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연말이면 학생회를 구성하는 위한 선거철이 된다. 선거 일정이 나오면 후보자들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요즘 학생회 선거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1980년대 학도호국단이 학생회 체제로 전환될 때만 해도 학생회 선거는 학내의 뜨거운 관심사가 될 정도였다. 당시 학내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느라 유세도 치열하고 노선도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지금은 주로 학내의 복지와 민원 사항을 부각시키지만 분위기가 1980년대의 경우에 미치지 못한다. 투표율도 낮을 뿐만 아니라 유세에 참여하는 관심도도 낮다.

사람은 합리적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좋은 결과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학생회를 선발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볼 만하다. 이 물음을 풀기 위해 몇 가지 경우의 수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첫째, 내가 투표에 참여했고 경쟁자 중에 좋은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둘째, 내가 투표에 참여했지만 경쟁자 중에 좋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내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쟁자 중에 좋은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넷째, 내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경쟁자 중에 좋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수 있다.

첫째는 내가 투표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가 일어난 셈이다. 투표 참여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내가 투표에 참여했음에 불구하고 바람직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투표 참여가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없다. 셋째는 내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최선의 결과가 일어났다. 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의 수혜를 받고 있다. 넷째는 내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바람직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바람직한 결과가 일어나도록 주체적 선택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도록 방조한 셈이다.

여기서 투표를 한다면 나는 자신이 받아들일 결과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합리적 선택을 통해 투표를 했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 반면 투표를 하지 않으면 나는 자신이 수행하지 않았지만 좋은 결과를 무임승차하게 되거나 아니면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무임승차이건 방임이건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어떠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학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 그리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선거가 있다. 이때 우리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무임승차의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만 방임의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여러 단위의 선거에서 불참하게 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에 의해서 나 자신에게 원치 않은 영향을 주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방임이 대학에서 지역으로 그리고 국가로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열렬한 소수가 참여한 투표가 무관심한 다수를 지배하는 현상을 나을 수가 있다. 이렇게 보면 선거의 참여야말로 내가 자신을 결정하는 방식이고 선거의 불참은 타인이 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선거의 불참은 합리적인 선택도 아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