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감독의 독창적 표현방식에 주목한 작가주의
창조적 수용의 근본은 고전영화를 지각할 수 있는 힘

지난 13일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Cinephile)들의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났다. 시네필은 영화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cinema(영화)와 phil(‘사랑한다’의 접미사)을 합성한 조어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진지하게 바라볼까? 그 시선에 대해 알아보자.

1960년대 유럽, 작가주의의 출발
1895년 파리의 그랑카페 지하에서 상영된 최초의 영화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 이후 영화는 예술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영화는 기계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매체일 뿐이라는 시각에 맞서 이탈리아의 영화이론가인 리치오토 카누도는 영화를 음악, 시, 건축, 회화, 무용, 조각에 이어 제7의 예술이라고 지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다른 예술 장르에 종속된 비독립적인 것으로 취급되곤 했다. 실제로 많은 영화가 기존 문학작품을 내용으로 하여 창작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영화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앙드레 바쟁이 편집장으로 있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프랑수아 트뤼포는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이런 전통을 통렬히 비판했다.

역사상 영화를 가장 사랑한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그는 영화만의 독창적인 표현양식에 주목했다. 이영재(국문) 초빙교수는 이 같은 트뤼포의 비평은 그의 스승인 앙드레 바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는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비평가였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앙드레 바쟁은 편집이라는 영화의 조작 가능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기법인 △롱쇼트 △롱테이크 △편집의 최소화 등의 방법에 초점을 맞추며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같은 평가가 등장하게 된 맥락으로 “세계대전 시대는 영화의 조작 가능성에 기댄 *프로파간다 영화 전쟁의 시대였다. 아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이 만든 혁명의 열기, 레니 리펜슈탈의 <위대한 승리>가 가진 일관된 숭고미는 영화의 조작 가능성에 대한 무시무시함을 지각하게 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매우 맥락적인 면을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런 시간을 지나온 앙드레 바쟁은 <게임의 규칙>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바쟁의 영향을 받은 트뤼포는 영화의 조작 가능성보다는 *미장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학작품의 스토리만을 전달하는 영화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영화만의 시각적인 요소를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을 찾아 작가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플롯보다는 작가의 시각적 인장, 스타일로 영화를 평가하는 이런 비평은 미국의 영화이론가 앤드류 사리스가 작가론이라고 번역했다. 영화의 중심 인물은 감독이며 이는 곧 작가라는 이론인 작가주의는 널리 퍼지게 됐고 고전영화의 목록들을 채워나갔다.

가운데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
오즈의 <꽁치의 맛>, 쥬세페 토르네토레의 <시네마천국>


세계적인 영화계의 변화
작가주의의 등장 이후 영화계의 흐름은 세계적으로 바뀌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인 트뤼포, 알랭 레네, 장 뤽 고다르 등이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고 감독이 된 이들은 각각 영화 <400번의 구타>, <히로시마 내 사랑>, <네 멋대로 해라> 등을 찍었다. 이들은 프랑스 영화에서 기존의 관습적인 영화에 반대하는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이끌었다. 작가주의 이전의 할리우드 감독들인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또한 작가주의로 재평가됐다. △<사이코>, <새> 등을 찍은 히치콕은 심리적으로 공포와 불안을 추구하는 스릴러 △<역마차>, <황야의 결투>의 존 포드는 서부극 △모든 장르를 다 잘 만들었다는 장르의 대가 하워드 혹스 같은 감독들은 시각적인 독창성과 일관적인 세계관을 그려내 스크린에 자신만의 인장을 남겼다는 점에서 작가로 인정받았다.

60년대 이후의 흐름에 대해 이 교수는 “뤼미에르 이후 영화사(史)의 부피가 축적됐고 새로운 창작 주체들은 전혀 새로운 것을 찍는 것이 힘들어졌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또한 미국식 갱스터 영화를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미국식 갱스터를 파리라는 공간에 배치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되고 싶은 좀도둑 미셸을 주인공에 배치하는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영화 창작의 방식이 이와 같은 인용의 복합체가 돼가는 시대에 ‘새로운 영화 읽기의 방식은 어떻게 돼야 할까’ 하는 물음이 있었고 이때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등장했다. 비디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인 80년대까지 하스미는 영화가 한번 상영되면 정지하거나 되감을 수 없는 극장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영화를 봤고 기억했다. 눈앞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인용하는 고전영화들을 지각하는 힘은 영화에 대한 창조적인 수용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다다미 쇼트를 인장으로 하는 오즈 야스지로를, 주목받지 못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재조명했다. 쇼트(Shot)는 활극(活劇)이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대해 이 교수는 “하스미가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와 궁극적으로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에 대해 내놓은 답이다. 생기있는(活) 이미지에 대한 강조로 볼 수 있는 이 말은 쇼트 안에서의 움직임, 쇼트와 쇼트 사이의 움직임, 쇼트들을 이루는 전체적인 움직임에 대해 파고들어 사고해야 함을 강조한다. 쇼트라는 영화의 최저 단위까지 가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그에게 영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며 하스미는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어 하나의 쇼트 단위까지 분석해 들어가는 70년대 일종의 *신비평적인 영화비평의 방식은 작가주의 이후 가능했던 형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주의를 제창한 <카이에 뒤 시네마>를 표방하는 잡지로 <키노>가 영화 탄생 100주년인 1995년에 발간됐다. 평론가 정성일이 편집장, 박찬욱이 필진이었으며 봉준호가 구독했던 <키노>는 영화에 대한 담론을 주도하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이 교수는 당시에 많은 시네필들이 우리나라에 있었고 또 생겨났다고 전했다. 다만 영화에 대한 수용 양상의 변화를 통한 재정난 때문에 <키노>는 지면상 9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작가주의 논쟁과 의의
상기한 감독들의 이름은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감독과 평론가의 지지를 받는 명단이다. 한편 작가주의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교수는 “영화는 작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시스템의 산물이고 영화는 시장 안에 놓여 있으므로 관객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작가의 인장으로만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처음부터 독단적인 자세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작가주의는 작가가 표현하는 영화의 형식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오늘날 영화에 대해 오락의 요소를 중시하는 대중들의 관점과 간극이 생긴다. 시네필들이 적극적으로 찾는 고전영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부진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영화는 한 장면이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관객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장면과 장면을 흘려보낸다. 작가주의는 이런 무의식을 자각할 수 있게 하고 이는 카메라를 잡을 사람들의 재능, 영화를 수용하는 이들의 재능을 풍부하게 한다”며 고전영화를 많이 본다면 텍스트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로 상영하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필름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에서 우연히 오즈 영화를 본다면,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마주하게 된다면, 극장의 공기,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시네필들과의 조화를 통해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된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에게 어느 영화가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계보를 따라 걸어보길 권했다.

왼쪽부터 하스미 시게히코, 알프레드 히치콕, 프랑수아 트뤼포
왼쪽부터 하스미 시게히코, 알프레드 히치콕, 프랑수아 트뤼포


*프로파간다=특정한 사상적 노선을 위해 여론에 영향을 주는 선전의 일종
*미장센=제한된 화면 안에 배치되어 의미를 나타내는 시각적 요소.
*다다미 쇼트=카메라를 다다미에 앉아 있을 때의 높이로 조절하고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오즈의 촬영 기법.
*신비평(New Criticism)=문학용어로 작가, 시대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작품 내부의 요소만으로 비평하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