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함이 느껴지는 묵은 편지지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옛 사람들, 특히 잘 알려진 인물들은 역사 속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즉 우리는 어떤 인물을 생각할 때 그들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모습보다는 그들의 특정한 업적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역사책에 기록된 모습 외에 그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이다. 이런 가운데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옛 사람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본교 박물관(관장:김영하(사학) 교수)은 지난 2일부터 다음달 말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옛 글에 밴 선현들의 정(情)’이라는 주제로 옛글 47점을 전시한다. 이번 특별전은 △가족의 정 △군신의 정 △사제의 정 △친구의 정 △자연의 정의 5가지 소주제로 구성되며 전시되는 글들은 고종, 정몽주, 이황, 김정희, 박문수 등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선현들이 직접 쓴 편지나 제문 등이다.

“달빛 어두운데 별빛은 빛나고, 밤 추위가 뼈 속까지 스미지만 그대를 보내고서 난간을 수없이 서성였소. 공이 물러간 뒤 편안한 지 알 수 없으니 알려주기 바라오. 나는 차를 마시며 홀로 매화를 바라보건만 시상이 떠오르지 않고 수마(睡魔)만 먼저 찾아오니 웃음이 나올 뿐이외다. 좌장군으로 허명을 추천한 것은 받아 드려도 괜찮은 것 같소. 이만 줄이오. 오늘밤 淡軒(익종)이 죽파청사 홍두원에서 보내오.”

이 글은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 수행하다 4년 만에 사망하는 까닭에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아들이 왕에 오른 후 익종으로 추존됐다)이 신하와 대화나눈 뒤 그를 생각하며 천거한 뜻을 승인하는 글이다. 따뜻한 왕의 마음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이외에도 △그동안 미공개였던 고종의 편지 △이황과 함께 학문과 여가를 즐겼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쓴 이현보의 편지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가 유학을 떠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박문수가 전일 연석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달라고 쓴 글 △친구의 상(喪)을 위로하며 웃음 짓게 만드는 편지 등 다양하고도 흥미있는 옛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영하 박물관장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인의예지로 자신을 수양한 후 남과 관계를 맺었지만 인지상정은 오히려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나게 한다”며 “이 전시회의 목적은 학자나 관료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참모습을 서간문, 시고, 기문 등을 통해 헤아려 보는 데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글들이 한문원문이지만 번역문을 함께 놓아 일반인과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글과 관련된 고풍스런 물건들을 주위에 놓아 운치를 더한다. 또한 “슬픈 나머지 마음이 흔들려 편지로는 다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와 같은 글귀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임진아 기자 kredo@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