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연수 (daleksupreme@naver.com)
지난달 26일 내한한 트래퀸 'pearl'이 공연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내한한 드랙퀸 'pearl'이 공연하고 있다.

동성애자, 사회적으로 구성돼
역사적으로 교차한 퀴어·페미니즘

‘퀴어’라고 할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사람은 서울광장 위 “변태적이고 한국 정서와 맞지 않게” 훤히 드러난 엉덩이와 화려하게 화장한 여장 남자를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영화 속에서 애틋하게 사랑을 나누는 두 여자를 떠올릴 수 있다. 퀴어 이론은 그 이상을 상상한다.

동성애자, 만들어진 정체성
‘무엇이 동성애자를 구성하는가?’ 퀴어 이론은 이렇게 질문한다. 동성애가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 간 성행위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며 동성애자라고 따로 부르는 유형이 없었다. 푸코의 성의 역사에 따르면 동성 간 성행위는 늘 존재했지만 이에 대한 식별 범주는 근대 이후에나 구성됐다. 그는 19세기 전까지 유럽에서 동성애는 여러 가지 성적 일탈 행위 중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19세기에 생산된 성 담론과 맞물려 종(種)별적 존재로서 동성애자가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구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속연구자 박관수는 한국 강원도 지역의 남성 동성애를 추적하면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남성 동성애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보편적 현상이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동성애자라는 유형 범주가 없었지만 성적 실천으로서 동성애가 성행했다. 이와 관련해 여성학자 박차민정은 조선의 퀴어를 통해 근대 이후 조선에 동성애자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한다. 1920년대~1930년대 성과학이라는 근대 학문이 일본을 통해 조선으로 유입되면서 변태성욕자, 동성연애자 등 ‘정상인’이 아닌 인물들이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성애 규범성이 확립됐다. 이렇듯 동성애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동성애자라는 식별 범주가 출현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지난달 9일 드랙킹콘테스트 올헤일에서 드랙킹 ‘Roche the Mad Scientist가 공연하고 있다.
지난달 9일 드랙킹콘테스트 올헤일에서
드랙킹 ‘Roche the Mad Scientist'가 공연하고 있다.
ⒸNina 제공


 그리고 퀴어
근대 동성애 정체성이 형성된 이후 20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다양한 동성애 옹호운동 집단이 조직됐다. 처음에 이들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주류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목표했다. 그러던 1969년 6월 스톤월 항쟁이라는 상징적인 계기로 중요한 전환이 발생했다. 이성애 중심적인 구조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는 해방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해방주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보다 제도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르게 자신들이 이성애자들과 오히려 다르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안적인 섹슈얼리티로서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레즈비언, 게이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가 이성애를 지탱하고 동성애를 억압한다고 비판했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에드리언 리치의 경우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현존을 통해 여성에게 이성애가 정치적 제도로서 강제된다고 해석했다. 레즈비언, 게이 정체성이 등장한 이후 더 넓은 범위의 정체성을 포괄하기 위해 바이섹슈얼(양성애자)과 트랜스젠더를 추가한 LGBT가 완성됐다. 오늘날 LGBT라는 조합은 더 많은 범주의 가능성을 표시하기 위해 LGBT+ 혹은 퀘스처너리(정체화하지 않은 사람), 인터섹슈얼(간성), 에이섹슈얼(무성애자), 팬섹슈얼(범성애자)을 포함한 LGBTQIAP로 확장됐다. 하지만 이 정체성 모델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여성과 남성 혹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결국 타고난 것으로서의 섹스에 기반한 젠더 정체성은 고정되고 물화되는 방식”이라며 “동성애와 이성애를 대립 항으로 둔 채 다른 정체성을 더하기 하는 모델은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성’으로서의 이성애를 해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양성평등’ 대신에 ‘성평등’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나 성중립화장실 논의와도 맞닿아있다.

