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오혜진 문화연구자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문학적 현장으로 인식된 퀴어 이슈
자기민족지로서 퀴어서사에 주목해

한국에서 퀴어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한국 문학이 설정해 온 정상성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국제관 카페에서 문화연구자 오혜진을 만나 물어봤다.

어떤 연구주제에 관심을 가지는가.
페미니즘과 퀴어정치학을 중심으로 근현대와 동시대 문화예술을 비평한다. 한국에서 정상성 개념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과 그것에 균열을 일으키는 문화정치적 현상에 관심 있다. 정상성이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성다워야 한다, 사랑은 이성 간에만 가능하다’ 등 우리가 당연하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특성이다.

퀴어비평은 무엇을 읽어내고자 하는가.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대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퀴어가 직접 쓰거나 퀴어가 등장하는 문학만을 퀴어문학으로 규정했다. 현재 퀴어문화는 더 확장적으로 정의된다. 창작주체가 반드시 퀴어가 아니더라도 이성애 규범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의 정상성에 교란을 일으키려는 작품이라면 퀴어비평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퀴어서사는 어떻게 전개돼왔는가.
퀴어에 대한 관심이 막 부상하던 1990년대 퀴어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이때 퀴어는 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당시 주류 대중서사의 초점은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나’의 도덕적 우위와 윤리적 성찰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성정체성과 사회적 차별에 대한 성소수자의 번민은 전형적이고 익숙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최근에는 ‘성소수자도 나와 같은 현실을 사는 평균적 인간’임을 강조하는 전략이 눈에 띈다. 최근 대중서사에서 성소수자는 대부분 10~30대의 청소년 및 청년이고,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만이 이들의 유일하고 압도적인 고민은 아니다. 이제 성소수자는 ‘일반’ 청년처럼 연애, 취직 등 N포세대의 고민을 공유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경제적 지표로 자신의 사회적 좌표를 감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퀴어는 일종의 계급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이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등이 그 예다. 또한, 최근 퀴어서사들은 문화적 아카이브의 기능도 한다. 퀴어문화축제, 동성혼 논의, A대위 사건, 성소수자의 죽음 등 퀴어 이슈와 사건, 담론들이 퀴어서사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에야 퀴어 이슈가 추동하는 지식과 정보, 미적 실험들이 문학적 자원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최근 등장하는 퀴어서사의 특이점은.
최근 이성애 가부장제의 억압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그 대안으로 퀴어를 등장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때 퀴어의 정서적·성애적 관계는 꽤나 유토피아적으로 상상된다. 예를 들어 식민지 가부장제가 주조한 남성성의 출구로서 레즈비언 성애를 다룬 영화 <아가씨>의 설정은 혁신적이지만, 이때 레즈비언 성애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영화연구자 조혜영이 지적했듯 ‘숙희’와 ‘히데코’의 섹스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지는 형태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구도를 내장한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위해 퀴어성애를 어떤 권력관계도 작동하지 않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로 낭만화하는 것은 퀴어에 대한 또 다른 타자화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자기민족지’로서의 퀴어서사가 등장했다는 점도 인상 깊은 변화다. 이전까지 퀴어는 주로 이성애 규범성 안에서 타자에 대한 이해를 실험하기 위해 선택되는 소재였다면, 최근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작가들의 서사에는 성소수자들의 자기지시적인 문화적 레퍼런스들이 대거 등장한다.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이 그 예다. 다만 제도문학권에서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작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게이문화는 일종의 서브컬쳐로서 일부 문화적 시민권을 확보한 반면, 레즈비언 문화는 가시화되기 어렵다. 커밍아웃의 성별정치학과 관련되는 문제다.

앞으로의 연구방향은.
한국문학에서 남성성/여성성, 문학/비문학 같은 이분법적 대립항을 구성해온 질서를 점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13명의 페미니스트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함께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라는 책을 펴냈다. 제목 중 앞의 ‘문학’은 남성 중심적 질서에 의해 성립한 작품과 그에 대한 문학담론을 말한다. 뒤의 ‘문학’은 페미니스트 문제의식을 장착한 세대가 상상하는 새로운 문학이다. 앞으로도 문화예술장에서 전개되는 성정치의 현장을 비판적으로 포착하고 분석할 것이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number@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