고통스럽게 회개하지 않나. 고통의 의미가 클수록 구원의 의미도 큰 것”이라 답한다. 결국 이는 신의 은총을 의미하는 발언으로 얀선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에서의 은총에 대한 설명이 연상된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얀선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변 평론가는 “고백과 회개를 통한 더 큰 은총을 받는 것으로서 결국 브레송의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라 말했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생전 영화 촬영 사진.


브레송은 자기 생각을 어떻게 표현했나
브레송적인 스타일은 그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시했던 것을 의미한다. 변 평론가는 이를 파편화와 모델로 구분해 설명한다. 파편화는 화면에 등장하는 것들을 해체 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브레송은 재현은 원본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여겨, 단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억압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편화라는 방식을 통해 배우의 역할은 물론 카메라에 등장하는 질료 간의 관계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또한 ‘신체의 파편화’라는 특징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영화 <소매치기>에서 주인공이 소매치기하는 손의 클로즈업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이렇게 신체를 ‘파편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그의 페티쉬적인 특징도 드러낸다. 파편화와 함께 브레송의 가장 큰 특징으로 손꼽히는 것은 모델이다. 그는 전문 배우를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우가 아닌 일반 사람을 등장시키고 이들을 모델이라 칭했다. 그는 배우의 연기를 그들 내면에 누가 있는지 예단하는 것으로 생각해 이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브레송은 연기하는 모델이 밖으로부터 안으로 요구되는 움직임에 충실하기를 바랐다. 변 평론가는 “카메라로 찍으면 후에 어떤 의미가 새로 발견될 수 있으니 배우가 미리 예단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라 설명했다.

나도 이제 시네필
고전영화라 하면 현대 상업영화에 비해 지루하고 난해한 내용의 영화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브레송의 영화를 자세히 보고 평소에 보던 현대의 영화와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브레송만의 영화 스타일, 작가주의 관점에서 감독만의 스타일을 찾고 이를 토대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시네필 흉내를 내보려 시작했던 시도가 자연스럽게 다른 영화를 찾아보게 하는, 진정한 시네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에 이어 이번 달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리하르트 바그너 주간’이, 다음 달에는 ‘하워드 혹스 특별전’이 예정돼있다. 이들을 경험하면서 영화에 대한 더욱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시네필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 포스터.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