한편 해방주의자들은 레즈비언과 게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별개의 인구집단을 상정하고서 이들의 시민권을 보장하자는 관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회구조 전체를 변혁하기보다 구체적인 정치적 사안을 바꾸는 데 집중했다. 레즈비언, 게이 정체성은 성적 대상만을 기준으로 단일화돼 또 다른 규범적인 정체성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정체성 모델은 다른 다양한 섹슈얼리티들을 소외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때 ‘퀴어(queer)’는 정체성 모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퀴어는 원래 ‘이상한’, ‘괴상한’을 뜻하는 말로 동성애자를 심하게 모욕할 때 쓰였다. 그러나 운동가들은 관습적인 정체성을 대체하고 모든 성적 가능성을 아우르는 말로서 퀴어를 새롭게 전유했다. 퀴어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퀴어의 가장 큰 특징인 불특정성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퀴어영화’에서 퀴어는 성소수자 전반을 가리키는 편리한 약칭으로 기능한다. LGBT 같은 기존의 정체성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설명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아예 명시하지 않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퀴어 이론’에서 퀴어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에 관해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추론을 피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퀴어를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렵고 그것이 퀴어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며 “그럼에도 합의된 수준에서 말하자면, 기존의 보편적인 정체성 개념에 도전하면서 이성애의 반대항으로서의 동성애가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보충했다. 퀴어 이론에 대해서 그는 “우연성, 모호성, 위반의 정치학으로 대변되는 퀴어 이론은 이성애 정상성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다중적이고 도착적(일탈적) 주체성들의 정치학이자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젠더는 패러디다”
퀴어 이론은 1990년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학술대회의 이름을 퀴어 이론이라 붙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많은 교수진이 본래 멸칭이었던 퀴어를 이론의 이름으로 붙인 것에 대해 당혹감을 나타냈다. 이렇게 탄생한 퀴어 이론은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포스트구조주의가 주체성 개념과 정체성 개념에 회의적이었다는 점에서 퀴어 이론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푸코의 이론은 퀴어 이론의 학문적 토대를 이룬다고 평가된다. 푸코는 성적 정체성을 포함한 성적 현상 전체, 즉 섹슈얼리티가 권력에 의해 문화적으로 생산된 범주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담론을 통해 개인을 특정한 주체로 구성해낸다. 여기서 담론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특정 지식과 규범을 강요함으로써 진리를 구성하는 말하기와 쓰기의 체계를 가리킨다. 동성애라는 식별 범주가 생겨난 19세기 이래로 정신의학, 법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담론이 증가했다. 성 도착이라는 영역을 확립한 ‘정상적인 성’ 담론은 종으로서의 동성애자 범주를 출현시켰다. 이렇게 푸코는 성적 정체성을 담론의 효과로 간주했다.

한편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은 이브 세즈윅의 벽장의 인식론』과 함께 퀴어 이론의 교과서로 자주 인용된다. 교과서치고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젠더 트러블 푸코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 페미니즘의 주체로 불리는 ‘여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성들은 ‘하나’의 성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그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를 해체한다. 전통적으로 섹스와 젠더를 각각 타고나는 신체적 성과 후천적인 사회적 성으로 구분하곤 했다. 하지만 버틀러는 섹스도 결국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과학 담론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성기가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나거나 XX나 XY가 아닌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터섹스가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남녀로 이분화된 신체에 해당하지 않지만, 많은 경우 영유아 때 남성이나 여자로 ‘정상화’하는 수술을 받는다. 섹스가 해부학적으로, 염색체적으로, 호르몬적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버틀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도 문화적인 틀 안에서 구성된다고 봤다. 젠더는 고정된 본질이나 원본이 없다. 대신 원본이라고 생각되는 복사본에 대한 모방물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버틀러는 “젠더는 패러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옷을 벗고 입는 것처럼 젠더를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닌데, 젠더가 규범에 의해 구성되듯 수행성도 제약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젠더가 제약당하고 금지되는 상황에서 수행은 의례화된다. 이에 버틀러는 젠더 규범을 풍자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젠더 규범을 전복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드랙은 옷과 행동 등을 다른 성에 맞춰 바꿔 입는 예술 형태다. 드랙은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연기함으로써 젠더 정체성이 사실 원본 없는 허구이자 ‘연기’라는 것을 드러낸다. 젠더 트러블의 의의에 대해 이 교수는 “섹스에 기반한 젠더라는 표현적 모델을 거부하고 원인과 효과를 전복함으로써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선형적이고 인과적 관계에 기반한 이성애 제도의 불안정성을 적시했다”고 보충했다.

페미니즘을 퀴어링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상호 작용한다. 특히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퀴어 이론의 시도와 여성 억압에 대한 페미니즘의 저항은 무관할 수 없다. 젠더 이분법이 곧 이성애를 규범화하고 남녀의 지위를 위계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성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여성을 억압한다. 결국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단일한 정체성을 해체하면서 위계를 비판적으로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상응한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를 넘어 인종적, 계급적, 문화적, 민족적, 성정체성적 차이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바이너리(성별 경계를 두지 않음), 젠더퀴어(남녀로 정의할 수 없음), 젠더플루이드(유동적 젠더) 같이 젠더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퀴어 정체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2015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가 되면서 페미니즘의 지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나영 교수는 한국에서 퀴어 진영과 페미니즘 진영 간 ‘불화설’이 유포되고 확증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사고함에 있어 페미니즘 이론사와 퀴어 이론의 역사가 상호 공유해 온 유제와 교차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퀴어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가 젠더로만 축소될 수 없듯 젠더 없는 섹슈얼리티 또한 사고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즘의 퀴어 지향과 퀴어 이론의 페미니즘 지향을 통해 지배 패러다임과 구조를 급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목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