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캠퍼스에 벚꽃이 만개해 학교 가는 날마다 사진을 찍었던 날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스타벅스에 캐럴이 울린다. 이렇게 또 일 년이 지나가는 걸 느낀다. 항상 이맘 때 쯤엔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모래알같이 바스락거린다. 수능을 앞둔 재작년에는 덜 놀고 공부 좀 열심히 할걸 후회했으며, 새내기였던 작년에는 더 미친 척 놀아볼걸 후회했다. 올해를 돌아보면 유독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더 자주 전화할걸, 더 자주 만날걸, 더 많이 챙겨줄걸 하는.

얼마 전에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용은 이러하다. 부부 동창 모임을 하게 된 사람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 핸드폰에 오는 문자, 카톡, 이메일, 전화 등을 모두 공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들은 곧 서로를 의심하고 상처받게 되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결말은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소문대로 무척 재밌었고 많이 웃었다. 하지만 무언가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극장에서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저 타인인 사람인지. 나도 모르게 나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아닌지.

사실 누군가에게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거하게 뒤통수를 맞곤 한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의 배신은 언제나 낯설고 충격적이다. 나 빼고는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를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것도 언제나 타인이다. 그 날 밤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것처럼.

작년에 두 명의 친구와 각자의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한 명은 개인적으로는 그러지 못한 성격 탓에 일부러 리더의 역할을 맡아서 사람들을 챙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명은 수는 적더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만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가끔은 그건 나의 욕심이고 사실은 누구에게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성된다는 것을 느낄 때 한 사람에게라도 소홀하지 않고 싶어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작더라도 그 사람들을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라고 느낄 때 나의 존재를 인지한다. 날이 갈수록 좋은 사람과의 관계가 더 단단해질 때 좀 더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아직은 완벽한 타인인 존재들을 믿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곁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는 말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연말이라는 것도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이경혜(행정17)
이경혜(행정17)